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독물 전문가 “김정남, 끔찍한 고통 속에 사망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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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현지 영자매체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내 치료소로 옮겨진 김정남 모습을 18일자 1면에 실었다. [사진 뉴스트레이츠 타임스 캡처]

말레이시아 현지 영자매체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내 치료소로 옮겨진 김정남 모습을 18일자 1면에 실었다. [사진 뉴스트레이츠 타임스 캡처]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은 신경성 독가스인 ‘VX’에 독살됐다”고 밝힌 가운데 현지 전문가는 “김정남은 치명적인 이 독극물에 의해 끔찍한 고통 속에 사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VX는 지금까지 알려진 독가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신경작용제여서 극소량만 사용해도 몇 분 안에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색깔과 냄새가 없는 이 독가스는 사린가스 100배 이상의 독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현지 언론 더 스타에 따르면 말레이시아과학대(USM)의 전직 독물(毒物) 학자인 줄케플리 아흐마드 박사는 “1980년대 이란ㆍ이라크 전쟁 당시 사용된 화학무기를 연구하는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면서 이런 개인적 견해를 피력했다.그는 “김정남 피살의 경우 피부를 통해 독극물 흡입이며 이런 경우 격렬한 독성효과를 유발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남 독살에 사용된 VX는 매우 강력한 것으로 10∼15㎎ 정도의 소량만으로도 신경계 교란을 일으켜 불과 몇 분, 몇 초 만에 김정남을 사망에 이르게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VX와 같은 신경독성 물질은 신경화학체계의 효소에 영향을 미쳐 체계를 중단시킨다“면서 ”이때 중독자는 호흡곤란 증세를 느끼고 질식해 쓰러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줄케플리 박사는 “현재까지 강력한 VX의 해독제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특히 고농도의 VX로 김정남을 공격한 2명의 여성 용의자들이 맨손으로 범행하고도 멀쩡하다는 경찰의 수사 발표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그는 “고농도의 VX는 피부를 통해 잘 흡수되고 심각한 중독증세를 유발하기 때문에 맨손으로는 물론 일반 장갑을 끼고도 만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용의자는 아마도 자신들을 VX로부터 잘 보호했고 김정남의 얼굴에 VX를 뿌릴 때까지 잘 보관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말레이시아대학의 독물학자인 무스타파 알리 모흐드 박사는 용의자들이 ‘피부의 건조 상태’에 따라 흡수되는 양상이 다르다는 점을 알고, VX의 흡수력을 높이기 위해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무스타파 박사는 “1명의 여성은 김정남의 얼굴에 물을 마구 바르고 이어 다른 용의자가 VX를 뿌렸을 것”이라며 “이런 조합을 통해 그들은 VX가 효과적으로 스며들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과정에서 용의자들은 자신들의 손을 건조하게 유지했을 것이라고 그는 추정했다.무스타파 박사는 “손이 매우 건조했다면 화학물질이 체내로 침투하기 어렵지만 눈, 입술, 코 등 촉촉한 부분을 통해서는 빠르게 체내로 흡수된다. 특히 더울 때는 더 그렇다”며 “이 때문에 VX가 김정남에게는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했지만, 용의자들은 멀쩡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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