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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나의 롤 모델은 유해진 아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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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끄떡없어요.” 찬바람 부는 2월의 오후, 외투도 없이 카메라 앞에 선 아역 배우 정준원(12)이 씩씩하게 말했다. 5분쯤 흘렀을까. “생각보다 춥네…”라며 어깨를 움츠린다. 방금 전 자신만만하게 “괜찮다”고 한 것이 머쓱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 솔직함에 절로 ‘삼촌 미소’가 지어졌다.

2월 15일 개봉한 가족 코미디 ‘그래, 가족’(마대윤 감독). 정준원은 시골 소년 낙 역을 맡아, 이요원·정만식·이솜 등 선배 배우들과 대등한 연기 앙상블을 펼친다. 각자 먹고살기 바쁜 삼남매 성호(정만식)·수경(이요원)·주미(이솜)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마주친, 생전 처음 보는 막냇동생 낙. 청소·빨래 등 집안일을 척척 해내는 그는, 사주팔자를 보는 재주까지 지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갈 데 없는 서러운 처지지만, 오히려 서로 투닥대는 형과 누나들을 이해하며 다독일 만큼 심성이 따뜻하다. “낙은 밝고 눈치가 빠른 아이지만, 가슴속에 홀로 슬픔을 삭이고 있죠. 2년 전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시나리오 속 낙을 보며 그 심정이 무척 공감됐어요. 늘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닌 낙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고요(웃음).”

영화 '그래, 가족' 정준원 인터뷰

낙의 사투리 억양을 자연스럽게 연기하기 위해, 정준원은 경상도에 사는 외가 친척들의 도움을 받았다. 사주 보는 장면 촬영을 앞두고, 실제 점집을 찾아가 사주 보는 법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주부 수준의 살림꾼인 낙을 연기하며 실제로도 “집안일을 돕는 아들이 됐다”고. 어느덧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에, 그 자신이 가장 크게 녹아들어 있었다. “‘그래, 가족’을 찍으며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요. 한집에 살며 티격태격하더라도, 결국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맞는 게 진정한 가족이잖아요. ‘그래, 가족’이란 제목에는 ‘맞아,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지’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해요(웃음).”

정준원은 일곱 살 때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페이스 메이커’(2012, 김달중 감독)로 데뷔한 그는, ‘숨바꼭질’(2013, 허정 감독) ‘오빠생각’(2016, 이한 감독) 등 스무 편이 넘는 영화와 TV 드라마를 오가며 당차고 똘똘한 모습을 보여 줬다. 현재 TV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SBS)에 출연 중이다. 데뷔 전 내성적인 성격 탓에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연기 학원에 다니며 “그동안 표현 못했던 마음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게 됐다”고.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노력해요. 예를 들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느끼는 슬픔과,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뺏겨서 서러워하는 감정은 그 무게가 다르잖아요. 늘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떤 감정일까’ 상상하죠.” 롤 모델은 배우 유해진이라고. “매번 다른 역할을 맡아도 실제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척척 연기해 내는” 그를 존경한다고 했다.

그의 차기작은 하반기 개봉 예정인 스릴러 ‘7년의 밤’(추창민 감독). 류승룡의 아역을 맡아 ‘그래, 가족’과는 180도 다른 어두운 연기에 도전했다. 한겨울에 밤샘 촬영하느라 무척 힘들었지만, “스크린에 등장하는 그 한 순간을 생각하며 견뎠다”는 그다. “내가 표현하려던 감정을 관객이 공감해 줄 때 가장 뿌듯하다”는 열두 살 소년의 포부는 이랬다. “역할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도전하고 싶어요. 출중한 외모를 내세운 ‘스타’가 아닌, 오랫동안 사랑받는 ‘배우’가 꿈이죠. 갈 길이 참 멀어요(웃음).” 정준원이 귀여운 덧니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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