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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쇼팽 좋아하고 영화광인 당신 … AI 디자이너의 추천은 체크 셔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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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16년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패션박람회 ‘브레드 앤드 버터’에서는 미래 패션산업의 모습을 미리 엿볼 수 있는 한 장면이 연출됐다. 유럽의 온라인 의류업체 ‘자란도(zalando)’가 구글과 손잡고 만든 인공지능(AI) 의류 제작 서비스, 일명 ‘프로젝트 뮤제(Project Muze)’가 공개된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과 현재의 기분, 관심 있는 예술 분야 등 몇 가지 객관식 질문에 답한 후 ‘무엇이든 그려라’는 지시문에 따라 어설프게라도 그림을 그리면 바로 눈앞에 3D로 디자인한 옷이 등장했다. 그동안 구글이 확보한 패션 빅데이터와 각종 트렌드 정보를 특정 개인과 결합해 순식간에 내놓은 결과였다.

패션으로 들어온 인공지능 #몇 가지 설문, 간단한 스케치 해주면 #수백개 알고리즘 가동 3D로 디자인 #미국 온라인몰에선 고객 취향 접수 #AI가 알아서 옷 골라 집까지 배송 #빅데이터로 소비 트렌드도 예측 #인간적 감성까지 담을지는 미지수

2016년 3월 세계 최고수라는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압도한 ‘알파고’를 보면서 AI를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 위협적 존재로 느끼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AI는 이렇게 우리가 매일 입는 옷, 패션산업에서도 이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개인 맞춤 쇼핑에 트렌드 예측까지

패션과 AI가 만나는 영역은 크게 세 가지다. 자란도가 보여줬던 맞춤 서비스가 가장 대중적이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 ‘스티치 픽스’의 성공도 여기에 있다. 회원은 직접 옷을 고르는 대신 ‘파인 옷을 좋아하나 막힌 옷을 좋아하나’ 혹은 ‘유행을 좇는 편인가 아니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나’ 등의 질문에 답하기만 하면 된다. 이후 인간 스타일리스트와 AI가 함께 예산과 취향에 맞춰 옷을 보내 준다. 고객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송하면 그만. 하지만 대체로 적중시킨다. 어떻게 가능할까. AI는 고객의 여러 관련 정보를 엮어 수백 가지의 알고리즘을 작동시킨다. 그뿐 아니라 고객의 핀터레스트(Pinterest·이미지 공유 검색 사이트)를 확인해 직접 답하지 않은 취향까지 알아내 의상 선택에 접목시킨다.

구글과 패션 온라인 업체 ‘자란도’가 선보인 인공지능(AI) 기반 맞춤 서비스. 고객이 몇 가지 질문에 답한 뒤 대강의 그림을 그리면 3D로 옷이 디자인된다. 기존 구매 시스템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의 취향과 흡사한 의상을 제시하는 원리다. [사진 구글]

구글과 패션 온라인 업체 ‘자란도’가 선보인 인공지능(AI) 기반 맞춤 서비스. 고객이 몇 가지 질문에 답한 뒤 대강의 그림을 그리면 3D로 옷이 디자인된다. 기존 구매 시스템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의 취향과 흡사한 의상을 제시하는 원리다. [사진 구글]

구글과 패션 온라인 업체 ‘자란도’가 선보인 인공지능(AI) 기반 맞춤 서비스. 고객이 몇 가지 질문에 답한 뒤 대강의 그림을 그리면 3D로 옷이 디자인된다. 기존 구매 시스템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의 취향과 흡사한 의상을 제시하는 원리다. [사진 구글]

구글과 패션 온라인 업체 ‘자란도’가 선보인 인공지능(AI) 기반 맞춤 서비스. 고객이 몇 가지 질문에 답한 뒤 대강의 그림을 그리면 3D로 옷이 디자인된다. 기존 구매 시스템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의 취향과 흡사한 의상을 제시하는 원리다. [사진 구글]

구글과 패션 온라인 업체 ‘자란도’가 선보인 인공지능(AI) 기반 맞춤 서비스. 고객이 몇 가지 질문에 답한 뒤 대강의 그림을 그리면 3D로 옷이 디자인된다. 기존 구매 시스템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의 취향과 흡사한 의상을 제시하는 원리다. [사진 구글]

구글과 패션 온라인 업체 ‘자란도’가 선보인 인공지능(AI) 기반 맞춤 서비스. 고객이 몇 가지 질문에 답한 뒤 대강의 그림을 그리면 3D로 옷이 디자인된다. 기존 구매 시스템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의 취향과 흡사한 의상을 제시하는 원리다. [사진 구글]

최근엔 AI가 트렌드 예측도 한다. 이미지 식별과 자동분류 기술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길에서 본 티셔츠를 사진만 찍으면 어떤 브랜드이고 어디서 파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패션 사진 수백만 장을 분석하면 실시간 트렌드는 물론 향후 어떤 스타일이 유행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 AI에 기반한 패션 이미지 식별 기술을 개발한 국내 스타트업 ‘옴니어스’ 전재용 대표는 “해외 컬렉션에 의존하는 트렌드 제시가 아니라 실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옷을 만들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2월 뉴욕 패션위크에서도 이와 유사한 개념의 행사가 열렸다. 중국 디자이너 치장은 AI 기술을 이용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SNS에 오른 1000억 장의 사진과 온라인몰 ‘웨이핀후이’에서 20대(1995년 이후 출생자)가 구매한 의류 빅데이터를 분석했고, 여기에 맞춰 트렌드를 반영한 의상을 디자인했다.

여기에 더 나아가 AI가 아예 디자이너들에게 아이디어의 원천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16년 호주 디자이너 제이슨 그레치는 AI 기술을 적용해 타깃 고객층과의 실시간 SNS 대화, 패션 아카이브 사진 50만 장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멜버른 패션위크에서 선보였다. 추천받은 스타일과 색상 등도 반영됐다. 그레치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영역 밖에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무언가로 작업하는 자체가 새로웠다”면서 “오래전부터 고수하던 어두운 컬러와 모던한 스타일을 버리고 파스텔 색깔을 고르는 혁신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넘쳐나는 SNS 패션 데이터, AI에 최적화

패션은 지금껏 감성과 창조성의 영역이었다. 기술이나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져 왔다는 얘기다. 지금 왜 빅데이터와 AI가 자꾸 패션산업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답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데이터 확보에 있다. SNS에 돌아다니는 방대한 패션 콘텐트는 정확도를 높이는 최적의 분야다. 패션 컨설팅업체 미디어레이블의 정해진 이사는 “의료 부문처럼 개인정보 관리를 중시하는 영역보다 패션 온라인 콘텐트는 동시간에 빅데이터를 얻기도, 또 새 기술을 적용하기도 쉽다”고 말한다.

여기에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 2000년대 초 출생 세대)가 최근 패션계의 주요 공략층이라는 배경도 작용한다. 이들은 이미 다양한 모바일 맞춤 서비스에 길들여져 있다. 쇼핑몰에서 검색과 동시에 유사 상품이 등장하거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음악을 들을 때 추천 음악이 함께 나타나는 데 익숙하다. 당연히 패션의 맞춤 서비스 역시 반감 없이 즐길 준비가 돼 있다는 이야기다. 또 스마트폰·태블릿PC를 쓰면서 검색 결과를 빨리 얻고 싶어 하는 것도 이들 세대다. “AI라면 길에서 본 티셔츠 하나도 몇 초 안에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게 정 이사의 설명이다. 실제로 세계 첫 인공지능을 이용한 패션 피드 앱 ‘훅(HOOK)’ 역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가장 최신의 유행과 이미지 상품을 검색하는 것은 물론 유사 상품까지 한번에 제시한다.

AI, 패션을 지배할 수 있을까

“구글·애플이 패션회사가 될지 모른다.”
“디자이너가 되려면 과학자부터 섭외하라.”

호주 디자이너 제이슨 그레치가 AI 도움을 받아 만든 의상들. SNS에서의 소비자 선호도, 런웨이 사진 분석 등을 통해 디자이너의 영감과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사진 제이슨 그레치]

호주 디자이너 제이슨 그레치가 AI 도움을 받아 만든 의상들. SNS에서의 소비자 선호도, 런웨이 사진 분석 등을 통해 디자이너의 영감과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사진 제이슨 그레치]

AI가 화두가 되면서 업계 전문가들은 이렇게 과격한 전망까지 내놓는다. 세계 이미지 인식 시장 규모는 15조원(2015년 기준),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앱 시장 규모는 2020년까지 40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정보기술 전문 마케팅 업체 IDB). 현재 세계적 알고리즘 제공업체 IBM왓슨과 손잡은 업체만도 500곳이 넘는다.

하지만 국내 패션 전문가들의 시각은 유보적이다. 인간 고유의 능력이 필요한 산업인 만큼 온전히 기술로 대체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재우 동덕여대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빠르고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효용가치가 높다”면서도 “인간이 옷과 스타일을 보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부분들을 AI가 어떻게 학습할 것인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한다. 또 디자인 작업에 있어서도 기존 자료를 공부하는 AI가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할 것인지, 발휘하더라도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꼬집는다. 럭셔리 브랜드에는 큰 타격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여기에서 나온다.

서헌주 SK 플래닛 M&C부문 국장은 경제성을 문제 삼는다. “신기술은 구기술을 대체함으로써 얻는 편익이 얼마인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면서 “가령 디자이너의 경우 임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굳이 AI를 적용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특히 AI를 기업에 적용하려면 내부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국내 대다수 패션업체 중 이를 위해 투자하고 바꿀 곳이 많지 않다는 현실도 남아 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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