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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갈등만 부추기는 대선주자들, 파국 원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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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지난 25일, 전국의 도심은 촛불과 태극기 집회로 또다시 둘로 갈라졌다. 양측의 집회는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주최한 태극기 집회에선 60대 노인이 휘발유통을 들고 분신을 시도했다. 여기에다 ‘헌재 앞 무기한 단식 농성’ 주장에 이어 이정미 재판관 등 헌법재판관들의 실명을 거명하며 “안위를 보장 못한다” 같은 협박성 발언까지 터져 나왔다. 헌재의 권위와 민주주의를 짓밟는 이런 언행에 동조할 이는 상식 있는 시민 가운데엔 없을 것이다.

야당 잠룡들, 촛불집회 경쟁적 참석 #자극적 언사로 극단적 행동 부채질 #초당적 타협으로 나라 구할 용기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연 촛불집회에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이 목격됐다. 야당 대권주자들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이 참석해 ‘탄핵’ 구호를 외치며 헌재를 압박했다. 특히 이 시장은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지 않으면 승복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현직 지자체장 입에서 법치주의를 통째로 무시하는 발언이 나오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탄기국과 퇴진행동은 3·1절에도 서울 도심에서 수백만 명씩을 동원해 대규모 시위를 벌일 방침이다. 양측은 집회 뒤 똑같이 청와대와 헌재 방향으로 행진할 계획이라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우려된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나라를 두 동강낼 수준으로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정치인, 특히 대선후보들의 역할이다. 대선용 표몰이를 떠나 탄핵의 후유증을 극소화하고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한 분별 있는 행동이 절실하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거꾸로 집회 현장으로 달려가 자극적인 언사로 극단적 행동을 부추길 뿐이다. 특히 야권 대선주자들은 “기각은 상상도 어렵다”(문재인), “기각 자체를 상정하지 않겠다”(안희정)처럼 탄핵이 기각될 경우 승복하겠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헌재의 결정 이후가 더욱 걱정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태극기 세력, 기각되면 촛불 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정국이 해방 직후 좌우익 대립처럼 극도의 혼란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대선에서 누가 집권해도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가기 힘들 것이다. 그런 만큼 여야 대선후보들은 지금 당장 헌재 심판 이후 예상되는 국론 분열을 막을 대책 마련에 초당적으로 나서야 한다.

여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하야 결단과 정치권의 타협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다. 박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전제로 탄핵과 사법처리를 중단시켜 파국을 막자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야당 모두 부정적 입장을 보여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주말 집회에서 확인된 사회의 분열상이 해소되지 못한 채 다음달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릴 경우 나라는 예측 불허의 위기 상황에 빠질 우려가 크다. 어쩌면 나라가 두 쪽으로 쪼개지는 재앙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여야 대선주자들은 헌재 결정 승복 약속은 물론 그에 앞서 파국을 막을 수 있는 타협안 도출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