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찍는페미, "더이상 혼자가 아니야!"

중앙일보

입력 2017.03.03 17:55

업데이트 2017.03.03 18:10

지난해 10월 21일 SNS에서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됐다. 박효선 영화감독의 트윗이 발단이었다. “원래 이런 바닥이니 참으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여성들. 파렴치한 성범죄자 중엔 지금 너무 유명해진 기성 감독도 있다. 그에게 당한 분은 ‘원래 이런’ 업계에서 참고 고통받다 결국 떠났다”며 “앞으로 이런 문제에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쓴 글이었다. 이후 하루에 40건 이상의 해시태그가 올라왔다. 성희롱과 성차별이 난무하는 남성 중심 제작 환경, 이를 묵인한 폭력의 카르텔에 대해 여성 영화인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고발과 폭로는 공론화와 연대로 이어졌다. 페미니스트 영화인 모임인 ‘찍는 페미’ 페이스북 페이지가 오픈했고, 영화 감독과 제작 스태프, 배우, 영화제 스태프, 영화학과 학생, 영화 잡지 편집자 등 2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가입했다. ‘그 많던 감독 지망생 여성들은 어디로 갔나?’ ‘성녀와 창녀, 어머니와 팜므파탈, 아줌마와 소녀, 캔디와 공주의 범주를 벗어난 한국 여성 캐릭터가 존재하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찍는 페미’는 활동을 시작했다. 

업계도 움직이고 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성희롱 예방 교육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여성영화인모임은 폭력 피해자 지원 상설 기구를 통해 성폭력 피해 영화인을 지원하기로 했다. 해시태그 운동과 ‘찍는 페미’의 결성은, 현재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보여 줬다. 이것은 우리 영화계와 여성 영화인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던졌을까.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하고, ‘찍는 페미’를 만든 박효선 감독에게 글을 청했다. 박 감독은 단편 ‘하마비계’(2014), 뮤직비디오 ‘콜 마이 네임(call my name)’ 등을 만들었다.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그 이후

사진='찍는 페미' 페이스북

사진='찍는 페미' 페이스북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길 며칠째였다. 지난해 10월 트위터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매체와 단체에서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영화계 문제도 산발적으로 언급되긴 했으나, 대부분 영화계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구체적인 사건을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후 ‘걷기왕’(2016, 백승화 감독)에 공동 작가로 참여한 남순아 감독이 주도해 촬영 현장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김현진 작가가 ‘#문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고백한 트윗을 본 새벽, 나는 ‘재능이 넘쳤지만 단편 이후로 영화계에 질려 떠난 언니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트윗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 현장에 대한 폭로가 터져 나왔다. 그 이튿날인 10월 22일 배우 김꽃비, 신희주 감독과 뜻을 모아 ‘찍는 페미’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었다.

‘찍는 페미’에 우리는 이렇게 썼다. “이 부조리한 쳇바퀴 속에서 ‘이건 잘못됐어’라고 말하며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면, 큰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고, 동지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이 신났다. 하지만 곧바로 TV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1992~, SBS)가 문화계 성폭력 관련 제보를 받는다는 공지를 올리고, 각 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내가 생각보다 큰일을 저질렀구나. 기획 기사가 쏟아졌고, 전국영화산업노조와 영화계 페미니즘을 주제로 인터뷰했으며, 인디포럼·여성민우회 등에서 특별 교육과 대담이 이어졌다.

'찍는 페미’가 일으킨 나비효과

그동안 “‘찍는 페미’를 개설하고 활동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사실 이런 반응이 약간 의아했다. 나는 그저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 실행에 옮겼을 뿐,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장이 이렇게 클 것이라곤, 그것도 긍정적인 방향일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해시태그로 피해 사실을 폭로한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 나 또한 어느 정도는 ‘한국의 상업영화판에서는 감독으로 성장하기 힘들 것’이라는 잠정적 포기 상태였다. 영화계 카르텔의 부당함에 대해 주변 영화인들에게 말하면 나이·성별을 막론하고 “너 그렇게 까다로우면 영화 못 찍겠다”는 말을 들었고, 그들은 “(너는) 외국 생활이 더 맞는 것 같다”며 유학을 권했다. 웃기지 않은가? ‘1000만 영화’가 심심찮게 탄생하는데, 이를 만드는 많은 사람들은 노동력과 영혼을 착취당하고 있다. 그 와중에 여성들은 안전에 대한 위협까지 버텨 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이 바닥’의 특성으로, 때로는 ‘내가 이렇게 최악까지 겪어 봤다’는 무용담이나 도시 전설처럼 소비되곤 한다.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 개인은 그 무리에서 튕겨져 나간다.

지난해 12월 열린 ‘찍는 페미’의 첫 번째 총회엔 50여 명이 참석했다. 다섯 시간 가까이 이어진 토론에서 한 멤버가 “‘여자는 원래 영화 못 찍는다’는 말만 듣고 시작하기도 전에 꿈을 접었다가, ‘찍는 페미’를 보고 용기 냈다”는 이야기를 해 줬다. 10년을 버티다가 못 참고 영화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로 결심한 멤버도 있었다. 불만이 많았음에도 어떻게든 크고 작은 작업을 이어 왔던 나에게는 충격인 한편, 고마움을 전한 이들의 심정이 이해됐다. 여성이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반은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현장에 적응하는 과정에서도, 적응에 성공해 창작자로서 일하는 데도,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찍는 페미’ 멤버들과 ‘세계여성공동행진’에 참여하고 고민을 나누며, 예전에는 몰랐던 해방감을 느꼈다.

사진='찍는 페미' 페이스북

사진='찍는 페미' 페이스북

함께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승리했다

현재 ‘찍는 페미’는 소모임(공문팀·상영팀·성폭력 예방지침팀·스터디팀·전자소통팀·회칙팀 등)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모색 중이다. 공문팀에서는 여성 혐오적 콘텐트·발언에 대해 항의 서한을 보내고 있으며, 상영팀에서는 정기 상영회를 기획 중이다. 성폭력에 반대하는 캠페인 영상물을 제작하고, ‘찍는 페미’ 활동을 책으로도 펴낼 예정이다. 다른 장르의 여성 예술인과 연대도 이어 간다. 궁극적으로는 ‘찍는 페미’ 내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동안 여성 영화인에게 일을 맡기고 싶거나, 안전한 환경에서 영화를 찍고 싶어도 네트워크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은 분께 ‘찍는 페미’가 다리가 되길 바란다.

경력이 단절된 이들 모두가 돌아올 순 없겠지만, 우리는 이제 도울 수 없어 괴로웠던 방관자도, 무기력한 피해자도 아니다. 그렇기에 떠나려는 동료에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존재’이기에 받는 차별이 카메라 앞이나 뒤에서 이루어진다면, 잘못은 당신이 아닌 그 세계에 있다’고. ‘극 중에서 여성이 성애 중심적인 서사의 도구나 혹은 괴물 같은 모성으로만 그려진다면, 소수가 지워지는 영화라면, 우리는 그 안일함에 비평하고 떠들 수 있어야 한다’고.

‘찍는 페미’가 왜 필요한가 팔짱 끼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 ‘찍는 페미’를 만들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것을 보고 싶었다. 장비가 무거워 기술 스태프를 할 수 없다면,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왜 모든 장비의 기준이 성인인 비장애인 남성에게 맞춰져 있는지’를 고민하는 새로운 ‘판’ 말이다. ‘시간이 돈’이라는 영화판에서 그게 가능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시도하려 한다. 폭로와 고발의 해시태그 ‘#영화계_내_성폭력’은 지난 3개월간 ‘#STOP_영화계_내_성폭력’ 운동이 되었고, 촬영 현장에서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의 ‘#그건_연기가_아니라_폭력이다’ 운동으로 나아갔다. 변화는 시작됐다. 조금 느려도, 대단한 작품을 못 찍어도, 영화계를 바꿀 만한 일들을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여기 모여 서로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승리를 이뤘으니까.

글=박효선 영화감독, 사진=‘찍는 페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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