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타 전공 교수들의 결합이 아닌 학생 스스로 전공 만드는 융합이 바람직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1호 14면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 안 바꾸면 미래 없다

지난달 24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자유전공학부 졸업생 99명이 학사모를 던지며 졸업을 자축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

지난달 24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자유전공학부 졸업생 99명이 학사모를 던지며 졸업을 자축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

=

=

한국 4년제 대학 189곳에 개설돼 있는 학과는 총 1만1329개(2016년 현재)다. 학생들은 대학이 만든 학과·전공의 이름이 담겨 있는 학위증을 받고 사회로 나간다.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학문 융합 #물리적 결합 아닌 화학적 융합 돼야 #서울대 도입 학생설계 전공이 사례 #일대일 도제식 교육이 더 효과적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말하는 전문가들은 학문 융합과 통섭을 주문한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재료공학·기계공학·경제학 등 특정 학문만 배우는 게 아니라 학문 간 융합을 통해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인문학적 소양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도 서울 소재 10개 대 총장들과 미래대학 포럼을 열면서 “인위적으로 만든 학문 경계를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학과의 벽을 깨고 융합하라는 것이다. 교육부도 융합 학과에 대해 재정 지원을 하는 등 융합을 장려하고 있다. 학과란 칸막이를 없애고 구조조정을 한 대학에 대해 앞으로 3년간 6000억원을 프라임 사업(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 지원사업)으로 쏟아붓는다.

건국대 스마트ICT융합공학과는 프라임 사업으로 재정 지원을 받는 학과다. 올해 입학한 학부생 40명에게 소프트웨어·인공지능·사물인터넷(IoT)·웨어러블컴퓨팅을 가르친다. 이 대학의 융합 대학원에서 3학기를 다닌 한 학생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접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긴 하나 주전공이 아닌 분야에선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학과가 공개한 커리큘럼을 보면 3학년 1학기까지 전공 기초 과목이 이어진다. 교수들은 컴퓨터공학·인터넷미디어공학·전자공학·문화콘텐츠학·토목공학과 출신 전공자들이며, 2006년부터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융합전공을 가르쳤으나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융합 교육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지인 교수는 “융합학과에서 학생들은 폭넓게 배우나 그 깊이가 얕을 수 있는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며 “이런 지적을 반영해 학생들이 산업계 현장에서 겪고 있는 문제를 사례로 놓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내용을 모듈(교육과정을 이루는 개별 구성단위)로 넣어 재구성했다”고 말했다.

학생이 학부 단계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공을 접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점엔 누구나 공감한다. 대학을 졸업해 사회로 나가면 접하게 되는 문제 상황은 개별적인 전공교육만 받아선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이다. 이 때문에 대학은 학생에게 복수전공·연계전공 등을 설치해 여러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구조조정을 통해 여러 학문 분야를 하나로 융합하기도 한다. 하지만 복수전공은 학생의 학점 부담으로 이어진다. 구조조정 등을 통한 학문 융합 방식은 아직까지 여러 분야 교수들을 한자리에 모은 결합에 가깝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개별 단위의 성질이 바뀌지 않는 물리적 결합에 불과할 뿐 새로운 단위로 태어나는 화학적 결합까지 가지 못했다”며 “공급자가 통합해 가르치면 학생이 융합적 사고를 갖게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이 화학적 결합 또는 통섭(서로 다른 요소가 모여 새로운 단위로 거듭남)으로 가기 위해선 가미돼야 할 게 더 있다는 것이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학생이 여러 인접 학문을 배우고 싶어도 타 분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으면 도전하기 쉽지 않다”며 “GIST는 무학년제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기초학문 지식을 보충해주는 브리지(bridge) 프로그램 등을 갖추고 있는데 이런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

대학이 틈새 학문 분야나 전공을 모두 찾아 이를 학과로 설치할 순 없다. 이 때문에 일부 대학은 학문 융합을 학생 수준에서 찾기도 한다.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만든 전공(학생설계전공) 과정을 설치한 것이다. 서강대·서울대·성공회대·성균관대·이화여대가 대표적이다. 한 대학에서 한 해 평균 5명에 불과할 정도로 이 길을 걷는 학생은 극소수다. 손성호(28)씨는 학부(자유전공학부)에서 ‘인공지능학’을 설계해 학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손씨는 “대학에 들어와서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2년을 고민한 다음 학생설계전공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대 바이오지능연구소에서 구글 알파고 덕분에 잘 알려진 ‘딥러닝’을 연구하고 있다. 2015년 서강대에서 ‘비주얼스토리텔링’이란 전공을 만든 최근우(28)씨는 사진·영상을 아우르는 자신만의 전공을 설계하고, 이를 인정받는 데 1년 이상을 써야 했다. 그는 “학생설계전공을 심사하는 학내 위원회를 통과하기 위해 신문방송학·사회학 등의 인접 분야 교수에게 찾아가 내가 하려는 걸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그래도 이 기간은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숙성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학생이 학문 융합의 중심으로 서게 하려면 본인의 의지 외에도 학내 인프라도 갖춰져야 한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의 경우 한 명의 교수가 맡는 수업시간은 주당 9시간이지만 면담 시간은 주당 10시간이다. 전문위원들이 따로 있어 학생과 일대일로 면담하며 전공 설계를 도와준다. 김청택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학장은 전통적인 ‘도제식(교수와 학생 간 일대일 수업)’을 강조했다.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교수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영국의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의 수업을 보자. 교수 한 명이 학생 한 명을 만나 튜터링하는 게 수업이다. 이런 전통적인 방식이 오히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적합한 교육 방식일 수 있다.”

취재팀: 강홍준 사회선임기자, 강기헌 기자, 문상덕 인턴기자

자문단: 권대봉 고려대 교수(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김세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노동시장), 김진영 건국대 교수(경제학), 김태완 한국미래교육연구원장(전 한국교육개발원장), 김희삼 GIST 교수(기초교육학부), 박준성 교육부 기획담당관, 이민화 KCERN(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혁신),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부 장관),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교육학), 이화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원장(교육과정),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교육학), 정철영 서울대 교수(산업인력개발),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 한유경 이화여대 교수(교육학) ※가나다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