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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코끼리·늑대는 할머니가 지휘 ‘모계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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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소리와 몸짓
칼 사피나 지음
김병화 옮김, 돌베게
782쪽, 3만5000원

고대 인도의 불교 설화집 『본생담(本生譚·자타카)』이 그리고 있는 부처는 천인(天人)·사람뿐만 아니라 코끼리·물고기 같은 동물로도 태어나 선행공덕(善行功德)을 쌓았다. 사람이 아닌 동물이 업(業)과 무관하지 않으려면 생각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다른 동물들도 생각이라는 것을 할까.

사람은 ‘생각하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엄연히 동물이다. 하지만 사람에겐 다른 동물들을 ‘띄엄띄엄’ 보는 성향이 있기에 『본생담』은 사람들이 무지몽매했던 시절의 ‘꾸며낸 이야기’로 폄하될 수 있다.

『소리와 몸짓』을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은 집필 목적상으로 불교와 전혀 무관하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케냐 암보셀리 공원에 사는 코끼리(1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사는 늑대(2부), 미국 워싱턴 주 샌환 섬 인근에 사는 범고래(4부)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신기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강아지·고양이·여우원숭이·침팬지도 등장한다. 3부 ‘우리의 오해와 편견’은 실험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지 실험의 결함을 다뤘다.

연구소에서 태어나 자란 보노보 칸지. 터치스크린을 써서 300개 어휘를 활용할 줄 안다. [사진 돌베개]

연구소에서 태어나 자란 보노보 칸지. 터치스크린을 써서 300개 어휘를 활용할 줄 안다. [사진 돌베개]

우리의 잘못된 상식을 깨는 책이다. 예컨대 동물 세계에도 ‘사회’가 있다. ‘사회’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코끼리·늑대·범고래 사회는 할머니 어른이 지휘하는 ‘모계 사회’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1596~1650)는 동물을 본능으로 움직이는 자동장치(automaton) 정도로 이해했다. 그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에 동물의 감정 운운하는 학문은 ‘의인화(擬人化·anthropomorphism)’라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공격 받는다. 생각·감정이라는 인지기능은 언어라는 허들을 넘어야 가능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이 책의 원제는 그래서 ‘언어를 넘어 동물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가(Beyond Words: What Animals Think and Feel)’이다.

우리 인간처럼 팔·다리·눈·코·입이 있는 동물, 특히 포유류 또한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지 않을까.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동물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인정하게 되면 우리가 동물을 죽이고, 먹고, 포획하고, 착취하는 게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해양 생태학자인 저자 칼 사피나는 1990년대부터 어류·동물·환경 보호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의 활약으로 미국법·국제법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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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몸짓』의 역자는 김병화다. 그는 ‘꼭 읽고 싶은 책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마음’ 때문에 번역가가 됐다. 어떤 내용이 공유하고픈 마음을 일게 할까. 예컨대 『소리와 몸짓』에는 ‘21번 늑대’라는 영웅이 나온다. 그 수퍼 늑대는 패배를 몰랐다. 라이벌 무리에서 보낸 6명의 늑대를 혼자서 해치웠다. 브루스 리 같았다. ‘21번 늑대’는 패자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죽이지 않았다. 또 책에 나오는 현장 활동가들에 따르면 코끼리에게 텔레파시 능력이 있다. 코끼리들은 죽은 ‘암컷 가장(家長) 코끼리’(matriarch)를 묻기도 한다. 코끼리들은 매장지를 주기적으로 찾아와 사자(死者)의 뼈를 어루만지며 애도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만 ‘인간의 마음’을 지녔다. 하지만 ‘인간에게만 마음이 있다’고 믿는 것은 인간만이 ‘인간의 뼈’를 지녔기에 오로지 ‘인간만이 뼈를 지녔다’고 하는 것과 같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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