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로의 전환기가 도래했다. AI가 내게 맞는 여행지를 추천해주고, 인간 대신 자동차를 운전한다. 공장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작업 환경을 결정한다. 지난해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AI는 이제 우리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자율주행과 통번역, 비서 서비스 주목
구글·애플·IBM·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번뜩이는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AI가 신문기사나 소설을 쓰고 증권 종목을 추천하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이제는 사람이 로봇과 대화하고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심층학습(딥러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AI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똑똑해질 것이란 얘기다. AI 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마츠오 유타카 도쿄대 특임교수는 “생물이 눈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종이 급격하게 진화했고,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났다. AI의 자가학습은 의료·기계·로봇 등 산업 전반의 폭발적인 진보를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신년 특집호에서 “올해는 딥러닝 등 최신 AI의 위력을 ‘누구나’ 실감할 수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빅데이터의 활용이 다양해지고 깊어지면서 실생활에 AI 기술이 적용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란 분석에서다. 니혼게이자이는 먼저 ‘자율주행’과 ‘번역’, ‘안내(비서)’를 핵심 분야로 꼽았다. 대중적으로 수요가 높고, 접근이 편리한 데다 이미 상당 수준의 기술 개발이 이뤄진 분야다. 실제 많은 기업과 대학 등이 머리 속에서만 구상하던 세계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제품·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진보적인 성과를 이룬 분야는 자율주행차다. 공상과학 영화처럼 차선과 신호에 맞춰 주행함은 물론, 주변 자동차·보행자·기후 여건에 맞춰 주행 방식을 선택한다. 자율주행은 기술 발단 수준에 따라 AI가 액셀·브레이크·핸들 중 하나를 시스템이 조작하는 1단계, 여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한편 자동으로 차선 변경·합류·추월하는 2단계, 모든 작업을 시스템이 실행하고 긴급 시에만 운전자가 대응하는 3단계, 모든 작업을 시스템이 완전 자동 제어하는 4단계로 나뉜다. 현재 기술적으로는 4단계까지 구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율주행과 관련한 국제 표준이 마련되지 않았고, 아직 안전성을 완전히 담보하기 어려워 2~3단계 수준에서 차량이 개발, 시판되고 있다.
이미 3단계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판매 중인 테슬라는 주변 차량의 주행 패턴과 움직임까지 분석해 주변 차량의 사고 가능성까지 읽어낸다. 차량에 카메라 8대와 초음파 센서 12개를 탑재해 주변 움직임을 360도로 감지하는 한편 250m 전방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 테슬라는 이런 완전 자율주행차를 올해 안에 상용화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해 12월 자율주행차 개발 자회사 웨이모를 독립시킨 구글은 피아트 크라이슬러와 합작해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시험용 미니밴을 올해 중에 생산할 예정이다.
주변 차량의 사고 가능성까지 감지
미국보다 한발 늦게 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선 아시아·유럽도 올해부터 관련 상품 시판에 나선다. 닛산은 지난해 8월 고속도로 정체 시에도 자율운전을 할 수 차량을 선보인 데 이어, 2017~18년 중에 고속도로에서 추월이 가능한 차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운전자가 졸 때는 차를 갓길로 옮겨 자동으로 멈추는 기술도 탑재했다. 혼다 역시 1월 5일부터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사람과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탑재한 컨셉 차량 ‘New V’를 선보이기도 했다. 독일 3대 브랜드 중 하나인 아우디는 올해 안에 고속도로 단일차선에서 스스로 달릴 수 있는 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의 자율주행 기술이 100 수준이라면 다른 나라는 80~90 정도로 수준차이가 꽤 나지만,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향상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기술·법규·보험·관습 등을 둘러싼 아시아·유럽과 미국 간에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는 국가 간 언어의 장벽도 깨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폭 개선된 ‘구글 번역’을 보면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구글 번역은 기존에 문장을 단어 단위로 쪼개 개별적으로 번역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AI를 도입해 문장 전체의 흐름을 따른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Hello’를 인사할 때와 통화 중일 때를 구분해 ‘안녕하세요’와 ‘여보세요’로 번역을 다르게 한다. 문장 마지막 부호에 따른 뉘앙스 차이도 잡아낸다. 지난 10년 간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심층 학습을 벌인 결과라는 것이 구글의 설명이다.
실생활에서 자유롭게 의사소통과 비즈니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통역기도 개발되고 있다. 도쿄에 소재한 한 벤처기업 ‘ili’는 사용자의 말을 즉시 원하는 언어로 바꿔주는 목걸이 형태의 소형 통역기를 개발해 기기를 통한 동시통역의 시대를 열었다. 통역 품질도 뛰어나 올봄부터 하네다·나리타 공항에 비치돼 해외 여행객에게 대여될 예정이다. 파나소닉의 경우 지난해 12월 사용자가 하는 말을 한국어·영어·중국어로 통역해주는 확성기를 출시하기도 했다.
AI가 개인의 생활과 습관·기호를 추적해 알맞은 제품·서비스를 추천하거나,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안내·비서 서비스도 주목할만 하다. 일본의 경우 이미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Pepper)가 실생활에 넓게 퍼지고 있다. 마트나 가라오케·은행 등지에서 손님 안내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 쪽으로 몸을 돌려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IBM의 AI ‘왓슨’을 탑재해 상대방의 표정과 말투도 감지한다. 미국에서도 스타트업 펠로우가 제작한 로봇 로우스(Lowe’s)가 마트 내부에서 고객을 안내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홈케어는 물론 조언하고 기분 달래주기도
일본의 칼라풀보드란 와인 유통업체는 고객의 입맛을 진단해 와인을 추천하는 ‘AI 소믈리에’ 서비스를 지난해 8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와인의 단맛과 쓴맛, 맛의 깊이와 신선함, 바디감 등 6개 항목을 각각 5단계로 나눠 고객의 입맛과 성향을 측정, 분석해 제품을 추천해주는 식이다. 와타나베 유우키 대표는 “미각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며, 자칫 잘못된 제품을 추천했다가 고객의 불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제품 추천의 어려움을 AI가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이 서비스는 일본 최대 백화점인 이세탄백화점 신주쿠 본점 등 대형 유통 업체들이 사용하고 있다. 일본 유통업계는 식품과 화장품·헤어스타일 등으로 AI의 활용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이런 서비스는 마트 등으로 확산하고 있으며 조만간 캐셔 없는 소매점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영화 <아이언맨>의 AI 비서 ‘자비스’처럼 사용자와 대화를 통해 감정·컨디션을 측정하고 그에 알맞은 조언·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AI 소셜 챗봇 ‘조(Zo)’는 프리미엄 홈서비스와 연동해 비서 역할을 수행한다. MS는 중국에는 ‘샤오이스(Xiaoice)’, 일본에는 ‘린나(Rinna)’를 내놓고 나라마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벤처기업 셀프가 개발한 어플리케이션 ‘SELF’의 경우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읽어 쉬는 시간에 AI가 먼저 질문을 거는 서비스다. AI가 사용자와의 대화를 기억함으로써 생활·업무 문제에 대한 조언을 한다든가 격려, 칭찬도 해준다. 특히 주변에 고민을 말하기 어려운 기업의 중역이나 관리직을 겨냥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