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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바퀴벌레들이 노리는 것은 수리 머릿속의 아다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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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일러스트=임수연

일러스트=임수연

“야, 남자가 뭐 그런 걸로… 창피하지도 않아?”
바퀴벌레를 보고 호들갑인 마루를 향해 사비가 말했다. 골리 쌤은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앞에 벌어진 광경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우리가 흔히 보던 그 바퀴벌레가 아니었다.

판게아 롱고롱고의 노래 74화-공격당한 벙커2

“쌤, 쌤… 남… 남자는 뭐… 이, 이런 상황에서도 꼭 용, 용…감해야 하,하,하나요?”

벌써 도망갔어야 할 마루가 그 자리에 꼭두각시처럼 서서 말을 더듬었다.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었다. 사실 달리 도망갈 곳도 없었다.

바퀴벌레는 날아다녔는데 엄청 컸다. 드론 만한 크기에 눈알은 시뻘건 색이었다. 휭휭 날아다녔다. 실제 생명체 같기도 하고 기계 같기도 한 바퀴벌레는 적의 뇌신경계를 공격하는 듯했다. 긴 더듬이를 쭉 뻗어 나비족 즉, 네피림의 눈알을 쏜살같이 뚫고 뇌까지 찔렀다. 네피림 머리에 있던 작은 우주가 쿡 튀어나왔다. 바퀴벌레는 그 우주를 냉큼 먹어 치웠다. 바퀴벌레는 점점 뚱뚱해지고 커졌다. 네피림은 곧바로 쓰러졌다. 이런 죽음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역겨워서 구역질이 나왔다.


“도대체 얘네들 어디서 온 거야? 징글징글하다.”

사비는 장난치듯 말했지만 잔뜩 겁먹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수리는? 수리는 어디에 있지?”

모나가 벙커 안으로 뛰어들어오더니 소리쳤다. 수리가 보이지 않았다.

“먼저 수리를 찾아야 해. 적이 누군지 모르지만 수리가 목표일 수 있어.”

아메티스트도 소리쳤다. 사비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왜 수리를….”

“수리의 머릿속에 있는 아다마 말이야. 저건 다른 생명체로 이식이 가능해. 어마어마한 셀(cell·세포)이라고.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어. 사비, 정신 차려!”

아메티스트가 멍하게 서있는 사비를 거칠게 흔들었다.

“그럼 수리도 저 네피림처럼 당한다는 거야? 눈을 뚫고 뇌를 찔러서 아다마를 끄집어낸다는 거야? 그런 거야? 그렇지?”

사비가 울먹였다.

“아미테스트, 넌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는데 왜 말 안 한 거야?”

아메티스트는 머뭇거렸다. 이번엔 사비가 아메티스트를 거칠게 흔들었다.

“그래. 난 이미 알고 있었어.”

사비가 아메티스트를 노려봤다.

“너희가 쓰레기 행성에 나타났을 때 내가 책에 관해 이야기 했던 거 기억나?”

사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책에 이미 쓰여 있었어. 그 책은 앞으로 일어날 모든걸 알려주고 있었거든. 난 수리가 나타날 줄 알고 있었고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버틴 거야. 그래. 버텼어. 수리만이 날 구원해줄 거라고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차질이 생긴 거야.”

사비가 눈을 크게 떴다.

“너희가 오기 전에 분지에서 나비들이 죽었잖아?”

사비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아메티스트는 계속 말했다.

“난 수리를 이곳까지 오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때 나비가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쯤 오메가 고고학교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거야.”
“정말?”

사비는 꼼짝도 하지 않고 집중했다.

“나비들이 죽는 건 책에 없었어. 내가 수리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다가 멈춘 이유이기도 하지.”

아메티스트는 기운이 없었다.

“그런데 수리는 뭘 잘못한 거야? 나비가 죽은 거랑 수리는 무슨 관계지?”

사비의 궁금증은 계속 되었고 이를 참지 못한 마루가 끼어들었다.

“지금 이 마당에 토론 배틀하니? 바퀴벌레한테 죽고 싶어? 저것 봐. 무섭게 노려보며 대기하고 있잖아?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마루가 사비를 잡아 끌었다. 그러나 사비는 마루의 손을 뿌리치고 아메티스트만 바라보았다.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롱고롱고.”

그때 바퀴벌레들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도망가야 한다고! 사비!”

마루가 사비를 더 세게 끌어당겼다.

“어디로? 밖은 우주야. 어디로 도망가냐고?”

사비가 버럭 소리질렀다. 마루는 곧 시무룩해졌다.

“얘들아. 수리부터 찾아. 일단 수리를 찾아야 해.”

모나도 이제 토론 따위는 그만두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었다.
모두 수리를 찾기 시작했다.
바퀴벌레들은 네피림과 사람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벙커 안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리와 그 일행은 공격하지 않았다. 갑자기 벙커 밖이 소란스럽더니 다른 벙커에서 온 다른 네피림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커다란 수정 구슬을 허공에 붕 띄웠는데 수정구슬이 깨지면서 흰 연기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잠시 후, 바퀴벌레들은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시뻘건 눈빛이 살아있는 걸로 보아서 죽은 건 아니었다.

“중추신경을 마비시켰나 봐.”

사비가 중얼거렸다.

“죽여야지! 왜 안 죽여요?”

마루가 화를 냈다. 그러자 사비가 마루를 말렸다.

“기억 안나? 네피림에겐 누굴 죽인다는 것 자체가 없다고 했었잖아? 죽인 적도 없었고 죽일 마음도 아예 없어. 저들은 평화 밖에 몰라.”

“자기 동료들이 죽어가는데도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 있는다고? 말도 안돼. 이건 미친 짓이야.“

마루는 삿대질까지 하면서 화를 냈다.

“그런데 수리는… 어디 있어?”

마루는 풀썩 주저앉았다.
골리 쌤이 소리쳤다.
수리는 벙커 안 쪽 모서리 틈새에 앉아있었다. 여전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듯 눈빛에 초점이 없었다. 눈알을 위 아래로 빠르게 굴렸고 눈을 자꾸 깜박였다. 손가락은 끊임없이 서로 맞물리며 움직거렸다.
아메티스트가 수리에게 다가갔다.

“수리, 넌 롱고롱고의 비밀을 찾으러 온 게 아니야. 이미 그 비밀을 보았어. 그 비밀을 보았기 때문에 넌 지금 그걸 토해내고 있어. 미안해. 내가 말하지 않은 건 네가 모든걸 다 알아버리면 나를 버릴까 봐 그랬어. 내가 필요 없어질까봐 그랬어. 난 오메가 고고학교….”

아메티스트는 목이 메는지 말을 멈추었다. 수리가 갑자기 아메티스트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고 강했다.

“빨리 이동해야 해.”

네피림이 말했다.
네피림은 죽은 네피림을 먼저 공간 이동 시킨 뒤 마비된 바퀴벌레들을 큰 그물에 한데 엮어서 다시 공간 이동 시켰다.

“우리 중앙벙커로 보냈어. 그곳에서 저들이 삼킨 작은 우주를 찾을 거야. 그리고 우리 가족을 살릴 거야.”
“그럼 우리 도망갈 필요 없어요?”

마루가 물었다. 그러자 네피림은 와이드 창으로 데려갔다.

“저길 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밖은 바퀴벌레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빈틈 없이 우주를 채우고 있었다.

“시즈들이야.”

“시즈?”

사비가 물었다.

“저들은 포위만 하는 시즈들이지. 우리는 못나가.”
마루가 털썩 주저앉았다.

“도대체 수리가 본 게 어떤 비밀이길래 이 난리일까?”

수리가 본 또 다른 숫자의 비밀
25920-피라미드의 문을 열 때 사용한 모든 비밀번호의 수
수리는 피라미드 문을 열 때 무려 25920번이나 오류를 겪었다. 그리고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가 네피림을 만났다. 25920은 다름아닌 롱고롱고 문자의 수였다. 롱고롱고 문자는 25920개였는데 대부분 잃어버리고, 나머지는 이스터 섬의 나무 태블릿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네피림들에게 롱고롱고는 우리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와 의미가 달랐다. 그들에게 롱고롱고 문자는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04 05 04 45 1967 06 05-요나구니 바다 근처의 구조 날짜
네피림은 레뮤리아가 멸망한 후 떨어져 나간 작은 땅덩이가 바다를 헤매다가 멈춘 곳에 자신들의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요나구니 바다였다. 네피림은 그곳에 있는 가족들이 보낸 구조신호를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구조신호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다. 구조신호를 보내려면 오벨리스크를 건설하고 황금을 에너지로 써야 하는데, 황금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31일 밤과 1일 새벽 사이 그러니까 32일-펠림프세스트의 날, 또다른 구조신호를 들게 되었다. 바로 수리가 들었던 구조신호와 같은 거였다. 네피림은 곧바로 구조대를 보냈다.

공격을 시작한 바퀴벌레 시즈
“시즈들이 공간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어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어요.”

마루는 몹시 실망스러웠다. 수리는 아직도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마루가 네피림을 빤히 쳐다보았다
“네가 무얼 원하는지 알고 있어. 하지만 잘 들어보렴. 우리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지전능하지 않아. 너희 문명보다 뛰어난 문명이라고 해서 전쟁을 잘하거나 잘 죽이지 못한다는 거야. 우리는 무기를 만든 적이 없단다.”
“헐!”
마루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기도 없고, 전쟁도 하지 않고 어떻게 주에서 살아남았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방어할 능력은 갖추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저들과 싸우지 않을 거야. 하지만 저들도 우리를 헤치지 못할 거야. 시즈들은 우리를 포위만 할테니까, 수리를 내놓을 때까지.”
더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럼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아메티스트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나갈 방법은 있어. 하지만 수리가 위험해져.”
모두 침묵했다. 그때 포위만 한다던 바퀴벌레 시즈들이 벙커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쿵 쾅 쿵 쾅 벙커가 흔들렸다.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요?”
사비는 경악한 채 소리쳤다.
'쿵 쾅 쿵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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