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사람들이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마 한 명쯤 있을걸요. 인천-카트만두 직항노선은 2006년 가을 열렸습니다. 1년에 7000명이 네팔로 떠났다면 지난 10여 년 동안 네팔 트레킹을 다녀온 인구는 어림잡아 수만 명에 달합니다. 항간에는 ‘방콕·파타야에서 계모임하던 단체 여행객의 행선지가 네팔로 바뀌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트레킹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트레킹피크(Trekking peak) 등정이 있습니다. 네팔관광성이 자국 산을 등반 난이도에 따라 매긴 등급표 중 하나입니다. ‘트레킹하기 좋은 피크’가 아니라 ‘일반인도 등정 시도가 가능한 피크’를 말합니다. 네팔관광성 주 업무와 수입은 등반가와 트레커에게 입산 허가증을 발급하고 돈을 걷는 일입니다. 등급에 따라 입산료가 크게 차이나지요.
위로 올라가면 어떤 기분일까요. 베이스캠프에서 올려다보는 산과 전혀 다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구름 위 신선’이 된 기분입니다. “이 맛에 정상을 탐하는구나” 생각이 들지요. 아래 영상은 아일랜드피크 VR 영상입니다. 한번 감상하시죠.
에이전시에서 고정로프를 설치하면 등반자는 유마르(Jumar·고정 로프에 장착해 등강을 돕는 장비)를 이용해 로프를 잡고 정상으로 향합니다. 로프에 장착된 유마르는 등반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지만, 자칫 실수하면 안전선이 끊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생명줄입니다.
이제부터 본론입니다. 올 봄 네팔의 대표적인 트레킹피크 메라피크·임자체·로부체에 도전장을 낸 보통 사람 1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과연 ‘나도 갈 수 있을 지’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
1 “한번밖에 안 가봤는데요”
10명을 인터뷰했는데 8명이 “히말라야 트레킹 경험이 딱 1번”이라고 답했습니다. 정상에 올라간 트레킹피크 서미트(Summit) 경험이 아니라 베이스캠프 트레킹 경험 말입니다. 게다가 나머지 1명은 아예 "네팔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네팔·티벳·파키스탄 등 히말라야를 스무 번 넘게 갔지만 메라피크·임자체·로부체 어느 한 곳도 도전해본 적이 없거든요. 7명은 박정헌(46) 대장과 함께 가는 로부제 동벽 원정대원입니다. 히말라야에서 백전노장인 박 대장과 함께 해서인지 모두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10명의 평균 나이는 만 54.5세였습니다. 우리 나이로 쉰여섯 정도 되는거죠. 30대 1명, 40대 1명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50~60대였는데, 젊은 두 사람을 빼면 평균 나이 58.3세입니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 히말라야 6000m 트레킹피크에 도전장을 낸 겁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네요. 가장 나이 많은 김순식(69·여·자영업)씨만 네 번의 히말라야를 비롯해 다양한 해외 트레킹 경험이 있었습니다.
“2006년 무릎이 좋지 않아 등산을 시작했다. 2009년 말레이시아 키나발루(4095m)를 시작으로 대만 옥산, ABC,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트레킹(EBC), 티벳 카일라스라운드트레킹, 미국 존뮤어트레일, 파키스탄 발로토빙하트레킹을 했다. 지금은 시간당 4km를 걸을 정도로 무릎이 좋아졌다.” 김순식(69·여·자영업)
“젊은이들이 할 수 있으면 나이먹은 우리도 할 수 있다. 올라가는 데까지 올라가보자는 게 목표다.” 서정빈(64·자영업)
“2014년 아일랜드피크 정상에 섰다. 이 때 7대륙 최고봉 정복을 마음먹었다. 이듬해 엘브루즈 등정, 작년에 킬리만자로 등정했다. 올 봄 메라피크에 도전한다.” (김수성·52·자영업)
“중앙일보 기사('히말라야서 여덟 손가락 잃었지만 다시 갑니다(1월 31일자)' 보고 바로 박정헌씨에게 전화해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30년 전 대학 산악부 시절 히말라야에 한 번 간 적 있다. 더 늦기 전에 꿈을 실현해보고 싶었다.” (조남준·51·만화가)
“알프스 트레킹 한 번 했다. 크게 두렵지 않다. 내가 말로만 듣던 6000m 원정대의 멤버라는 것이 재미있다. 가기 전까지 이런 설레임이 좋다.” (김영옥·50·여·자영업)
“직업이 국내 산행 가이드다. 30년 동안 산에 다니며, 지난 6년 동안 국내 산행 가이드를 하면서 키운 체력과 등반 능력을 가늠해보고 싶었다.” (정병호·46·프리랜서)
“6년 전 20대의 버킷리스트로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 갔다. 그때 '애인 생기면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번에 바로 6000m 서미트에 도전하게 됐다. 이게 나의 버킷리스트는 아니다. 더 도전하겠다.” (김류강·32·여·직장인)
2 고소약은 비아그라·팔팔정·다이아막스
트레킹경험이 있는 9명 중에서 5명이 “고소 증세를 대비한 약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다이아막스(이뇨제)를 준비한 사람 2명, 비아그라 1명, 팔팔정 1명, 복합적(다이아막스·비아그라·기타 혈관 확장제)으로 준비한 사람이 1명이었습니다. 5명 중 4명은 준비한 약을 복용했고 “효과가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팔팔정을 가져간 사람은 "의사가 다이아막스 처방해주지 않아 팔팔정으로 대체했다"고 했습니다. 팔팔정은 지난해 청와대가 구입한 의약품 목록 논란에서 “고산병 치료제로 구입했다”는 발언 이후 유명세를 치렀는데요, 실제 의사에게 처방받은 사람이 있군요.
"내 나이 칠십…버킷리스트는 7대륙 최고봉 완등" #트레킹피크 입산료, 에베레스트의 백분의 1?
해발 3000m 이상에서 겪는 고소증세. 아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네팔을 비롯한 유럽에서 연구 중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아그라·팔팔정이 실제 고소 증세에 효과가 있는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지는 확실치 않은 셈이죠. 히말라야 원정대에 1회 이상 팀닥터로 참여한 의사들은 여전히 이뇨제를 추천하고 처방합니다. 이뇨제는 체내 노폐물 배출을 돕는 약입니다. 두통·어지러움·구토 등 고소 증세의 원인을 체내 일산화탄소·이산화탄소 등 노폐물 누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는 이 견해가 가장 우세합니다. 단, 이뇨제 복용시에는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소증세보다 더 심각한 탈수증세를 겪을 수 있습니다.
“2016년 4월 EBC 갈 때 3000m 이상 올라가니 머링가 띵 했다. 다이아막스가 효과 있었다. 하루 한알씩 10일 복용했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해서 틈만 나면 물을 마녔는데 설사로 고생했다.”
“약사에게 부탁해 특별히 제조한 고소약을 준비했다. 비아그라와 소화제, 두통약 등이 들어있다고 하더라. 효과가 있었다.”
“다이아막스 가져가려 했는데, 병원서 처방을 안 해주더라. 팔팔정 처방 받아서 가져갔다. 고소 증세가 업어 실험해보진 못했다.”
3 두려움은 강한 훈련으로 극복
개인적으로 편차가 있었습니다만 모두 ‘하드 트레이닝’이라고 할만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명도 백수인 사람은 없습니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산에 다니는 열성적인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주중에는 오전 6시부터 헬스장에서 두세 시간 운동한다. 36층 아파트에 사는데 하루 5번씩 걸어서 올라다닌다. 일요일엔 남한산성에서 검단산까지 28㎞를 걷는다.” (김순식)
“주말마다 산에 가서 산다.”(정순길·68·자영업)
“주중 1~2회 산행하고, 헬스장에서 하체 단련 운동한다. 원정 앞두고 박정헌 대장팀과 정기적으로 산에 간다.” (서정빈)
“폐활량 높이려고 배드민턴 열심히 한다. 주말엔 20㎏ 배낭 매고 백패킹 다닌다.” (김영옥)
“퇴근 후 일주일에 세번 5㎞ 달리기 한다. 주말엔 4월 17일 출발하는 박정헌 대장 원정대원들과 함께 빙벽·암벽 등반한다.” (김류강)
4 3000m 이상 고소에서 워킹 노하우
‘걷기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지요. 그만큼 걷기는 개인에 따라 편차가 있기 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간섭하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들어볼 만한 내용입니다.
“교과서대로 걸으려 노력한다. 뒷꿈치가 먼저 땅에 닿는 걸음걸이다. 처음엔 쉽지 않앗지만, 해 보니 알겠더라. 이게 정말 피로를 줄이는 보행 습관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엉덩이를 살짝 들면서 힙이 씰룩씰룩하게 걷는다.”(김순식)
“물을 많이 마신다. ”(서정빈)
“현지인들과 친하게 지낸다. 기분이 좋아지면 힘든 것도 덜하다. 순박한 네팔 친구들과 얘기하다보면 ‘욕심없이 살아야겠다’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이원근)
“6년 전 ABC 갈 때 무릎이 아팠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다리에 근육이 없었다. 트레이닝하며 하체를 키우고 있다.”(김류강)
5 히말라야 워킹 중 배낭 무게는
히말라야 트레킹은 대부분 포터(Porter)가 동행합니다. 이들은 하루 25㎏의 짐을 지고, 15㎞ 정도 움직입니다. 일당은 대략 15달러(2만원) 선입니다. 베이스캠프에서 하이캠프(정상 시도를 하기 위해 설치하는 중간캠프), 하이캠프에서 정상 공격을 할 때는 모든 짐을 본인이 수송해야 합니다. 원칙적으로 그렇고, 더러 셰르파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30~40리터 배낭을 쓰고, 무게는 5~6㎏을 넘지 않게 한다. 1리터짜리 물통 2개와 보온 의류 등 최소한의 것만 넣는다.” (김순식)
6 비용은 550만원+α
6000m 트레킹피크 비용은 550~600만원입니다. 한국에 있는 네팔 전문 여행사의 단체여행 상품을 예약했을 때의 비용은 500만~550만원 선입니다. 2주짜리 EBC 상품이 300만~350만원 선이니, 이보다 1.5배 정도입니다. 6000m 트레킹피크 원정은 보통 3주 걸립니다. 이 비용은 침낭과 방한의류·장갑 등 개인 장비를 갖추고 있을 때의 예산입니다. 에이전시는 개인 장비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6000m 이상에서 꼭 필요한 이중화(내피와 외피가 따로 분리된 고산 등반용 등산화)만 100만원 가까이 합니다.
네팔 카트만두의 에이전시에 직접 부킹할 수도 있습니다.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만, 보통 3000~4000달러(350만~500만원) 정도입니다. 카트만두 에이전시에 제시하는 비용은 인천-카트만두 항공료를 뺀 가격입니다.
“아일랜드피크 520만원 상품 예약했다. 이 밖에 성공했을 때 셰르파들 성공 너스로 50달러(6만원), 가이드비 200달러(24만원)가 따로 든다고 하더라” (김순식)
“메라피크 등반 비용은 600만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네팔 에이전시에 직접 컨택했더니 항공료를 빼고 800만원 정도라고 하더라. 한국의 여행사에 예약하는 게 더 싸더라.”(김수성)
7 4명 “목표는 7대륙 최고봉 완등”
통화 중 여러번 놀랐지만, 가장 놀란 내용입니다. 대부분 히말라야 경험이 딱 한 번인데, 꿈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넘어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있다고 답해서 말입니다. 7대륙 최고봉은 북반구에 3개 남반구에 4개가 있습니다. 북반구는 아시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 북미 최고봉 맥킨리(6194m)입니다. 남쪽은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4892m)·오세아니아 칼스텐츠(4884m)·남미 아콩카구아(6962m)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버킷리스트로 꼽는 대상입니다. 터무니없다고요?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사람이 ‘돈 많은 일반인’ 이었습니다. 미국인 사업가 리차드 배스 (Richard Bass)는 1985년 이 계획을 완수합니다.
이에 앞서 세계 최초 5대륙 최고봉(오세아니아·남극 제외)을 등정한 사람은 아직까지도 일본 최고의 산악인으로 일컫는 우에무라 나오미(1984년 맥킨리에서 사망)입니다. 그는 5대륙 최고봉을 등정하고 하산하는 길에 길지 않은 모험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우에무라는 ‘전설의 산악인’ 칭호가 과하지 않을 만큼 인생 자체가 모험이었습니다. 그런 그도 맥킨리의 눈폭풍에 사라졌습니다. 물론 당시와 비교해 지금은 등반 조건이 훨씬 좋아졌지만요.
국내 7대륙 최고봉 등정자는 현재 10명입니다. 최초는 산악인 허영호(63) 대장이 1995년, 두번째는 박영석(1999년 작고) 대장이 2002년에 달성했습니다. 이후 여성 산악인 오은선(53, 2004년) 씨와 김영미(37, 2008년)씨가 완등자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매킨리 등반 중 동상으로 손가락을 잃은 김홍빈(53) 대장도 2009년 완등했습니다. 이렇게 전문 산악인 5명, 나머지는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인 5명도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수준급 암벽·빙벽 등반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10명 중에 4명이 7대륙 최고봉 등정, 그럼 6명은요? 6명 중 2명은 “7대륙 최고봉까지는 아니지만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올라보는 게 버키리스트”라고 했습니다. 꼭 에베레스트가 아니라 “8000m면 된다”고 답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8000m 봉우리 중 일반인도 등정 시도가 가능한, 또 실제로 가장 많이 시도하는 봉우리는 초오유(8201m)입니다. 등반 난이도가 다른 곳에 비해 좀 더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까지입니다. 흔히 '꿈은 클수록 좋다'고 말하지요. 꿈을 가진 이들이 부럽습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