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동 스트레스, 사람은 멀미하지만 동물은 죽음의 공포

중앙일보

입력 2017.02.22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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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2월 9일 일본에서 32시간 걸려 울산 장생포에 도착한 돌고래가 크레인을 이용해 옮겨지고 있다. 장시간 운송된 지 각각 5, 9일 만에 숨졌다. [뉴시스]

지난 2월 9일 일본에서 32시간 걸려 울산 장생포에 도착한 돌고래가 크레인을 이용해 옮겨지고 있다. 장시간 운송된 지 각각 5, 9일 만에 숨졌다. [뉴시스]

야생 고래 포획으로 유명한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다이지(太地)에서 지난 9일 야생 돌고래 2마리(4~5세)가 국내로 수입됐다. 하지만 한 마리가 울산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 도착한 지 불과 닷새 만에 죽었다. 부검 결과 가슴에서 피가 차는 혈흉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외부 충격으로 출혈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1년 산림청이 중국에서 기증받아 대전 오월드 동물원이 위탁 사육한 백두산호랑이 ‘금강이’. 1월 25일 경북 봉화 백두대간수목원으로 이주했다. 장시간 운송된 지 각각 5, 9일 만에 숨졌다. [뉴시스]

2011년 산림청이 중국에서 기증받아 대전 오월드 동물원이 위탁 사육한 백두산호랑이 ‘금강이’. 1월 25일 경북 봉화 백두대간수목원으로 이주했다. 장시간 운송된 지 각각 5, 9일 만에 숨졌다. [뉴시스]

지난 3일에는 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열한 살짜리 백두산호랑이인 ‘금강이’가 폐사했다. 대전에 있는 테마파크인 오월드의 동물원에서 지난달 25일 봉화로 이주한 지 9일 만이다. 사인은 신장 기능 부전에 따른 출혈성 쇼크로 확인됐다. 사육 호랑이의 평균 수명은 20년쯤 되고 야생 돌고래도 보통 25년을 산다. 그렇다면 아직은 건강한 돌고래와 백두산호랑이가 왜 갑자기 폐사한 것일까.

돌고래·호랑이 폐사로 본 ‘이송 쇼크’
4년간 숨진 수입 멸종위기동물
3092마리 중 1337마리가 운송 영향
“좁은 공간과 진동이 가장 큰 고통”
일부 애완동물, 택배 거래해도 합법

소·돼지 등 이동 뒤 고열·탈수 시달려


폐사하기 전 돌고래와 호랑이에게는 단기간에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강이를 태운 무진동(無振動) 차량은 대전을 출발해 봉화까지 240㎞ 거리를 5시간 동안 시속 60~80㎞의 속도로 달렸다. 돌고래는 배와 트럭(울산시 남구청은 무진동 차량, 환경단체는 일반 트럭이라고 주장)에 차례로 실려 무려 32시간 동안 이동했다. 두 동물을 부검한 정규식 경북대 수의과대 교수는 “사람도 차나 비행기를 오래 타면 멀미·몸살을 앓듯 동물 또한 ‘수송 스트레스’를 겪는다”며 “장시간 이동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물리적 충격을 받으면 폐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대개의 경우 동물들은 우리나 수조에 갇혀 옮겨진다. 정 교수는 “좁은 공간과 진동이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하루 수백㎞씩 움직이는 돌고래 같은 야생동물은 공포와 스트레스를 더 심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소·돼지 등 가축도 ‘수송 스트레스’를 받는다. 서상혁 VIP동물병원 원장은 “장거리 수송 중에 소가 수송열(shipping fever)에 걸려 호흡기 질환, 고열, 탈수 증상을 보인다”며 “좁은 공간에서 긴장한 채 숨을 쉬어 근육 파열, 출혈 등으로 폐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98년 소떼 방북 때 수백 마리 폐사


1998년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했을 때 소 수백 마리가 폐사한 원인으로 수송열이 지목되기도 했다. 운송 과정에서 동물이 폐사할 경우 예산 낭비를 초래한다. 울산 남구청은 일본 돌고래 두 마리를 수입하는 데 2억원을 썼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운송에 따른 폐사를 방지할 법이 미비하다고 지적한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9조에 따르면 운송 중인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할 것, 동물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동물을 다치게 하지 말 것 등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운송 시 차량 제한속도 같은 구체적 보호 규정이 없다. 동물보호시민단체인 ‘카라’의 김현지 팀장은 “동물보호법 운송 규정을 어겨도 처벌이 약한 데다 위반 사실을 증명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라며 “개 농장의 운송 중 개 학대나 도축장의 전기 몰이채 사용, 실험동물의 비윤리적 운송 등은 법망을 벗어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면서 흔해진 동물의 택배 운송도 문제로 떠올랐다.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 운송은 직접 전달하거나 동물 전문 운송업체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이 적용되는 반려동물에는 개·고양이·토끼·페럿(족제비과 포유류)·기니피그·햄스터가 전부다. 그 외 반려동물의 경우 택배로 운송해도 불법이 아니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을 위한 행동’이 지난해 11월 조사한 데 따르면 파충류·양서류 등 희귀동물을 판매하는 23개 쇼핑몰 중에서 22곳이 택배나 고속버스를 운송에 이용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동물원 수의사는 “어떤 동물이든 운송 시 이동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며 “외국에서 들여올 때는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배가 아닌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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