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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 3할, WBC선 삼진 … ‘우물 안 K존’에 갇힌 한국 야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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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국내 프로야구(KBO리그)의 스트라이크존을 둘러싼 논쟁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계기로 또다시 불거졌다.

WBC 충격 2연패의 숨은 원인 #심판들 위아래 넓은 MLB존 적용 #국내 타자들 높은 공 대처 못해 #19이닝 1점, 극심한 타격 부진 #KBO는 공격 야구 위해 ‘좁은 존’ #3할 타자 넘치는 ‘착시효과’ 불러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한국 대표팀은 지난 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1라운드 2차전에서 0-5로 완패했다. 한국은 전날 이스라엘전에서도 무기력한 경기 끝에 1-2로 졌다. 최소한 2라운드 진출을 낙관했던 한국이 안방에서 뜻밖의 2연패를 당하자 대표팀을 향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19이닝 동안 1점을 내는데 그친 타선의 무기력함에 대한 질책이 잇따른다.

이번 대표팀에는 추신수(텍사스)·김현수(볼티모어)·강정호(피츠버그)·박병호(미네소타) 등 메이저리거가 모두 빠졌다. KBO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꾸렸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게 국내 야구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최형우(KIA)·김태균(한화)·이대호(롯데)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은 이전 대회 라인업과 비교해도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표팀 타자 중 지난해 KBO리그에서 3할 타율을 넘지 못한 선수는 포수 김태군(NC)·허경민(두산) 둘 뿐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이스라엘과 네덜란드 투수들의 빠르면서도 움직임이 심한 공에 한국 타자들은 속절없이 당했다. “국내 타자들이 KBO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착시효과’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KBO리그는 2014년부터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시즌 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55명)의 평균타율은 0.321이었다. 이 중 72.7%인 40명이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3할 타자가 흔해진 반면, 리그 평균자책점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5.17까지 치솟았다.

‘타고투저’ 현상이 두드러진 주된 원인으로는 좁은 스트라이크존이 꼽히고 있다. 투수가 던질 공간이 좁아지다보니 공이 가운데로 몰리기 쉬웠다는 주장이다. 스트라이크존이 좁다보니 볼넷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차명석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몇 년 전부터 심판들이 야구 중계 때 사용하는 스트라이크존(S존)을 (경기가 끝난 뒤)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트라이크존이 점점 좁아졌다. 이 영향으로 리그의 구조가 기형적으로 변했다”며 “타자들은 투수들의 실투를 받아치는데 익숙해졌다. 반면 투수는 계속 얻어맞으니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고 설명했다.

야구규칙에 따르면 스트라이크존 좌우는 홈플레이트가 기준이고, 높이는 타자 가슴(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의 중간점)부터 무릎 아래다. 하지만 실제 판정은 조금 다르 다. 많은 국내팬은 중계 때 보여지는 S존을 잣대로 심판 판정을 다시 판정한다. S존을 벗어나는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는 심판은 공격 대상이 된다. 심판들은 “인터넷에서 내 가족까지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심판은 스트라이크존을 최대한 좁게 보는 경향이 생겼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스트라이크존에도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WBC 본선 라운드 주심은 메이저리그 심판들이 맡았다. 투구 궤적시스템을 통해 누적된 데이터를 보면 KBO리그의 스트라이크존은 좌우가 넓고 위아래가 좁은 ‘둥근 직사각형’에 가깝다. 이에 비해 메이저리그는 좌우폭이 좁고 위아래가 넓은 정사각형 모양이다. 메이저리그는 몸쪽 공에 는 인색하고, 바깥쪽 공에는 후한 판정을 하는 경향도 있다. 차 위원은 “이번 대회에서 타자들이 높은 공을 흘려보내다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우리도 세계적인 추세(메이저리그 스트라이크존)을 따라가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고 밝혔다.

좁은 스트라이크존은 오히려 KBO리그 타자들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KBO리그 품질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많다. 타자들에게 지나치게 유리해지면서 경기 시간이 늘어지고, 선수 혹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경기시간은 평균 3시간 정도인데, 지난해 KBO리그 경기시간은 평균 3시간25분이었다. 경기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면 팬들도 점차 떠나게 된다.

KBO는 지난해 12월 윈터미팅에서 타고투저 현상 분석과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패널로 참석한 염경엽 SK 단장은 “스트라이크존을 넓히면 투수 육성에 도움이 된다. 존을 넓히면 젊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게 된다. 투수의 기량이 향상될 수 있고, 경기 시간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KBO 심판위원장 "스트라이크존 넓게 볼 것”

김풍기 KBO 심판위원장은 “이번 WBC 결과와는 관계없이 스크라이크존이 좁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올 시즌부터 야구 규칙이 정하는 선에서 스트라이크존을 최대한 넓게 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KBO리그의 스트라이크존 규칙 자체는 메이저리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 위원장은 “올 시즌이 시작되면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졌다는 걸 다들 느끼게 될 것이다. WBC를 보면 높은 공에 심판 손이 올라간다. 우리도 거의 비슷한 판정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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