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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크기 100배 키운 동네정치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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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지난해 11월 서울 은평구 구산동엔 3300㎡(1000평) 규모의 구립 구산동 도서관 마을이 만들어졌다. 도서관이 없는 환경을 바꾸기 위해 지역 학부모들이 노력한 동네 정치의 결실이다. 학부모들의 도서관 제안은 15년 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시작됐다. 그 결과 2002년 초 대조동 주민자치센터 3층에 33㎡(10평) 남짓한 빈 공간에 도서관이 생겼다. 하지만 모양뿐이었다.

국내서도 싹트는 시민참여 정치
“정부가 모두 해결하는 시대 지나
자발적 참여, 다양한 해법 만들어”

학부모들은 주민들에게 ‘도서관 설득’에 나섰고, 공감을 얻자 이번엔 교사들이 동참했다. 결국 구·시 의회가 움직였다. 3년 뒤 4억원의 예산으로 파출소에 ‘대조동 꿈나무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이런 작지만 계속적인 성공 과정을 거쳐 주민들은 이제 적극적인 지역 정치 참여자로 바뀌었다. 마을엔 65억원 예산 규모의 ‘구립 도서관’과 주민 식당, 동네 카페 등이 차례로 만들어졌다.

이런저런 성공 사례가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시민 정치는 확산 추세다. 서울 성북구와 마포구,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 여러 지역에서도 주민들의 비슷한 정치 참여가 일상화됐다. 정치적 객체가 아닌 주체로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는 믿음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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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시민정치분과 위원인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는 “시민 정치는 제도적 접근이 아닌 시민들의 필요에서 시작된다”며 “자발적 참여인 만큼 초기 단계에선 조금 느슨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유연하고 상상력 넘치는 해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리셋 코리아가 운영하는 ‘시민마이크’에서도 시민 정치는 새 정치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시민 강석봉씨는 “이번 일(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을 계기로 기존 대의민주주의제도에 직접민주주의 요소인 시민 기소·입법발의·소환을 덧입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민의 직접 참여를 돕고 민관 협력 모델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지난 9일 서울대 사회대 국제회의실에선 시민 활동가와 교수·공무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시민들’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손우정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는 “시민 정치의 핵심은 자치 공간이다. 우선적으론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참여 공간을 만들고 이를 점차 넓혀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은경 국민권익위원회 행정관은 “현실적으로 정부와 행정이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시민의 역량과 행정력이 결합됐을 때의 긍정적 시너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정치분과 분과장인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시민 정치론’ 수강 학생들에게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동네의 변화를 직접 관찰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국 정치의 주된 무대가 더 이상 국회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반 시민들이 정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걸 학생들이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