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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3월호]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의 아내 김미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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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3월호]

[여성중앙 3월호]

2월 12일 아침,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이하 안철수 대표)와 아내 김미경 교수(서울대학교 의과대학)가 함께하는 서울 돈암동 조계종 흥천사 정념 스님과의 대담에 동행했다. 두 사람은 대담이 끝나고 차를 마시러 산을 오르면서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눴다. 둘 다 큰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30여 년의 세월을 함께한 부부라기보다는 연애 중인 연인처럼 보였다. 대화에 끼어들 틈을 보던 기자는 안철수 대표에게 “김미경 교수님은 대표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꼭두새벽부터 낯간지러운 질문에 멋쩍어하는 것도 잠시, 안 대표는 이내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우선은 정말 미안하죠. 정치인의 아내가 된 이후로 어디서든 공적으로 노출돼 행동의 제약이 많을 텐데도 티를 내지 않거든요. 그리고 늘 고맙습니다. 다 아는 얘기지만, 작년 제20대 총선 때 국민에게 정정당당히 평가받고 싶어 제가 다시 노원구에서 출마했는데, 당시 정당의 수장을 맡고 있던 터라 제 지역구에선 제대로 된 선거 캠페인을 못 했어요. 그때 제 아내가 발 벗고 나서서 직접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 대신 선거 운동을 해줬습니다. 만약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전 재선에 실패했을 겁니다.”

아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안철수 대표와 그런 남편의 따뜻한 시선을 하나도 놓치지않고 눈 맞춤으로 답하는 김미경 교수. 그녀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고매하고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그녀는 ‘남편’ 대신 주로 ‘설희 아빠’란 호칭을 썼는데 안철수 대표에 대한 평소의 신뢰와 친밀함이 느껴졌고 짧은 대화를 하더라도 존댓말을 사용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다른 정치가들의 아내와는 달리 정치 참여에 소극적이었던 김미경 교수는 2016년 제20대 총선을 기점으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마음을 바꿀 수 있었을까?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서울 돈암동의 한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긴 후 첫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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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 주립대학교 법대의 박사 학위를 딴 후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여자. 뛰어난 학자로서 명성을 쌓던 중 남편이 정치를 시작하자 묵묵히 선거 활동에 동참하는 여자. “정치를 시작하고 5년 동안 초심을 잃지 않는 남편을 꼭 돕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는 안철수의 아내 김미경(54)이다.

① 딸 설희를 안고 있는 안철수(1989). ② 조계종 흥천사 정념 스님과 대담 중인 안철수와 김미경(2017). [여성중앙 3월호]

① 딸 설희를 안고 있는 안철수(1989). ② 조계종 흥천사 정념 스님과 대담 중인 안철수와 김미경(2017).[여성중앙 3월호]

그동안 정치 참여에 소극적인 편이었습니다
2011년 처음 정치에 입문하겠다고 할 때만 해도 둘 다 아무것도 몰랐어요. 저는 어떻게 도와야 할지 전혀 몰랐고, 설희 아빠도 저에게 무엇을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죠. 저는 그때도 지금처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을 가르치며 제 분야에서 제 일을 성실히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 제 모습이 소극적이라는 평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혹시 가족들이 반대하지는 않았나요
처음에 서울시장 선거에 나간다고 했을 때 시아버님께서 반대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데 결국 “50이 넘은 자식이 하고자 하는 일의 ‘예기’를 꺾는 것도 옳은 건 아니다”라며 믿어주셨죠. 딸 설희도 사랑하는 아빠가 다칠까 봐 걱정된다며 반대했다가 지금은 열렬히 응원합니다. 저 역시, 설희 아빠는 결심이 서면 끝까지 하는 사람이란 걸 알기에 반대한 적은 없었어요.

최근엔 정치가의 아내로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초심을 지키는 정치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정계에 진출하고 지난 5년 동안 머리에 새하얗게 서리가 내린 것 말고는 변한 게 없는 분이죠. 가족과의 시간마저 반납하고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오로지 정치, 국민에 대한 생각뿐이었죠.

"남편 같은 사윗감이면 무조건 환영"

이렇게 성실히 일하는 설희 아빠를 어떻게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2번의 선거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학습이 됐어요. 선거 캠페인을 할 때는 아예 휴가를 내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교직을 놓고 싶지 않아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는 거죠.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느라 힘들긴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압박 때문인지 효율적으로 시간 배분을 해서 하고 있습니다.

해군 대위 임관식 중인 안철수와 안철수의 어머니 박귀남 여사(1991). [여성중앙 3월호]

해군 대위 임관식 중인 안철수와 안철수의 어머니 박귀남 여사(1991).[여성중앙 3월호]

집에서는 어떻게 내조하는지 궁금합니다
설희 아빠는 마라톤을 좋아해서 외국 출장을 나가도 숙소 주변을 4~5km씩은 꼭 뛰어요. 순환기 계통의 운동을 잘하고 있으니 저는 주로 근력 운동을 하라고 얘기해요. 집에서 시간 될 때마다 운동하라고 감시하는데 요즘 워낙 늦게 귀가하니 말하면서도 미안하죠. 늦게까지 일하고 온 남편에게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싶어 샐러드나 파스타처럼 가벼운 음식을 만들어놔요. 많이 먹은 날엔 “다시 운동하세요”라고 또 잔소리를 합니다.

-안철수 대표는 어떤 남편인가요
같이 살면서 한번 집에 들어오면 다시 약속을 잡아 나가는 일이 없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 하는 가정적인 남편입니다. 늘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둘이 얘기를 하다가 “어디 가서 먹었던 음식이 맛있었어요”라고 하면 그걸 기억했다가 언젠가는 꼭 사 갖고 들어오곤 하는데, 어떨 땐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란 생각이 들 만큼 오래전에 얘기한 걸 사 오기도 해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멋있어지는 남편 같아요. 결혼 전엔 ‘철수 형’이라 부르며 같이 놀러 다니곤 했는데(웃음).

연애할 때는 어떤 연인이었나요
같은 학교 같은 과 1년 선후배로 ‘캠퍼스 커플’이었어요. 의사가 없는 마을인 무의촌에 방문해 의료 봉사 활동을 같이하던 게 인연이 됐죠.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설희 아빠가 멋져보였어요. 학교로 돌아온 후엔 도서관에서 제 자리도 대신 맡아주고 커피도 함께 마시는 사이가 됐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요.
부산고등학교 동창들과 낙동강으로 나들이를 간 안철수(1981). [여성중앙 3월호]

부산고등학교 동창들과 낙동강으로 나들이를 간 안철수(1981).[여성중앙 3월호]

멋진 ‘철수 형’이라면 그에 걸맞은 근사한 프러포즈를 했을 것 같습니다
이 다니며 당연히 결혼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고 특별히 프러포즈 같은 건 없었어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설희 아빠의 졸업식이 있던 1986년 2월이었어요. 부모님이야 오실 거라 예상했는데 큰이모님, 작은이모님 등 일가친척이 총출동하신 거죠. “졸업식 때 꼭 와달라”는 말 한마디에 갔다가 설희 아빠의 가족을 다 마주하게 돼서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죽 인사드리다 보니 어느새 제 자리가 정해져 있더라고요. 그렇게 자연스레 아내가 됐고 지금도 설희 아빠의 옆에 있네요.

딸 이름이 자주 언급돼서 하는 얘긴데 두 분과 딸의 관계가 원만해 보입니다
가족이라고 해봐야 저희 셋밖에 없으니 서로에게 굉장히 애틋한 편이에요. 지금 딸아이가 미국에서 박사 과정 마지막 코스를 밟고 있어 셋이서 시간을 맞춰서 함께 ‘페이스 타임’을 하며 안부를 묻곤 하죠. 설희는 어릴 때부터 아빠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존경하는 아이였어요. 그래서인지 더욱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어요. 대학에 진학할 무렵, “난 뭐가 되면 좋겠어? 아빠처럼 의사가 될까?” 하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저희는 “우리 눈치 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한다”고 얘기했죠. 딸아이는 미련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과 화학을 택하더군요.
두 분을 닮아 학업 성취도가 높았겠지요
아니에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 면담을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있을 것 같으냐고 물으시기에 “그래도 중간 정도는 하지 않나요?”라고 답했는데 알고 봤더니 꼴등을 겨우 면하는 수준이었어요.

선생님께서 “이대로 두면 안 된다”고 하시며 여러 학원을 추천하셨어요. 근데 재미있는 건 그중 한 학원에서 반 배치 시험을 봤는데 그것도 잘 못 봐서 제일 못하는 반으로 들어갔어요. 그래도 공부 못한다고 나무라거나 학원을 여기저기 보내는 편은 아니었어요. 스스로 필요하다 느끼면 열심히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고등학교 1학년쯤부터 이과 계열의 과목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공부에 취미가 붙었는지 잘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①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때 외부에서 특강 중인 안철수(1990). ② 석사 학위 수여식 날 함께한 안철수와 김미경(1988). [여성중앙 3월호]

①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때 외부에서 특강 중인 안철수(1990). ② 석사 학위 수여식 날 함께한 안철수와 김미경(1988).[여성중앙 3월호]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에 강조한 교육 철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아이 하나 키우며 철학까지 말하긴 그렇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능한 한 길게 가지려 애썼습니다. 초등학생 때 학업 성적이 낮았던 것도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탓이라 생각했거든요. 늘 집에 와서도 병원과 환자 생각을 하느라 애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듣질 못했어요.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겠다고 마음먹은 뒤로는 모든 잡생각을 끊고 아이와의 대화에 전념하며 우리 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담아들었어요.

그러고 나니 아이가 덜 불안해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자신 있게 하더군요. 물론 가끔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었습니다만, 아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못 참고 사사건건 간섭하다 보면 실수를 안 하는 아이로 키울 순 있어도 실수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아이로는 키울 수 없었을 거예요. 자라는 아이에겐 아이 스스로가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 있도록 부모의 믿음과 정돈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대 후반, 결혼 적령기의 딸이 어떤 사윗감을 데리고 오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정치를 하니 내 혼삿길은 막혔다”고 얘기하곤 해요. 그런데 사실 누구를 데려와도 딸이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괜찮을 것 같아요. 부모로서 바라는게 있다면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아내의 자아실현을 도와줄 수 있는 이해심 넓은 남자를 만나면 좋겠죠. 얘기하고 보니 설희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는데…. 제가 너무 속보였나요?(웃음)

안철수 대표의 대선 공약 중 교육 관련 공약이 가장 눈에 띕니다. 두 분이 교육자 출신이다 보니 아무래도 현장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국정 농단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 58년 만에 처음으로 수출이 2년 연속 감소했습니다. 가계 부채는 1300조원이 넘고 청년 실업률은 계속 치솟고 있어요.

지금과 같은 대내외적 국가 위기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단기적인 플랜보다 중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교육 혁명’입니다. 우리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1951년부터 사용했던 ‘6-6-3 제도’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어요. 4차 산업 혁명은 1~3차 산업 혁명처럼 단순한 원인 하나로 발발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이 융합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5-5-2 제도’로의 학제 개편을 통해 입시 교육과 보통 교육을 분리해야 합니다. 초등·중등 교육 10년을 거쳐 학생 스스로 원하는 대로 진로 탐색 학교와 직업학교 중 선택해 2년간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 충분히 준비한 후 사회에 나올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지원처를 개편해서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가르칠 수 있는 미래 교육으로 꼭 바꿔야 합니다.

마 전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안 대표와 함께 출산과 육아 문제에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워킹 맘의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깊이 공감해요. 제가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지방 대학의 전임 강사로 발령 났을 때 설희 아빠는 군 복무 중이어서 저 혼자 아이를 키우며 박사 과정을 밟았거든요. 집무실에 아이를 두고 강의하러 간 적도 있었죠.

육아는 엄마나 아빠 어느 한쪽에서, 혹은 부모가 모두 책임질 수 없고 사회에서 책임을 분담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현실에서 어렵게 일자리를 찾은 여성들도 출산 후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잖아요. 국가적 차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성의 경제 참여율이 남성의 수준만큼으로 늘어나면 국내 총생산(GDP) 증가율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하니 출산과육아 문제만 해결해도 국가 경쟁력까지 함께 높일 수 있는 거죠.

현재의 안철수와 김미경(2017). [여성중앙 3월호]

현재의 안철수와 김미경(2017).[여성중앙 3월호]


제가 30여 년간 지켜본 인간 안철수는 본인이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입니다. 안철수가 한 약속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실현될 것입니다.

여성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다 얘기하지 않아도 작년에 워낙 큰일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면 되는 줄 알았잖아요. 그런데 정치가가 잘못하면 나라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디서든 한 가족의 어머니로서, 딸로서, 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계실 텐데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알아야죠.

저도 남편이 정치에 입문하면서야 정치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해 여전히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자 세상을 보는 시야가 훨씬 더 넓어지고 많은 사람을 헤아리며 살게 됐어요. 여성들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함께 행동해주신다면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안 대표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합니다. 아마 안 대표도 이 정도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설희 아빠는 “원래 지지율 이라는 것이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요동친다”고 말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예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작년 10월 24일 JTBC에서 ‘박근혜 대통령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해 처음 보도했을 때 국민 대부분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랐어요. 대신에 각자의 분노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그때 이재명 성남시장이 많은 발언을 했고 지지율 역시 막 치고 올라갔죠.

하지만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헌재의 심판이 시작된 다음부터는 상대적으로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고, 만약 탄핵이 결정된다면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대선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국민 모두가 희망 찬 미래를 약속하고 대변해줄 대선 후보, 진짜 일꾼처럼 일해줄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기대들에 부합할 수 있는 남편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왜 안철수여야 할까요
설희 아빠는 1988년 처음 V3 백신을 개발한 후 기업을 제외한 전 국민에게 무료로 배포했어요. 사이버 안보상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백신을 개발해 나라의 위기를 막았고, 외국에서 수천억원을 제안했을 때도 거절했습니다.

‘정직하면 돈 못 번다’는 주변 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투명 경영으로써 정면 돌파한 거죠. 재산의 절반인 1500억원을 출연해 공익 재단 ‘동그라미’를 설립할때도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니 재산의 일부는 다시 사회로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는데 옳은 말이기에 저 역시 흔쾌히 동의했죠.

홀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에서 나와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지난 총선 때 38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3당 체제를 확고히 했습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많은 성과를 낸 대선 후보가 있었나 싶어요. 제가 30여 년간 지켜본 인간 안철수는 본인이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입니다. 안철수가 한 약속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실현될 것입니다.

에디터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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