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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모기와 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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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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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자리,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은 한가로웠다. 지난 일요일 짬을 내서 만해문학박물관을 찾았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인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의 발자취를 모은 곳이다. 전시실 로비에 걸린 만해의 친필 ‘풍상세월 유수인생(風霜歲月 流水人生)’이 손님을 맞았다. 온갖 난관에도 삶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 일제강점기 숱한 고초를 겪었던 만해의 기개가 떠올랐다.

만해박물관에선 1926년 발간된 『님의 침묵』 초간본을 만날 수 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가 곳곳에 붙어 있다. 이날 눈에 띈 건 산문시 ‘모기’다. 과문해서인지 처음 접했다. 만해는 두 손 합장하고 모기에게 크게 배울 것이 있다고 읊었다. 사람은 사람의 피를 서로 먹는데, 모기는 동족의 피를 빨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한 조선인을 겨냥한 말이다.

‘파리’라는 시도 있다. 풍자가 더욱 매섭다. ‘너(파리)는 이 세상에 없어도 조금도 불가(不可)할 것이 없다’고 사람이 비꼬자 파리가 답한다. ‘너희(사람)는 나를 더럽다고 하지마는 너희들의 마음이야말로 나보다도 더욱 더러운 것이다.’ 미물 중 미물인 모기와 파리를 사람과 평등하게 바라보는, 아니 때론 높게 보는 만해의 눈이다. 이처럼 시인은 세상을 뒤집어본다. 역설과 전복(顚覆)의 상상이다.

모기와 파리에서 만해를 다시 생각한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이후에도 사회개혁에 헌신한 그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모기와 파리보다 나은가. 나라를 되찾은 지 70년 넘게 지났건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3·1운동의 태극기와 서울광장의 태극기를 견주면 더욱 그렇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놓고 ‘피의 내전’마저 거론되는 오늘이다.

어제는 3·1절 98돌, 촛불과 태극기의 격돌이 되풀이됐다. 헌재 심판 결정에 대한 불복 움직임도 심상찮다. 모기와 파리가 보면 뭐라 할까. 만해의 명시 ‘복종’을 펼쳐본다.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우리가 가야 길이 보인다. 게다가 지금은 식민지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만해는 대단한 긍정론자였다. “조선 청년은 시대적 행운아”라고 외쳤다. 역경을 깨치고 낙원을 건설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서다. “용사는 요에서 죽는 것을 부끄러워한다”고 썼다. 쪼개진 광장에 어지러운 마음, 만해에게서 새로운 내일을 본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