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인 기후변화 대응이 곧 국가안보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7.02.12 00:00

업데이트 2017.02.1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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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27면

2010년 여름 러시아를 강타했던 가뭄이 시리아 내전과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중앙포토]

2010년 여름 러시아를 강타했던 가뭄이 시리아 내전과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중앙포토]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5월 해안경비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기후변화는 국가안보에 있어 심각한 위협이므로 이에 대한 대응을 강조했다. 이때 기후변화가 일으킨 안보 위협의 사례로 지금도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을 언급했다. 이는 겉으로만 보면 이슬람국가(IS)의 종교적 광기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후와 관련되어 있다. 시리아는 1950년대 400만 명 수준이던 인구가 현재 약 2200만 명으로 증가된 상태에서 극심한 가뭄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지속되었다. 살기 어렵게 된 농촌에서 수백만 명의 농민들이 도시로 밀려들어 사회적 긴장이 커졌다. 여기에 시리아 정부의 폭압과 ‘아랍의 봄’ 시위 등 여러 정치사회적 요인들이 결합되어 2011년 봄, 대규모 반정부 봉기로 이어졌다.

기후변화는 인류 위협하는 재앙
물과 식량 부족, 기후난민 발생
폭력과 분쟁으로 국가안보 위협
미 CIA는 기후변화센터 설립해 대응

‘아랍의 봄’ 도화선은 2010년 여름 러시아를 강타했던 가뭄이다. 러시아 정부는 밀 생산량이 줄어들 것을 예상하고 수출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했고, 민주적 체계가 불안정한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서는 폭동과 시위에 의해 기존 정권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사태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러시아 가뭄이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아랍의 봄’을 일으킨 방아쇠가 되었고, 이를 통해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오늘 날 시리아 내전과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이는 기후변화가 기존 갈등 요인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시리아 사태는 2010년 러시아 폭염이 원인

유엔 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는 식량안보란, 모든 사람들이 활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고 자신의 음식 취향에 맞는,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충분한 음식을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앞으로 식량안보 여건은 더욱 취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FAO 2050년 인류 생존’ 보고서에 따르면 70억을 돌파한 세계 인구가 2050년이 되면 91억 명으로 34% 늘어나고, 1인당 소비도 증가해 이를 먹여 살리려면 식량 생산이 70% 이상 증가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천재지변이 심해지며 물 부족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시기에 곡물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게 될 것이고 여기에 식량 투기 자본이 달려들어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기후변화는 그 자체로 분쟁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영향력이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고 폭력적인 갈등 위험을 극적으로 증가시킨다. 그래서 우리가 기후변화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자연적인 지구환경에 대한 위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적 재난은 사회적 재난으로 연결되므로 기후변화는 자연과학적인 대책만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지정학적 대책을 논의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식량 폭동과 대규모 환경난민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계속될 경우 사람들은 사회적 안정을 유지할 만큼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위적이며 전체주의적인 정부를 요청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즉, 기후변화는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고 지역과 국가들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이다.

석탄 등 화석연료, 온실가스 발생시켜

안보와 관련된 또 다른 하나의 주제는 기후변화와 에너지와의 상관관계이다. 석탄·석유·천연가스 등 3대 주요 에너지원은 모두 화석연료이며 대량으로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인 온실가스 저감 압박 하에서도 산업화와 도시화로 화석연료 에너지 사용량을 감소시키기는 어려움이 있다. 지금 주요 국가들은 화석연료가 고갈됐을 때를 대비해 에너지원 확보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영국 상원의원인 기든스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 분쟁은 역사에서 이미 여러 번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에너지 안보전쟁이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부족과 난민 발생으로 증폭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후변화는 오랜 기간 동안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원인들이 축적되어 임계값을 넘으면 갑작스럽게 새로운 환경으로 진입하게 만든다. 급변하는 환경의 잠재적 위험을 대비하지 못하면, 사회적인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결과적으로 국가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환경을 감당할 능력을 벗어날 때 싸움을 하며 굶주림과 침략의 갈림길에 서있을 때마다 침략을 선택해 왔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 전 세계적인 기구들과 미국 정보기관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물, 식량,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국가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금년 다보스 포럼에서 전문가 7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 지구적인 위험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기후변화 대응 실패, 자연재해, 난민 위기, 대량살상 무기 등이 상위권으로 발표됐다. 이 중 인류가 직면 할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위험은 대량 살상 무기 다음으로 극한(재해성) 날씨였다. 발생 가능성은 극한 날씨가 가장 높고 대량 살상 무기는 낮은 편이었다. 기후변화는 극한 기상, 특히 폭염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를 증가시키며 이는 가뭄 발생의 원인이 된다. 이와 연관된 물과 식량 위기, 난민 발생을 비롯한 여러 기후 위험들이 상위 10 위 안에 포함되었다. 또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파리기후협정 이행을 위해 탄소저감과 재생에너지 분야 등에 2030년까지 총 13조500억 달러의 지출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다보스 포럼은 이를 근거로 기후변화 대응이 새롭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임을 주장했다.

미국은 안보적 관점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 CIA 안에 기후변화센터를 설립해 사막화와 해수면 고도 상승, 기후난민 발생 등의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2003년 발간한 보고서 ‘돌발적인 기후변화가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서 ‘유럽은 아프리카와 중동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기후난민 때문에, 아시아는 심각한 식량과 물부족 위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큰 혼란에 빠져 곳곳에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기후 재앙으로 식량난, 식수난, 에너지난 등이 겹친 혼란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이에 따른 강력한 ‘안보 태세’를 강조했다. 이 보고서의 예측은 이미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폭력과 분쟁은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형태로 국가안보를 위협할 것이다. 과거에는 이념, 종교, 또는 국가적 자존심을 둘러싼 충돌이 대부분이었지만, 앞으로는 에너지, 식량, 물과 같은 자연자원의 절실한 필요가 지역과 국제적 갈등을 유발할 것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떻게 이런 사태가 일어날지는 지금 기준으로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앞으로 위기는 전 지구적이고 복합적이고 지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강도로 닥쳐올 것이라는 점이다. 시리아 사태는 대혼란이 어떤 모습일지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유럽의 정교한 인프라도 시리아 난민 처리에 절절 헤매고 있다. 즉,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기후와 환경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대부분의 체계들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이처럼 기후 문제는 독립적인 쟁점이 아니다. 이것은 인류가 직면한 안보의 맥락에서도 인식되어야만 한다. 열린 세계의 사회·경제적 번영과 안전을 위해, 그리고 식량, 물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도 기후변화에 선제적 대응이 중요하다.

21세기 최초 기후전쟁인 다르푸르 분쟁

“지난 2003년 지구촌 최대 비극인 수단 다르푸르 분쟁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발생됐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07년 6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 중 일부다. 다르푸르 지역은 예전에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비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토양이 비옥해 곡식과 과일을 집약적으로 재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도양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계절풍에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지난 20년간 이 지역 강수량은 40% 이상 감소했다. 유목민들이 가축에게 풀을 먹이는 초지가 사라졌으며 농사를 지을 땅은 사막으로 변했다.

유목민인 아랍계가 소와 염소를 먹이기 위해 아프리카계인 농부들이 경작하는 농지를 침범했다. 피부색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두 집단은 이내 전쟁을 벌였다. 악명 높은 인종 청소가 일어난 이 분쟁은 피상적으로 보면 아랍계와 아프리카계 간의 종족 갈등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존 갈등으로 발생했다. 부족한 자원을 얻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거주 불가능한 지역들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이들이 자신들의 거주지를 침범하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이었다. 미국 CIA 출신들이 중심이 된 국제전략연구소(CSIS)는 2007년 ‘결과의 시대’(The Age of Consequences)라는 보고서에서 앞으로 기후변화로 이주와 이민이 대거 증가하면서 인종과 종교, 식량 갈등이 새롭게 조성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보고서는 21세기 들어 최악의 인종 청소가 자행됐던 다르푸르 사태를 최초의 ‘기후 전쟁’으로 꼽았다.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장
연세대 대기과학 박사. 국립기상연구소 지구대기감시센터장, 지구환경시스템연구과장, 기후연구과장 역임. 미국 지구시스템과학원 지구대기감시연구소 탄소순환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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