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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극우 아베 정권 뒤엔 ‘일본회의’가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일본 우익 설계자들

일본 우익 설계자들

일본 우익 설계자들
스가노 다모쓰(菅野完) 지음
우상규 옮김, 살림
276쪽, 1만3000원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심상찮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사드 보복’ 등으로 패권주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고, 일본의 재무장을 추진 중인 아베 정권은 본격적인 우경화·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뿌리’를 보여주는 책을 소개한다.

중·참의원 280명, 내각 80%가 회원 #일본 우경화의 뿌리 낱낱이 파헤쳐

“센카쿠 열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기), 북방영토를 지켜주세요. 일본을 나쁘게 말하는 중국과 한국인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역사 교과서에서 거짓말을 가르치지 않게 해주세요. 아베 총리 힘내라! 안보법제 국회 통과는 잘된 일이다!”

지난 2015년 10월 11일, 일본 오사카 쓰카모토(塚本)유치원의 가을 운동회 날 원아들이 외친 구호다. 유치원 측은 한국과 중국이 ‘거짓말을 하는 나라’라는 노골적인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을 아이들에게 암송하게 했다.

지난달 말 이 동영상이 공개되자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이 유치원을 운영하는 재단은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한 특혜의혹으로 논란이 된 모리모토(森本) 학원이다. 곧이어 모리모토 학원이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를 자신들이 운영하는 초등학교 명예교장으로 위촉하고, 학교명을 ‘아베 신조 기념 초등학교’로 홍보해 모금활동을 벌인 사실도 밝혀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아키에 여사는 명예교장에서 물러났다. 모리모토학원의 이사장이 ‘일본회의’라는 단체 소속 회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단체가 또다시 주목받았다.

지난해 11월 일장기와 일왕 내외 사진 앞에서 교육 받고 있는 쓰카모토 유치원생들. [로이터=뉴스1]

지난해 11월 일장기와 일왕 내외 사진 앞에서 교육받고 있는 쓰카모토 유치원생들. [로이터=뉴스1]

지난해 5월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일본 우경화의 근원인 ‘일본회의’의 실체를 파헤친 논픽션이다. 출간 직후 판매폭주로 일시 품절상태가 되는가 하면 출판금지소송으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3개월 만에 15만여부가 팔렸고, 뒤이어 ‘일본회의’를 소재로 한 책들이 6권이나 출간됐다.

저자 스가노 다모쓰(43)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2008년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우익단체의 시위를 보고 분노해 보수단체와 관련한 논문과 잡지를 찾아보고, 사람들을 만나 취재했다. 그 결과 일본 우경화의 근원이자 아베 정권의 주춧돌을 놓은 핵심이 바로 일본회의라고 결론지었다.

일본회의는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라는 단체가 합병해 97년 설립된 단체다. 저자는 일본회의 계열 단체들이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 흐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분석한다. 일본회의는 일본 내각 깊숙이 세력을 확대했다. 중·참의원 의원 약 280명, 이 단체의 특별고문인 아베 총리를 비롯해 내각의 80%가 일본회의 회원이다.

저자는 다양한 산하단체로 위장분산돼 감춰졌던 ‘일본회의’의 민낯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천황제 국가의 복원을 꿈꾸는 신흥종교 ‘생장의 집(生長の家)’ 원리주의자 무리가 그 배후임을 입증한다.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위와 서명운동, 토론회와 공부모임 등 ‘가장 민주적인 시민운동’을 통해 몸집을 키워 지금의 아베 정권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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