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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월 만에 다시 2100선, 활짝 핀 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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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1일 코스피 지수가 2015년 7월 이후 처음으로 2100선을 돌파했다. [뉴시스]

21일 코스피 지수가 2015년 7월 이후 처음으로 2100선을 돌파했다. [뉴시스]

경기가 좋지 않고 가계부채도 늘고, 정치 상황은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잘나가는 곳이 있다. ‘자본주의의 꽃’ 주식시장이다. 21일 코스피 지수는 2100선을 돌파했다. 2015년 7월 이후 1년7개월 만이다. 전날보다 18.54포인트(0.89%) 오른 2102.93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0.72%)를 비롯한 삼성그룹주 대부분이 올랐다.

실적은 좋은데 주가 저평가 #외국인 지난해 11조 순매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미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도 호재 #“경기 나빠 상승 제한” 시각도

왜 올랐을까. 주가는 실적에 수렴한다. 경제의 3대 주체 가운데 가계와 정부는 힘들어도 기업은 좋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까지 실적을 발표한 코스피 상장사의 지난해 영업이익만 합쳐도 140조원이 넘는다. 증권가에서는 전체 150조원을 예상한다. 순이익은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에 이어 영업이익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웃돈다.

그런데 주가는 5년 넘게 제자리였다. 수급이 받쳐주지 않아서다. 주가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이다. ‘사자’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제값을 받을 수 없다.

2005년 1000선에 머물던 증시를 2000선으로 ‘레벨 업’시킨 건 펀드다. 적립식 펀드를 앞세운 기관 자금이 시장으로 몰렸다. 2007년 1월엔 주식형 펀드 규모가 50조원을 돌파하면서 채권형을 앞질렀다. ‘돈의 힘’으로 주가는 쉼없이 내달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브레이크가 걸리기까지.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시장이 반등하자 환매 자금이 쏟아졌다. 2008년의 경험은 ‘트라우마’가 됐다. 그때가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한 개인들은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돌파할 때마다 일단 펀드를 환매하고 봤다. 그리고 2000선이 깨지면 다시 들어왔다. 5년 넘게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인 이유다.

최근 박스피 탈출 조짐은 외국인 때문이다. 2012년 이후 개인들이 시장에서 내다 판 주식을 고스란히 외국인이 사들였다. 지난해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11조원이다. 지난달엔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 규모가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사는 건 싸기 때문이다. 실적은 좋아졌는데 주가는 안 올랐으니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저평가돼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12개월 추정 이익을 기준으로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9.7배에 불과하다. PER은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PER이 낮을수록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지수(MSCI)선진국(16.9배)은 물론이고 MSCI이머징(12.5배)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싸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와 크레디리요네증권(CLSA)이 격년으로 발간하는 아시아 기업지배구조 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은 지난해 12개국(호주 포함) 가운데 9위에 그쳤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중국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움직임이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됐다. 외국 언론은 이를 기회로 평가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자 아시아판에 ‘삼성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이란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실버라이닝’은 먹구름의 은빛 가장자리를 말한다. 곧 희망의 상징이다. 신문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으로 한국 최대 대기업의 지휘자가 사라졌다는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면서도 “기업지배구조 재편은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돼 국내 증시가 선진국 수준으로만 평가받아도 주가가 오를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비관론도 있다. 실적이 올해도 예상만큼 좋을지는 의문이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애널리스트들의 기업 이익 전망치가 하향 추세에 있다”며 “삼성전자를 빼면 지난해 영업이익 증가율은 4%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한국은 올해 경제 성장률이 지난해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라며 “내부 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 매수세만으로 오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란ㆍ이새누리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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