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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우리 집 까미와 이암(李巖)의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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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경 화가

전수경 화가

파드닥 파드닥 문 긁는 소리. 현관의 도어록을 해제할 때마다 매번 듣는 환청이다. 우리 집 까미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났다. 여전히 그 늠름한 개는 집에 들어서는 나를 꼬리쳐 맞을 것 같다. 그러나 그 개는 없고 온 집안이 적막강산이다. 까미는 단순한 개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제 몫을 했었다. 검게 윤이 흐르는 털이 온몸을 덮고 목에서 가슴을 타고 배 쪽으로 난 새하얀 털이 그의 자존심처럼 꼿꼿했다. 잘생긴 청년의 모습으로 매번 우리 자매를 설레게 했고, 충직한 기사가 돼주었다. 외진 산책길엔 기꺼이 우리를 호위했다.

까미는 백일도 안 된 갓난 강아지로 우리 집에 왔다. 부모님한테는 손자로 우리 자매에게는 아들이 되었다. 40여 년째 아기 울음소리 그친 집안에 까미의 입양으로 활기가 돌았다. 온 가족은 강아지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쳤다. 까미가 제 몸을 뒤집었다는 둥, 베란다에 변을 예쁘게 봤다는 둥 그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와 분탕질에 우리 가족은 넋을 빼앗겼다. 나는 까미를 통해 미혼인 내 가슴속에도 강한 모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밖에서 일을 볼 때 한순간도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끼니와 산책시간을 체크했다. 내 모든 일과는 까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남자친구의 애정 어린 선물보다 까미의 살뜰한 꼬리짓과 껑충거림이 훨씬 더 뿌듯했을 정도다. 일일이 챙겨야 하고 보살펴야 함에도 개를 향한 기꺼운 관심과 집중. 이기적인 줄 알았던 나의 이면에도 무한한 이타심이 있다는 것을 일깨웠다.

이암 ‘모견도’. 16세기 수묵담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암 ‘모견도’. 16세기 수묵담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열한 살 나이로 죽은 까미의 어릴 적 모습을 나는 이암(李巖·1499~?)의 ‘모견도(母犬圖)’에서 본다. 휴식을 취하는 어미 개와 세 마리 강아지들의 그림이다. 젖을 찾아 어미의 품으로 파고드는 검둥 강아지의 털 빛깔과 총명한 눈빛이 까미랑 꼭 닮았다. 이 그림은 TV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사임당과 그 자녀들이 궁핍하지만 오붓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화가 이겸(송승헌 분)이 그린 것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이암은 고조부가 세종이었던 만큼 종실(宗室)의 일원으로서 직업적인 화원화가들과 신분부터 다르다. 개를 그릴 때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김두량, 김홍도, 신윤복과 같은 조선의 많은 화가가 개가 지닌 동물의 속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과 대비된다. 이암의 모견도는 나무 아래에 쉬는 어미 개와 강아지들로 채워진다. 한없이 너그럽고 정겨운 풍경이다. 어미 개의 깊은 모성과 그 안에서 마냥 걱정 없는 강아지들의 행복이 느껴진다.

반려견의 죽음은 아마 그런 모성, 태초의 행복과의 이별일지 모른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 순위를 조사해 발표한 적이 있다. 배우자의 죽음-이혼-별거-가족의 죽음-교도소 수감-질병-해고-퇴직-임신 출산-친구의 죽음 등의 순이었다. 나는 반려동물의 죽음도 이 순위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국의 반려동물이 1000만 마리를 넘는다. ‘팻 로스(pet loss)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반려동물의 죽음 자체를 부정하거나 더 잘 보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우울증에 빠지는 것이다. 동물학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0~2005년 고독을 달래기 위해 1차 반려동물 붐이 일었다고 한다. 우리 집 까미처럼 그 당시 입양한 개와 고양이가 12~15년의 평균수명을 다하고 죽는 것이다. 반려동물의 고령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셈이다. 반려동물은 단순한 소유물이거나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수단이 아니다. 오랜 시간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가족과 다름없다.

사람과 개가 공유하는 본성이 모성이다. 나는 우리 곁에 왔다가 가버린 까미를 통해 내게 잠재한 헌신과 희생의 에너지를 확인했다. 인구의 5분의 1이 반려동물에게 의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암의 그림은 묻는다. 그대는 그대의 반려견에게 헌신하듯 그대가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가? 그대는 그대의 반려견이 그대를 대하듯 그대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가? 나는 모견도를 보며 팻 로스 증후군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아파트 곳곳에 남아 있는 숱한 풍경과 기억속에 우리 집 까미는 여전히 살아 있다.

전수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