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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성·조용원·조남진, 김정은 공포정치 주도 3인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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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면

자아비판 신년사 그 후 두달, 북한서 무슨 일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느닷없이 자아비판을 했다. 북한에서 무오류의 신성한 존재인 수령이 본인의 과오를 인정한다는 것은 주체사상의 균열로 이어진다. 따라서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북극성-2형 발사, 김원홍 숙청 이어 #김정남 암살 등 ‘잘 짜인 각본’ 따라 #김정일 지도체제 구축 과정 답습 #박태성 평남 당위원장은 ‘돌격대장’ #조용원 지난해 김정은 수행횟수 1위 #조남진 총정치국 넘버2로 실권 잡아 #“실리 중요시하는 전형적 예스맨들”

공교롭게도 우연의 일치인지 그 이후 두 달 동안 김원홍 국가보위상(한국의 국가정보원장)의 해임,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북극성-2형’ 시험발사, 김정남 피살 등이 연이어 터졌다. 마치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진행된 인상을 준다. 게다가 오는 4월 15일 즈음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강행한다면 우연이 아닌 계획에 의한 것임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북한 안팎에서 갑자기 여러 가지 대형 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 이후 올해가 그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대체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어떤 세력이 김정은과 함께 이런 공포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일까. 김정은 정권의 1등 공신인 김원홍을 해임하도록 김정은을 설득할 정도면 기존 원로세력이 아니라 새로운 세력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 대북 소식통은 “지금 김정은 주변에는 집권 초기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에 1등 공신이었던 조연준·김경옥 등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들이 2선으로 물러나고 조직지도부의 부부장 출신들이 신진세력으로 전면에 등장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박태성 평안남도 당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조남진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등 조직지도부에 있거나 거쳐 간 사람들이다. 모두 50~60대다.

전략 마인드 부족하고 자극적 행동

박태성은 성격이 저돌적이라 ‘김정은의 돌격대장’으로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다. 김정은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조용원은 지난해 김정은의 수행 횟수가 황병서 총정치국장(40회)을 제치고 1위(47회)를 기록했다. 현재 공석인 김정은 서기실장을 대행하고 있다. 서기실장은 한국의 대통령비서실장처럼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자리다. 조남진은 군 내부에서 당 정치사업을 추진하거나 군 간부 선발 등을 담당하는 총정치국의 넘버2다. 고령의 황병서(77) 총정치국장을 대신해 총정치국의 실권을 쥐고 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원장은 “이들 신진세력은 전략 마인드가 부족하고 자극적인 행동을 즐기는 스타일로 정치 경험이 많지 않고 피해의식이 강한 김정은 주변에서 공포정치를 지지하는 아부꾼”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들을 평가하면서 “조선시대 대표적 간신인 연산군의 임사홍, 인조의 김자점 등을 연상시키는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임사홍(1445~1506)은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연산군에게 알려 갑자사화의 구실을 제공했고, 김자점(1588~1651)은 인조와 소현세자를 이간질시키는 등 온갖 모략으로 입지를 다진 사람이다.

김정일 시대를 살았던 기존 원로들(조연준·김경옥·김원홍)은 상황에 따라 수령 앞에서도 소신을 밝혔다. 하지만 신진세력은 아예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예스맨’들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김정은이 정치를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김정은이 누군가를 숙청하거나 도발 행위를 결정할 때 부추기기 일쑤라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은 원로들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하고, 원로들은 김정은이 두려울 뿐 아니라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원로들은 신진세력이 혁명정신이 없으며 돈과 사리사욕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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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세력이 국가보위상에서 해임시킨 김원홍은 북한 내부에서 강직한 성품으로 주변의 신망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사람이다. 예를 들면 김원홍은 장성택의 처형을 놓고 격론을 벌일 때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며 반대하는 소신을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김원홍은 비록 한때 장성택이 당 행정부장을 하면서 국가안전보위부를 감시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호감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의 지시로 처형이 결정됐고 그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원홍은 국가전복 혐의를 받은 장성택을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특별군사재판에서 처형했다.

국정원은 지난달 2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가보위성이 주민 통제를 심하게 하고 당 간부를 고문하며 김정은에게 허위보고를 한 게 들통나 김원홍이 해임됐고 연금 상태로 감금됐다”고 밝혔다. 국가보위성은 김정은 집권 이후 최고의 권부로 부상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을 감시하는 당 조직지도부 관할 업무까지 관여했다. 국가보위성의 득세에 당 조직지도부는 체면을 구긴 상태에서 절치부심하다가 지난해 1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대대적인 조사 작업을 하면서 국가보위성을 접수했다.

이는 김정은의 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정은이 신진세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에서 주변의 신망이 높다는 것은 김정은에게 언제든지 도전세력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숙청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일이 1974년 후계자로 확정된 이후 김동규 국가 부주석 등의 숙청(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76년), 아웅산 테러(83년), KAL기 폭파 사건(87년) 등 북한 안팎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다. 김정일은 이런 과정을 통해 유일지도체제를 확립했다.

이 과정에서 1등 공신은 3대혁명소조였다. 이는 주로 청년엘리트층(90%)과 젊은 당 일꾼과 정부 기관 핵심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사회 전반에 사상·기술·문화 등 3대 혁명을 요구하고 실천하려고 했다. 이는 김일성이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 장칭(江靑)의 주도로 66년 시작한 문화대혁명에서 힌트를 얻었다. 김일성은 권력세습을 하기 위한 세대교체 명분으로 중국의 홍위병처럼 젊은 세대를 내세우는 대중적인 혁명운동이 필요했던 것이다.

3대혁명소조원들은 홍위병처럼 보수주의·경험주의·관료주의 등 낡은 사상에 빠진 간부들을 먼저 쳐내기 시작했다. 3대혁명소조는 74년 당 조직지도부에 ‘3대혁명소조지도과’가 신설되면서 중앙무대로 진출했다. 그리고 76년 ‘3대혁명소조지도부’로 확대하면서 국가정치보위부(현 국가보위성)를 소속시켰다. 이것이 현재 국가보위성이 조직지도부에 코가 꿰이는 기원이 된다. 조직지도부는 당·군·정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노동당의 핵심 부서다.

김정일을 수령으로 옹립하려던 3대혁명소조지도부는 당 조직지도부의 핵심 골간이 됐다. 전국에 파견됐던 3대혁명소조원들 가운데 검증된 열성 소조원들은 중앙과 지방 당위원회의 핵심 간부로 등용됐다.

이들 가운데 조연준(80)·김경옥(80대 추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있었다. 조연준은 김일성종합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함경남도 3대혁명소조지도 책임자로 활동했다. 함경남도 당 조직비서를 거쳐 79년 당 조직지도부 생활지도과장으로 승진한 뒤 부부장을 역임했다. 2012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문혁 홍위병처럼 3대혁명소조 활용

그리고 김경옥 제1부부장도 3대혁명소조 출신이다. 김일성종합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70년대 3대혁명소조지도원으로 시작해 줄곧 당 조직지도부에서만 일했다. 80년대는 당 조직지도부 검열담당 부부장을 역임하고 2008년부터 군 담당 제1부부장을 맡아 지금까지 왔다.

김정은 집권 초기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주역인 이들은 고령으로 2선으로 후퇴할 예정이다. 대북 소식통은 “조연준은 ‘은퇴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하고 다니며 김경옥은 여전히 일에 욕심을 내고 있지만 조만간 두 사람이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이 ‘김정일 시대’를 열어갈 사람들로 3대혁명소조원과 함께했듯이, 김정은은 조직지도부 신진세력과 ‘김정은 시대’를 열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도 그와 운명을 같이할 신진세력 역시 3대혁명소조 출신들이다. 차이점은 세대 차이 탓인지 혁명보다 실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신진세력이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김정은을 이용해 ‘아부’와 ‘예스맨’으로 공포정치를 유도하고 있고 대화·양보보다 대결·공격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이례적으로 자아비판을 한 것은 여동생인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한국의 촛불시위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으로 보고 우려를 표하자, 김여정이 ‘수령이 먼저 반성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인민들의 여론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이 마키아벨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희석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장성택을 서둘러 처형함으로써 공포정치의 강도를 줄일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려는 참모들이 중용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돼버린 것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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