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암살조 4명 도주 4일 뒤 나타난 곳은 … 블라디보스토크 추격전

중앙일보

입력 2017.02.28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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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3일 발생한 김정남 암살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북한 국적 4명의 평양행을 막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국 정보 당국이 긴박하게 추격전을 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러시아의 협조를 구하지 못해 결국 추격전은 실패했다고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이 27일 전했다.

17일 러시아 극동도시서 무슨 일이
한국 정보당국, 말레이시아와 공조
김정남 독살 직후 CCTV 찍힌 일당
3개 국 1만6000㎞ 행적 뒤쫓아
평양행 고려항공 타기 전 위치 파악
러시아에 억류 요청했지만 거부

지난 13일 김정남 암살 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출국 중인 북한 국적의 암살 용의자들.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지현·이재남·홍송학. 작은 사진은 공범인 오종길 . [로이터=뉴스1]

지난 13일 김정남 암살 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출국 중인 북한 국적의 암살 용의자들.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지현·이재남·홍송학. 작은 사진은 공범인 오종길 . [로이터=뉴스1]

소식통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은 사건 직후인 13일 공항 폐쇄회로TV(CCTV) 등을 통해 북한 국적 용의자들의 신원과 이들이 사건 직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출국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이들의 신병 확보를 위한 수사 협조를 요청했고, 사건 발생 직후부터 말레이시아 측과 정보 공유를 해온 한국 정보 당국도 추격전에 가세했다. 이재남(57), 오종길(55), 이지현(33), 홍송학(34) 등 용의자 4명의 도주극은 주도면밀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 러시아 모스크바(추정) → 블라디보스토크까지 4박5일간 장장 1만6000㎞에 달하는 도주로를 선택했다. 정보 당국은 이들의 행적을 쫓는 과정에서 평양행의 최종 경유지가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낮 12시20분 출발하는 고려항공 JS272편이 이들이 마지막으로 탈 비행기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김정남 암살사건의 ‘스모킹 건(결정적 단서)’인 이들의 평양행을 막기 위해 정보 당국은 긴급히 러시아 측에 신병 확보를 요청했다. 1983년 버마(현재 미얀마) 아웅산 테러와 87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당시에도 용의자 검거가 곧 북한 소행을 입증하는 스모킹 건이었기 때문이다. 정보 당국이 러시아 측에 신병 확보를 위해 억류 요청을 했다는 건 처음 드러난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출국을 허용했다고 한다. 사건 초기 수사가 충분히 진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용의자도 피해자도 모두 북한 국적인데 러시아가 굳이 한국 측 요청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외교 소식통은 분석했다.

외교 당국과 정보 공유 안 한 건 아쉬움

이날 밤늦게 말레이시아 현지에 머물고 있던 북한 국적의 이정철만 체포됐고, 현지에 머물던 또 다른 용의자인 북한 외교부 소속 2등 서기관인 현광성과 고려항공 소속 김욱일은 대사관으로 도피했다. 정보 당국이 외교부 등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점에 대해선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보 당국의 추격전이 벌어지던 지난 16~17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독일 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했다. 용의자들의 평양 도착 29시간 후인 18일 오후 6시30분(한국시간)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에선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과 30분 동안 회담을 진행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회담 후 브리핑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회담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담에서 김정남 암살사건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윤 장관이 도주극의 전말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전직 고위 외교안보 당국자는 “사안의 위중함을 감안할 때 청와대 또는 국무총리실이 컨트롤타워가 돼 정보 당국뿐만 아니라 외교 당국 등이 총동원됐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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