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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설특집] "오메 요로코롬만 잡히면 올해 장가갈 수 있겄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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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야, 암놈이여."

"워매, 징한 거. 이제야 나오네 그려."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 앞바다. 9.7t급 홍어잡이배 한성호(선장 이상수.41)에서 함성이 울린다. 조업에 나선 지 2시간10분 만이다. 홍어 6마리째 처음으로 암컷 홍어가 올라왔다. 암컷의 가격은 수컷의 두 배다. 꼬리 부분 양쪽에 2개의 생식기가 달린 수치(수컷)는 암컷보다 뼈가 억세고 살이 얇은 데다 팍팍해 먹을 게 없고 맛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수컷을 올리자마자 생식기를 잘라 버리고 암컷으로 속여 팔기도 했단다. '만만한 게 홍어×'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조타실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채 한시도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선장이 "어이쿠" 탄성을 내지른다.

"뭐 한다냐. 허투루 정신 팔지 말랑께."

돌아보니 푸른 물결 속에서 시커멓게 또 다른 홍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낙에 걸려 올라오는 날렵한 홍어는 힘찬 날갯짓으로 낚싯줄을 끊고 금세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선원들이 장대 갈고리로 찍어 배 위로 올린다. "야, 야, 홍어가 아프다고 할께미 팍팍 못 찍냐."

선장은 선원들이 자칫 홍어를 바다에 빠뜨리기라도 할까봐 조바심을 낸다. 그러면서도 얼굴에 번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홍어가 물 밖으로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마름모 꼴로 몸길이 50㎝ 정도, 무게 8㎏ 이상의 최상급 '1번치'다. 요즘 위판(위탁판매)가로 35만원 정도 받지만 한때는 100만원을 넘기기도 했던 놈이다.

"오메, 요로코롬만 잡히면 올해 장가갈 수 있겄네."

"니 장가갈 때 피로연은 내(가 새로 문 열) 식당에서 해줄꼬마."

낚싯줄을 당기고 장대 갈고리를 던지는 선원들의 얼굴에 함박 웃음꽃이 피어났다. 홍어를 잡은 그들의 손 마디마디에서 병술년 새해 희망이 따라 낚여 올라왔다.

<홍도> 글=천창환 기자<chuncw@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장정필 <photo@hanmail.net>

"온당께" "엇싸, 여어"
선장 목소리에 생기가 돌고 선원들 팔뚝엔 힘이 솟는다
갑판 위로 올라오는 방석만한 암홍어
"요 잡것아 진작 좀 올라오랑께
사람 애간장 녹이지 말고 잉"

주낙에 달린 ‘ㄷ’자 모양의 낚싯바늘 450개를 얽히지 않도록 대소쿠리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정리한다(上). 낚싯바늘에 걸린 홍어는 재빠르게 갈고리로 찍어 올려야 한다. 자칫 떨어지면 30여만원이 날아간다(下).

오전 11시10분. 한성호가 빨간 깃발이 펄럭이는 부표 앞에 배를 댔다. 조타실의 GPS(위성항법장치)수신기는 위도 34도56분, 경도 125도13분을 가리키고 있다. 홍어잡이 본 고장인 홍도 2구에서 서쪽으로 시속 10노트의 속력으로 1시간20분 항해한 지점이다.

"자, 자, 가보드랑께."

이 선장이 손을 내젓자 선원 5명이 각자 위치를 잡는다. 배 좌측엔 홍어잡이 주낙 조작용으로 지름 20~30㎝가량의 롤러 3개가 물레처럼 돌아가는 양승기가 설치돼 있다. 양승기 앞에 고참 박동호(58)씨와 황달철(53)씨가 나란히 앉았다. 배 우측 가장자리에 부착된 길이 1.5m가량의 원통형 도르래 앞엔 선원 임동렬(38)와 이순호(38)씨가 각자 갈고리를 든 채 나란히 서 있다.

부표에서 낚싯줄을 건져 올려 도르래에 올린 뒤 양승기에 걸어 손으로 끌어당기면서 본격적인 홍어잡이가 시작된다. 주낙은 한 바퀴가 80~100m다. 이 기다란 줄에 20㎝ 간격으로 가짓줄을 달고 가짓줄 끝에 450개의 낚싯바늘(2㎜ 굵기의 'ㄷ'자 형태)을 달았다. 작업장 한곳에 20바퀴 정도를 연결해 설치한다. 추와 닻으로 바다 밑에 가라앉혀 고정한 뒤 부표줄을 내 표시해 둔다. 이날 끌어올릴 주낙은 일주일 전에 쳐놓은 것이다.

"뭐 한당가."

선장의 재촉에 화장(배에서 밥 짓는 일을 맡은 사람) 박석진(35)씨가 주전자를 들고 뱃머리로 달린다. 주전자에 든 커피를 받아마신 일꾼들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5분쯤 부표줄을 당기자 닻이 올라온다. 낚싯바늘에 걸려오는 것을 제일 먼저 맞는 게 갈고리를 든 임씨와 박씨다.

첫 번째 뱃머리에 도착한 건 꽃게다. 두 번째도 꽃게. 5분쯤 뒤 길이 1m가 넘는 장어가 임씨의 손에서 춤을 춘다. 갑판에 내동댕이쳐진 장어를 고참 동호씨가 익숙한 솜씨로 숨을 죽여 줄에 내건다. 동호씨는 별말이 없다. 선장은 그렇지 못하다. "요렇게 큰놈은 좀체 보기 힘든디." 조황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물메기가 잇따라 올라온다. 우럭도 바구니에 합쳐졌다.

양승기가 쉴 새 없이 돈다. 낚싯바늘엔 생선뿐 아니라 비닐.폐그물.모래포대.불가사리 등도 끊임없이 올라온다. 뱃머리에 선 임씨와 이씨가 낚싯바늘째 끊어 바다로 던져 버린다.

"요만하면 글도 깨끗한 바닥이여. 쓰레기가 하도 많이 나와 배에 싣고 갈 수도 없당께."

한때 쓰레기를 섬에 가져가기도 했으나 처리할 방법이 없어 바다에 다시 내버린다고 했다.

암컷 가격이 수컷의 두 배

잡은 홍어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선원들. 홍어는 그들의 희망이다(上). 조업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한성호(下).

"엇싸, 여어."

작업시작 15분쯤 뒤 동렬씨가 놀란 듯 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바다 쪽으로 구부린다. 첫 홍어다. 재빨리 장대 갈고리로 걷어올려 옆에 서 있던 이씨와 함께 갑판에 내려놓는다.

아귀.소라.게에 이어 간제미도 두 마리 올라왔다. 임씨가 일의 리듬을 찾듯 갈고리로 줄을 툭툭 치며 낚싯바늘이 꼬이지 않게 한다. 다시 20분쯤 지나자 홍어가 갑판에 허연 배를 드러냈다.

"수치여. 하나가 올라와도 암놈이어야 하는디." 선장이 안타깝다는 듯 한마디 한다. 주낙이 동호씨와 달철씨의 손을 거쳐 한 바구니에 찰 때마다 화장이 배 좌측 통로로 날라 차곡차곡 쌓아둔다. 방게가 연달아 두 마리 올라온다. "어릴 때는 냄새 난다고 안 묵었는디. 요즘은 요것도 참말 비싸당께." 달철씨의 말이다. 이 선장도 "두 마리 올라오고 말아부네, 바닥이 깨끗하면 괴기도 없는 모양이여"라고 맞장구를 친다.

작업시작 50여 분 만에 첫 번째 주낙 한 줄을 다 걷어올렸다. 홍어 두 마리와 아귀.물메기.우럭.꽃게 등으로 한 상자를 채웠다. 화장이 갑판을 물로 청소하는 사이 동렬씨는 배 뒤편으로 가 면장갑으로 땀을 훔치며 한숨 돌린다. 5분쯤 이동해 두 번째 주낙을 당기기 시작했다.

순호씨가 허리를 서너 차례 돌리며 몸을 푼다. 물속에서 끌려 올라오는 주낙에서 물고기를 갈고리로 찍어 곧바로 올리지 못하면 바다에 빠뜨리기도 한다. 홍어잡이 5년째인 그는 일이 손에 익어 "물메기 정도는 공중으로 한 바퀴 돌렸다 내려놓기도 한다"고 자랑한다. 주낙의 중간중간에 닻이 올라오면 "어이, 닻이다"하며 손을 내저어 돌고 있는 양승기를 멈추게 해야 한다. 주낙에서 물고기를 떼어내는 것 못지않게 양승기를 제때 멈추고 다시 돌려야 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손을 다치기 십상이다. 양승기를 돌리는 달철씨는 홍어 배를 탄 지 20년도 넘는 베테랑이다.

이번에도 제1착은 게다. 그 후 30분 넘게 고기 소식이 없다.

"왜 이리 소식이 없당가." 성미 급한 동렬씨가 한마디 한다. 낚싯바늘이 떠 있는 수심 75m 아래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다. 달철씨는 목이 타는지 화장을 불러 냉수를 들이켠다.

낮 12시35분. "온당께." 홍어 두 마리가 1분 간격으로 걸려 올라온다. 암수가 쌍으로 걸려 올라오는 것을 두고 선원들은 '가불이'라고 부른다. 낚시를 문 암컷을 수컷이 덮쳐 교미를 하다 함께 잡히기도 한단다. 이 선장은 "요즘 가불이는 아예 꼴도 못봐부러, 요렇게 띄엄띄엄 잡어갔고 어디 밥이나 묵고 살겄어"라며 엄살을 떤다. 오후 1시쯤 세 번째 줄을 당긴지 10여 분쯤 지나 다섯 번째 홍어를 건져 올렸다.

오후 1시25분. "어야, 잘 보드랑께." 갑자기 선장의 목소리에 생기가 넘친다. 커다란 방석만 한 홍어가 갑판에 올려져 헐떡거린다. 고대하던 암홍어다. "요 잡것아, 진작 좀 올라오랑께. 사람 애간장 녹이지 말고 잉." 오랜만에 큰 암홍어를 보자 선원들도 한마디씩 한다.

네 번째 줄에서도 홍어 두 마리를 건졌다.

오후 2시40분쯤 이동하면서 배 뒷전에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돼지고기를 굵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 장어구이, 김치, 삶은 소라가 반찬이다. 흔들거리며 균형을 잡느라 애쓰면서도 밥맛이 달다. 오후 3시쯤 식사를 채 끝내기도 전에 다섯 번째 표지기에 도착했다. 망망대해에 갈매기 대여섯 마리가 고작이다. 또 한동안 고기가 안 보인다.

"어이, 쓰레기를 그라고 버리면 안 된다니까, 참말로. 스크루에 감긴당께."

선장이 쓰레기만 올라오는 주낙을 보고 있다 화풀이하듯 소리를 내지른다. 그는 작업지휘를 하면서도 수시로 무선송수신기로 인근의 홍어잡이 배들과 교신을 한다. 자신의 조업구역을 알려 유사시 도움을 요청하고 어황도 살피기 위해서다. "많이 잡어요?" "밥 묵고는 사요." 다른 배들도 교신에 끼어든다. "작은 배든 큰 배든 배는 채워야 하는디…." "홍어 따라다니면서 그냥 사는 거여." 새해 각오도 들려온다. "성님 쪼까 자주 보드랑께." "술 안 묵을라고 아예 문 밖엘 안 나온당께. 올핸 술 끊어불라네."

7시간 조업에 18마리…위판가만 300만원

한성호는 자리를 옮겨가며 오후 6시까지 여덟 번째 줄까지 당겼다. 이날 7시간 조업의 수확은 암 홍어 네 마리를 포함해 모두 18마리. 한 줄에 두세마리꼴이다. 그래도 위판가로 300여만원 상당이니 반나절 기본은 한 셈이다. 이틀 전에는 40시간 넘게 27줄 540바퀴를 끌어 홍어 60마리 등을 건져 올렸다. 이날 오전 흑산도 수협에서 1100만원에 위판하고 곧바로 홍도를 돌아 나왔으니 사흘째 연이은 조업이다.

이제부터 새 주낙을 바다에 풀어놓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장대 창에다 낚싯바늘을 공중으로 띄워 올려 배의 속도에 맞춰 바다에 푸는 작업이다. 낚싯바늘을 촘촘히 꽂아 둔 바구니 하나가 30초면 금방 빈다. 20바퀴, 한 줄을 바다에 푸는 데 10분이면 족하다. 하지만 선장은 홍도에 들어갔다가 어구를 챙겨 다시 나오기로 욕심을 부린다. 기상이 좋을 때 한 줄이라도 더 걷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밤 사이 열 줄을 더 끌어당길 계획이다.

한성호는 2003년 겨울엔 한 줄에 열대여섯 마리를 건져 올리기도 했다. 그 해 8개월(6~9월은 조업을 안 한다) 작업의 위판량이 5억원에 달했다. 선원들도 3000만원씩은 벌었다고 한다.

겨울바다 칼바람 속에서도 땀에 흠뻑 젖은 순호씨는 "일이 힘들지만 주로 배에서 생활하며 절약해 돈은 좀 모았다"며 "2~3년 더 배를 탄 뒤 육지로 나가 식당을 해 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노총각인 화장 석진씨는 대뜸 "장가 간당께"한다. 2남2녀를 둔 달철씨는 "얘들이 유학가 있는 목포와 홍도에 두 집 살림을 할랑께 영 심이 부친디, 그래도 할 수 있는데까정 갤쳐야제"하고 다짐한다. 할아버지 때부터 해 온 홍어잡이 배를 물려받은 이 선장은 광주서 대학을 나와 한때 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배에 한번 손 대불면 좀체 떠나기 어렵당께, 무슨 마력 같은 게 있어. 밤 잠 못 자고 현기증 나도록 일해도 출어 때면 또 심이 솟아부네. 늘 날씨 걱정하면서 만선에 대한 기대를 품고 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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