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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정확성에 절제된 표현성 작품의 정신적 의미 드러내 감동

중앙선데이

입력

75세 ‘피아노의 여제’ 엘리소 비르살라제 첫 내한 독주회

슈만의 ‘비상’을 드라마틱하게 연주한 비르살라제는 주선율을 강조한 부분에선 마치 다른 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슈만의 ‘비상’을 드라마틱하게 연주한 비르살라제는 주선율을 강조한 부분에선 마치 다른 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진정한 연주는 작품의 X-레이 사진이다. 그것의 과제는 감각적인 음향의 표피 속에 숨어있는 모든 관계성, 관계의 요소, 대조, 구조를 명확히 보이게 하는 것이다.”(아도르노)

‘감각적인 음향의 표피 속에 #숨어있는 본질 보여줘야’ #아도르노 미학과 맞닿은 연주 #“연주 후 정말 행복했던 것은 #지금까지 겨우 5번” #치밀하게 완벽성 추구

아도르노(Th. W. Adorno)의 미학을 떠올리게 하는 연주를 지난 16일 들을 수 있었다. 조지아(Georgia) 출신의 러시아 피아니스트 엘리소 비르살라제의 피아노 독주회였다. 러시아 정부의 최고 예술상을 받았으며 러시아 피아니즘의 정통 후계자로 평가받는 비르살라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거장이다. ‘피아노의 여제’ ‘이 시대의 가장 정교한 슈만 음악의 해석자’라는 화려한 평가, 75살이라는 고령의 나이, 또 19세기와 20세기 초의 화려한 피아니즘을 보여주는 대곡들로 빼곡이 채워진 아카데믹한 프로그램 때문에 공연장인 금호아트홀엔 ‘대기자 리스트’가 등장했을 정도로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킨 연주회였다.

이날 비르살라제는 ‘작품 하나 하나와의 정직하고 진지한 만남’을 보여주는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선사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과 개성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치밀한 정확성에 근거한 절제된 작품의 표현성’을 보여주며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진정한 연주는 감각적인 것에 대한 우위를 요구하는 정신적인 것을 감각화해야 한다”고 말한 아도르노의 연주철학을 보여주는 듯했다. 음악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던 철학자 아도르노는 기보된 악보를 소리화하는 연주라는 작업에 큰 의미를 부여했고, 감각적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음향을 통해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수사학적 연주보다는 작품의 정신적 의미를 드러내는 연주를 높이 평가했는데, 비르살라제가 보여준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정확한 테크닉, 그리고 그 속에 묻어나는 엄격한 해석 속에서 바로 그러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슈만 연주, 입체적 음향이 서정성보다 부각

금호아트홀을 가득 메운 청중은 긴장된 마음으로 피아니스트를 기다렸다. 75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소녀적 인상을 가진 비르살라제는 검은색의 단순하지만 우아한 복장으로 등장하였다. 얼굴에는 긴장감 보다는 진지함이 배어 있었다. 첫 곡 슈만(R. Schumann)의 ‘아라베스크 C장조 op. 18’은 아주 소프트한 터치로 시작했다. 주선율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베이스 라인이 주선율 이상으로 명확하게 들리기에, 입체적인 음향이 낭만적인 서정성보다 부각됐다. 짧은 성곡소곡이지만 작품 안에는 음악적 특성이 다른 부분들이 다채롭게 연결된 슈만의 작품에서, 비르살라제는 각 부분의 특성에 따라 뚜렷하게 음색과 템포로 분위기를 변화시키며 형식적 다채로움을 그대로 드러냈다. 작품을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고수의 면모였다.

슈베르트(F. Schubert)의 ‘소나타 13번 A장조 D 664’는 비교적 평이한 테크닉과 단순한 형식적 구조를 토대로 슈베르트적 선율선과 화성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초기 소나타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음악을 담백하게 풀어나갔다. 베이스의 선율선이 아주 뚜렷하게 들리면서, 건반의 묵직함이 음향적으로 드러나는 가운데 청중을 서서히 슈베르트의 세계로 몰입시키는 연주였다. 음악의 진행이 고조를 띄는 가운데도, 거칠고 투박한 피아노 소리의 질감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거의 페달을 사용하지 않는 듯한, 음 하나하나, 화음 하나하나의 울림이 중요하게 나왔다. 2악장에서는 선율의 서정성이 부드럽게 나타났으며, 3악장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음들의 진행이 탄탄한 구조를 만들어 나갔다. 어쩌면 낭만적 음향에 익숙한 청자에게는 다소 경직된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겠지만, 슈베르트 음악이 보여주는 담백한 서정성이 그야말로 진솔하게 전달되는 시간이었다.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2번 d단조 op. 14’에서는 다른 어떤 곡보다 비르살라제의 표현력이 강렬하게 드러났다. 물론 이는 작품에 근거한 것이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프로코피에프는 음악적 재료를 명확하고 경제적으로 활용하면서, 간결하면서도 강한 표현력을 보여준 작곡가로, 제2번 소나타는 불협화적 날카로움과 프로코피에프 특유의 생동감있는 리듬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비르살라제는 피아노에 앉자마자 즉각 강렬한 울림으로 기선을 잡았다. 비화성적인 폴리포니적 짜임새, 우울한 단조적 선율과 그 대비 선율의 어울림, 몰아치는 강렬한 폭팔력 등, 이 소나타의 내재적 특성을 비르살라제는 유감없이 드러냈다. 느린 악장에서 불협화적 선율들이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결코 음 하나하나가 미세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빠른 피날레 악장에서도 베이스가 탄탄한 질감있는 음향적 흐름은 무너지지 않고, 프로코피에프적 리듬을 정밀하게 드러냈다. 프로코피에프의 트레이드 마크인 독특한 리듬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휴식 후 좀 더 릴렉스된 모습으로 비르살라제는 자연스럽게 슈만식의 단순성의 미학과 고도의 테크닉이 결합된 ‘환상 소곡집 op.12’를 선보였다. 새로운 시적 시대(Neue Poetische Zeit)를 여는 슈만의 작품은 각별한 섬세함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슈만의 전문가답게 그녀는 슈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줬다. 잘 알려진 ‘비상’(Aufschwung)은 매우 드라마틱하게 연주하였는데, 주선율을 강조한 부분에서는 마치 다른 곡을 듣는 느낌이 들 정도였고, ‘왜’(Warum)는 선율적 흐름을 강조하는 특성을 발휘하여, 선율간의 대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그녀가 보여준 근사한 슈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있다면, 이 작품의 서정성과 섬세한 뉘앙스가 빠진 점이였다. 첫 곡 ‘저녁에’(Des Abends)는 ‘아주 내면적으로 연주’(Sehr innig zu spielen)하는 곡이었는데, 하강하는 주제 선율을 비르살라제는 일관된 음향으로 이어나갔다. 조금의 디미뉴엔도와 음색 변화를 통해, 마치 선율이 마치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기대했었지만, 중후하고 정직한 음색의 일관성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녀가 만들어간 음향적 흐름은 섬세한 서정성보다는 슈만의 진지함과 무게감을 부각시킨 것 같다. 그렇지만 리스트 편곡의 슈만의 ‘헌정’은 달랐다. 선율과 반주라는 이중 구조가 뚜렷하게 입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선율선의 아름다운 낭만성이 완벽하게 구현된 연주였다. 다른 곡에서처럼, 비루투오소적 부분에서도 그 화려함이 엄격한 정확성이 뒷받침돼 나오기 때문에 깊이있는 서정성을 즐길 수 있었다.

담백하고 중후한 리스트적 정직함 드러내

연주회의 마지막 작품인 리스트의 ‘스페인 랩소디’는 결코 쉽지 않은 곡이었다. 그녀는 역시 ‘리스트는 리스트답게’ 연주한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줬다. 시종일관 그녀 특유의 깊이 있고 질감있는 사운드를 드러냈고, 자신의 몸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콘트롤하면서, 물 흐르듯이 흐름을 만들어내면서 리스트적 고난도 테크닉을 거뜬하게 넘어섰다. 화려한 기교를 한껏 드러내는 전형적인 리스트와는 거리감이 있는 담백하고 중후한, 긴 연륜이 묻어나는, 그리고 리스트적 정직함이 드러나는 연주였다.

연주가 끝난 후 청중의 뜨겁고 열렬한 갈채를 받았을때, 비르살라제의 진지한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보였다. 그녀는 지치지 않는 모습으로 모차르트의 ‘로망스’, 쇼팽의 ‘마주르카’와 ‘왈츠’를 앵콜곡으로 연주했는데, 앵콜 연주에서도 (마지막 왈츠를 제외한다면) 화려함보다는 이날 연주의 인상을 이어가는 진지하고 단순한, 그리고 굵은 선을 드러내는 그런 연주를 계속했다. 연륜을 음악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이 날의 청중에게 강하게 각인됐을 것이다.

2009년 인터넷 웹진(Willem Boone) 인터뷰를 보면 그녀의 내면세계를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다. “음악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음악은 삶 그 자체입니다. 음악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연주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연주 후에는 내 연주에 대해 항상 확실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결코 100% 만족하지 못합니다. 연주 후에 정말 행복했던 경우는 지금까지 겨우 5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때때로, 제 연주에 대해서 아주 불만족하고 또 실망하기도 하죠.” 그녀가 치밀하게 완벽성을 추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비르살라제의 연주는 다시금 아도르노와 연결되는 듯하다. “감각적인 음향의 표피 속에 숨어 있는 작품의 본질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 아도르노는 궁극적으로 음악을 통해 진리를 구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진정한 음악연주는 단순히 작품을 소리화하는 작업을 넘어서 진리함축성을 가지며, ‘귀로 사유하기’로 함축되는 그의 예술철학이 실현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비르살라제가 추구하는 예술적 진정성은 어쩌면 아도르노가 음악에서 찾으려 했던 진리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희숙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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