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문재인·안희정에게 남긴 노무현의 유훈

중앙일보

입력 2017.02.22 01:36

업데이트 2017.02.22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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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 훈 논설실장

최 훈 논설실장

 IMF 외환위기 20 주년. 이번엔 한국의 정치가 IMF 사태를 맞았다. 김대중ㆍ노무현의 ‘진보 10년’에 이어 이명박ㆍ박근혜의 ‘보수 10년’ 동안 양 진영이 “네 탓이오”의 죽기 살기로 싸운 자업자득의 붕괴다. 겉보기엔 다시 진보의 시대를 맞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33%)와 안희정 충남지사(22%)의 지지도(한국갤럽) 합은 절반을 넘어섰다. 이재명 성남시장(5%)까지 더하면 유권자 60%가 진보 주자를 밀겠다고 한다. 초유의 진풍경이다. 그런데 과연 이 시대는 진보의 손을 그냥 번쩍 들어 준 걸까.

진보 주자 지지 60% 시대
극단적 분노의 진보보다
정책의 구체적 타당성이
세상 바꾼다는 성찰 남겨

사실상 박근혜 정권까진 줄곧 ‘보수의 시대’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등 보수와 손잡고서야 집권할 수 있었다. IMF 사태 이후 정권 유지를 위해 DJ는 구조조정과 노동 유연성, 민영화, 정리해고제 등 보수로 이동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보수 정몽준과의 단일화, 보수의 곳간이던 영남 표의 잠식을 고리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법인세 감세, 한·미 FTA, 이라크 파병, 노동 유연성 등 보수를 의식한 정책을 유지해야 했다. ‘성장 신화’ 시대라 진보 대통령이 보수와 타협해 나라를 끌어가는 통치였다.

보수의 우위가 밀리기 시작한 건 이명박 정부 때다.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공약이 평균 3%대 성장으로 망신을 당하면서였다. MB 정권 말기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가 44.9%에 이르며 양극화도 극심해졌다. 보수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말라던 ‘성장 신화’와‘낙수효과(trickle-down, 최상층의 부가 아래로 확산)’는 의심을 받게 됐다. 영리하게 이를 간파한 김종인(민주당 의원)의 코치로 박근혜 후보가 내건 경제민주화, 기초연금 20만원의 복지 확대는 보수가 진보로 ‘위장취업’해 거둔 대성공이었다. 애초 철학은 없었으니 이후 경제민주화가 흐지부지된 건 당연했다.
진보와 폐족(廢族) 친노가 부활한 이즈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2009년 5월 자살 직전까지 남겨 놓은 글에 눈길이 간다. 편가르기 싸움꾼으로 비난받던 그가 국가를 경영해 본 뒤 담담하게 토로한 얘기다.

중앙시평 2/22

중앙시평 2/22

“보수는 규제완화, 작은 정부, 구조조정, 민영화, 노동 유연화를 당당하게 주장한다. 국민 정서에 영합하는 설득력이 있다. 진보 진영도 수용할 건 수용하고, 타협할 건 타협하는 게 현명한 전략 아닐까. 한때 감옥 다녀온 사람들이 도덕적 권위를 갖고 역할하려 하는데, 저항의 시대를 넘어 건설의 시대로 가니까 바닥이 보이곤 하더라. 그냥 호불호 가지고 재벌 싫어하던 사람은 지금도 선단 경영 비난하고…. 그래, 선단 경영한 데는 다 실패했고, 전문경영한 데는 다 성공했느냐. 출자총액제한도 (효과에) 확신이 없다. 진보와 노조에게 배신자라 욕 많이 먹었는데. 구체적 타당성을 갖고 논의하자, 이런 융통성 있는 태도로 가는 게 좋다. 정권 바꾸면 세상이 달라지는가. 정책을 바꾸자. 문제는 정책이다. 대통령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회와 손발이 안 맞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여론이 호응하지 않으면 아무 힘이 없다. 결국 국회를 지배하는 정당이 중요하다.”(노무현 『진보의 미래』중 발췌)

진보든 보수든 그 진영의 극단 논리는 수명을 다했다. ‘정치 IMF’를 불러온 원인이다. 깨트려야 할 기득권이 된 게 분노의 진보, 기득권 보수다. 양극단을 넘어 문제를 해결해 낼 정책의 유연성이 진보의 새로운 지향이다. 노무현이 문재인ㆍ안희정에게 남긴 조언이다.
안 지사가 노의 유훈에 근접한 듯하다. 누구든 여소야대인 차기 대통령과 의회의 협치가 불가피한 터에 그는 다수당에 총리 지명권을 주는 ‘대연정’을 꺼냈다. “이명박의 녹색성장, 박근혜의 창조경제 등 과거 대통령 6명의 좋은 정책은 계승하겠다” “지도자의 분노는 피바람을 부른다”며 죽음 직전의 노와 맥을 같이한다. 물론 그가 1987년 반미청년회를 만든 ‘전대협의 대부’였다고 소개해 온 터라 “반죽을 부풀릴 누룩의 위장취업”이란 의심도 지속된다. 그러나 ‘낯설지만 신선한 진보 주자’에 대한 중도의 관심은 그의 지지율을 견인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여전히 진보의 덫에 갇혀 있는 듯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분노없이 어떻게 정의를 세우나” “4대 재벌 적폐 청산, 무관용” “당선되면 중국부터” “사드는 차기 정권으로”등의 주장은 오래도록 듣던 진보의 옛노래다. 진영을 넘어 구체적 타당성을 먼저 따지라는 게 노무현의 유지였다. “분노하라”의 주창자인 레지스탕스 출신의 진보 사상가 스테판 에셀은 93세에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 분노의 이유가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문 전 대표의 분권형 개헌 거부와 대규모 세력 과시는 기득권 보수의 메뉴 아닌가. 정치적 창의력이 부족한 법률가란 공통점이 있던 이회창 대세론의 전철 아닐지….

두 사람이 승패를 떠나 ‘새로운 일류 진보’로의 도약을 이끌어 주길 고대한다. 격렬한 정책ㆍ비전 논쟁을 통해서 말이다. 노 전 대통령도 흐뭇해할 장면이다.
최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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