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KAIST 연구·창업 융합 실험 … 학생이 사장, 교수가 CTO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KAIST 창업원의 3D프린터 제작 장면. [사진 KAIST]

KAIST 창업원의 3D프린터 제작 장면. [사진 KAIST]

박용근(37) KAIST 물리학과 교수는 현직 교수이면서 벤처기업의 최고기술책임자(CTO)다. 2015년 9월 살아 있는 세포를 3차원 영상으로 실시간 관찰할 수 있는 홀로그래피 현미경 ‘HT-1’을 개발·제작하는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박 교수의 현미경은 줄기세포와 면역치료 등 기존의 관찰 방식으로는 힘들었던 연구와 치료도 가능하게 했다. 이에 힘입어 창업 6개월 만인 지난해 초부터 미국·일본 등으로 HT-1 수출이 시작됐다.

스타트업 허브 ‘창업원’ 개원 3년 #학생·교수 지원 3년간 60곳 키워내 #3차원 현미경 반년 만에 미·일 수출 #재무·투자 배우는 석사 과정도 신설

박 교수가 겸직으로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KAIST 창업원’ 덕분이다. 박 교수는 창업원에서 1년 동안 시제품을 만들고 창업 동료를 모으고, 다양한 창업 지원을 받았다. 박 교수는 “앞으로도 학교에서 연구를 하면서 CTO로서 회사 일에도 참여할 것”이라며 “대학은 창업이든 연구든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고급 인재를 창출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라고 말했다.

자료:UBS

자료:UBS

KAIST가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2014년 4월 문을 연 창업원이다. 이곳에서는 학내·외 학생·교수들의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아이디어를 발굴해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으로 키워준다. 창업준비공간(스튜디오)을 제공하고 다양한 창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창업 경험이 있는 교수들이 멘토 역할을 해주는 것은 KAIST 창업원의 강점이다.

창업원을 이끄는 김병윤(64) 물리학과 교수 역시 KAIST 교수로 임용된 이후 한국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경험이 있다. 지난 3년간 창업원을 통해 창업한 스타트업은 모두 60개에 달한다. 이 중 75% 이상(46개)이 학생 창업이지만, 토모큐브처럼 교수가 창업한 경우도 14건에 달한다. 김 교수는 “창업원에서는 학생·교수의 창업뿐 아니라 연구 성과로 나온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거나 도움을 주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자료:세계경제포럼

자료:세계경제포럼

KAIST는 지난해 2학기 창업원과 연계한 ‘창업석사’ 과정 ‘K스쿨’도 열었다. K스쿨은 석사 과정이지만 졸업 논문을 쓰지 않아도 되고 1년이면 졸업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기존 대학원의 각 학과 전공 지식과 함께 재무·회계, 투자 유치 방법 등 창업 관련 지식을 동시에 배운다. 창업 아이템 발굴부터 시제품 제작, 마케팅까지 창업과 관련한 실무도 익힐 수 있다. 창업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수업을 지도하고, 학생들은 아이템에 대해 전문가는 물론 동문 창업가들의 조언을 받을 수 있다. 또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팀 프로젝트 수업으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이희윤(60) KAIST 연구부총장은 “K스쿨은 과학기술과 기업가 정신을 결합한 공학기술 혁신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스탠퍼드 출신 기업 4만개, 연 매출 2700조원

한국 KAIST vs 미국 스탠퍼드대

한국 KAIST vs 미국 스탠퍼드대

KAIST는 미국 서부 명문 스탠퍼드대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6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스탠퍼드대는 세계 어떤 곳보다 창업 열풍이 뜨겁다. 1891년 설립해 최근까지 14만여 명의 졸업생이 4만 개가량의 기업을 창업해 560만 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이 기업들의 1년 매출은 2700조원으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가량 된다. 구글·테슬라·HP·시스코·유튜브·넷플릭스·페이팔·인스타그램·스냅챗·링크트인·왓츠앱·야후 등 미국의 대표적 IT 기업뿐 아니라 나이키·갭·바나나리퍼블릭 등 소비재 기업들도 스탠퍼드대 동문들이 창업했다.

김병윤 KAIST 창업원장은 “‘대학에서 연구를 해야지 무슨 창업이냐’고 물으면 나는 ‘창업과 연구가 별개가 아니다’고 답해준다”며 “좋은 연구는 좋은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박사 인력의 70%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이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