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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창고] 막돼먹은 영애씨 나랑 닮았대요…이번엔 ‘웃픈’ 진짜 일상

중앙일보

입력

 | 책과 사람 - 자전 에세이 낸 방송 작가 한설희

‘맥주 많이 마시면 통풍 온다’는 말에 슬쩍 걱정이 돼 인터넷에 ‘통풍’을 검색해보고, 방 청소 하다 나온 남자 명함에 호기심 반 전화를 걸었더니 전 남자친구였다는 ‘웃픈’ 사연을 풀어 놓는다. 변변히 이뤄놓은 것 없이 모공만 커졌다며 한탄하는 40대 노처녀의 일상이 시트콤처럼 펼쳐진다. 『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케이블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메인작가 한설희(41)씨의 자전 에세이다. 예쁘고 착한 여주인공이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영애씨’를 빌어 인생을 노래했다는 한설희 작가의 ‘실화’는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삶이 불완전하다고 느낄 때 내 책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한설희 작가.

“삶이 불완전하다고 느낄 때 내 책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한설희 작가.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연기자들이 한 작가를 ‘영애씨’의 페르소나로 부른다던데.

“과장이다. 어쩌다보니 ‘막돼먹은 영애씨’의 최장수 작가(시즌1~4, 9~15 참여)가 되었다. 물론 종종 내 경험담이 극에 쓰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영애씨를 연기한 배우 김현숙씨가 몇몇 인터뷰에서 ‘한설희 작가가 진짜 영애씨’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여러 작가의 경험담이 뒤섞여 있다. 모두 내 얘기는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비슷하게 보는 건 있다. 극 중 ‘막돼먹은’ 행동을 하는 영애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말을 듣는다. 하하. 좋게 말해 불의를 못 참는 정의로운 성격이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오지랖이 넓다. 목소리도 크고 쉽게 욱하는 면이 비슷하다고들 한다.”

이 정도면 거의 인생작인데.

“2007년 시즌1부터 서브 작가로 함께 했는데 그때가 시트콤 부흥기였다. 이 드라마 덕분에 일이 끊이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2016년말에 시즌 15를 마쳤는데 처음엔 사실 이렇게 오랫동안 제작될 지 몰랐다. 요즘에는 영애씨가 누구의 것도 아닌, 자체의 생명력을 가진 캐릭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캐릭터가 스스로 작동한다고 느낀 경우가 있었나.

“배우한테 지적받았을 때. 하하. 대본을 보고 영애씨라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 혹시 놓친 부분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작가·감독·배우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구축해 놓은 캐릭터가 있는 것 같다. 누구의 영애씨도 정답이 아니기에 치열하게 조율하면서 만들어간다. 작가가 쓴 대사에 배우들의 애드립, 감독의 연출이 더해지면 누구의 것도 아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된다.”

작가로서 어떤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나.

“책이나 영화를 볼 때 스토리보다 주인공 캐릭터에 집중하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선함이 깔려있는 인물이다. 바보같이 착할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것은 지키는 선한 인물에게 호감을 느낀다. 제목은 ‘막돼먹은 … ’이지만 내 마음 속 영애씨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수퍼 히어로처럼 대단한 힘은 없어도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점이나,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결국 사랑을 챙취 하는 면이 그렇다.”

책에서도 ‘한설희’라는 캐릭터가 돋보인다.

“출판사에서 나에 대해 솔직하게 써달라고 했을 때 막막했다. 자꾸 글이 감상적으로 치우쳤다. 어떤 형식으로 써야할까 고민하다 제일 잘하는 방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마치 드라마 시놉시스 쓰듯이 내가 겪은 소소한 사건 위주로 이야기를 풀었다. 그러다보니 내 캐릭터가 도드라지는 순간이 있었다.”

영애씨가 아닌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싱글 여성의 나이듦에 관한 공감 에세이 『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싱글 여성의 나이듦에 관한 공감 에세이 『나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PC통신 시절 ‘천리안’ 유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가 연락을 받아 작가가 되었다. 글 쓰는 걸 좋아했는데 막상 작가가 되고 나니 고료 없이는 글을 안 쓰게 되더라. 하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하지 않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그 시절 PC 통신에 올렸던 것 같은 소소한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말쯤에 책을 내자는 제의를 받았다. 막 40대에 접어든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스무 살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는데 그 두 배의 나이를 먹고도 그대로인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글을 쓰다보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삶이 조금은 정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도 있었다.”

방송 작가로 대본을 쓰는 건 내 이름 건 책을 쓰는 것과 다를텐데.

“대본은 이렇게 자기고백적인 글은 아니다. 캐릭터와 상황에 맞아 떨어져야하기 때문에 냉정할 정도로 개연성 있게 쓰여 진다. 책이 나왔을 때 주변에서 평소와 달리 감성적으로 글을 썼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설마 책으로 나오겠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부담 없이 더 솔직하게 쓸 수 있었다.”

솔직함의 수위 조절이 필요했을 것 같다.

“책이 나오고 두 가지의 상반된 반응이 있었다. 너무 솔직했다는 평과 평소 모습의 3분의 1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평이었다. 나름대로 조절한다고 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다만 ‘19금’이야기는 자제했다. 하하. 처음에는 책 뒤쪽에 그런 얘기들만 묶어 파트를 따로 나눌까 했다. 이야기의 결이 달라질 것 같아서 다음 기회로 미뤘다.”

결국 싱글 여성의 ‘나이듦’에 대한 얘기다.

“나이 40이 넘었는데 남들은 다 겪는 결혼이나 출산 같은 인생의 큰 매듭이 없이 쭉 흘러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어른이라고 할만한 나이, 빈말이라도 더 이상 젊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가 되니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가 싶었다. 각자의 생애주기가 따로 있는 요즘같은 ‘쿨’한 시대에도 과년한 미혼 여성에게는 ‘그 나이 되도록’이라는 나이 공격이 사방에서 들어온다. 그 틈에서 겪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에피소드를 담았다.”

제목은『나만 …』이지만 독자들은 ‘나도 그렇다’고 공감한다.

“책을 쓰면서 교훈이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내 심경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썼다.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기보다는 도리어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위안을 받고 싶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는 때가 오지 않나.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공감과 위안을 얻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 한설희가 추천하는 탐나는 캐릭터를 담은 책 4권



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 저, 양윤옥 역
1만4000원
일본 추리 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하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를 좋아한다. 붉은 손가락은 한 소녀의 죽음을 중심으로 세 가족의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냉철하면서도 속 깊은 가가 형사의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난다. 추리 소설이면서도 사건보다 인물과 캐릭터에 집중하는 작품이라 읽고 난 뒤 여운이 상당하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동녘
J.M 데 바스콘셀로스, 박동원 역
1만원
어린 시절 친구들이 『어린 왕자』를 읽을 때 나는 당시만 해도 비주류였던 이 책을 좋아했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이 나면 꺼내 읽어서 지금까지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를 정도다. 빨간머리 앤의 앤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좋아했던 꼬마 ‘제제’의 이야기다. 인물을 떠올리는 것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꼬마 니콜라(양장)
문학동네
르네 고시니, 윤경 역
3만3000원
한때 진지하게 일러스트를 배웠다.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금세 관뒀지만 지금도 만화나 일러스트에 관심이 많다. 꼬마 니콜라는 장자끄쌩뻬의 삽화가 좋아 자주 꺼내 읽었던 책이다. 꼬마 악동 니콜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세세한 사건은 기억나지 않아도 인물만큼은 선명하게 살아난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6-열세가지 수수께끼
황금가지
아가사 크리스티 저
1만원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 소설의 대표 주인공인 포와로와 미스 마플 중 미스 마플을 더 좋아한다. 추리하는 할머니라는 설정이 너무 재미있다. 여성이자 미혼 탐정으로 늘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과 인간 본성을 살피는 내공 가득한 캐릭터다. 열세 가지 수수께끼는 그런 미스 마플의 매력이 제대로 드러난 단편 모음집이다.

글=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lim.hyundo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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