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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마오 메달을 맨살에 꽂은 ‘시진핑 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중국인 이야기
리쿤우 글·그림
필리프 오티에 글
한선예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744쪽, 2만2000원

평범한 시민의 삶으로 본 중국 현대사 #동·서양 두 작가 합작, 균형있게 그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심상찮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사드 보복’ 등으로 패권주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고, 일본의 재무장을 추진 중인 아베 정권은 본격적인 우경화·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뿌리’를 보여주는 책을 소개한다.

‘중국인 이야기’ 하면 선뜻 중국 근·현대 유명 인물들을 다룬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데 이번엔 1955년 중국의 변방 윈난(云南)성에서 태어난 한 평범한 시민의 자전적 삶을 통해 중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그린 또 다른 『중국인 이야기』가 나왔다.

그렸다는 표현이 적합한 게 형식이 만화다. 펜과 붓을 함께 사용한 기법이 신선하다. 3권 합본판으로 7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책장을 술술 넘길 수 있는 책 읽기의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한다. 책의 장점 중 하나가 저자의 생각을 독자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보여줄 따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책의 최대 강점은 동·서양 합작품이란 또 다른 형식에서 나온다. 저자가 두 명으로, 작품 속 주인공이기도 한 중국인 필자 리쿤우가 그림을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인 프랑스인 필리프 오티에가 글을 입혔다.

1966년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첫 홍위병 집회. 자본주의 추종세력을 몰아낼 것을 다짐하고 있다. [중앙포토]

1966년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첫 홍위병 집회. 자본주의 추종세력을 몰아낼 것을 다짐하고 있다. [중앙포토]

왜 이게 장점인가. 자칫 중국 선전으로 빠지기 쉬운 중국인 작가와 중국을 내려다보는데 익숙한 서구의 시각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두 저자의 공동 작업에선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그런 가운데 양파 까기처럼 까도 까도 그 속을 알기 힘든 중국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마오쩌둥 치세하의 중국인에게 마오가 어떤 존재였는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1권 ‘아버지의 시대’는 역작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이제 옹알이를 시작한 리쿤우에게 “마오 주석 만세‘ 말하기를 강요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도 마오 주석의 사랑만 못하네‘를 부르고, 마오가 그려진 메달을 가슴의 맨살에 핀으로 꽂아 피를 흘리는 친구의 모습 등 유년 시절의 리쿤우 기억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는 리쿤우보다 두 살 많은 현재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이 마오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짐작하게 한다. 마오를 황제처럼 아니 신처럼 모셨던 시기를 유년이나 청소년기로 보낸 중국인에 대해 외국인은 과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 평생 당 간부로 일했던 리쿤우의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며 자신의 마지막 월급을 당비로 헌납하는 2권 ’당의 시대‘에선 4년 후 창당 100주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79년 중국의 베트남 침공 때 자신의 부대에 하나 밖에 없는 철모를 쓰고 정찰 임무를 떠나는 리쿤우의 모습은 당시 중국군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일화로 손색이 없다. 왜 이 책이 뛰어난 역사 만화에게 주는 프랑스의 샤토드슈베르니상 등 국제적으로 여러 상을 받고 또 15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됐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책의 한계는 있다. 중국의 민감한 민주화 운동인 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에 대한 기술은 두 명의 저자가 서로 다른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처리했다. 출판사 측은 역사성은 띠되 정치성을 배제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나 중국의 현실과 타협했다는 눈총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군데군데 한자(漢字) 오기가 눈에 띄는 게 거슬리지만 만화 한 컷으로 현대를 살고 있는 중국인의 의식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이만큼 요긴한 책도 없어 보인다.

유상철 논설위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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