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2월말 결정” vs “정치탄핵 분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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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01면

촛불·태극기집회에 여야 정치인들 가세, 헌재 압박 세대결

정월 대보름인 11일 서울 도심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촛불 박태균 서울대 교수 #“미래세대 위한 공정사회” #태극기 조동근 명지대 교수 #“박근혜 아닌 대한민국 탄핵”

광화문광장에서는 ‘박근혜 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박근혜·황교안 즉각퇴진 신속탄핵’을 위한 1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한동안 주춤했던 촛불집회는 탄핵 기각설 등으로 인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영하의 날씨에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는데도 광화문광장은 촛불을 든 시민들로 가득 메워졌다. 주최 측은 “70만 명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탄핵반대 단체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도 맞불을 놨다. 탄기국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제12회 탄핵무효 태극기 애국집회’를 열었다. 촛불집회보다 늦게 시작된 태극기 집회는 점점 커지고 있다. 서울광장이 확성기 소리와 태극기 물결로 가득 찼다. 탄기국은 “한국 역사상 최대인 2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광장은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졌다. 북쪽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안진걸 퇴진행동 상임운영위원은 “헌재는 밤을 새워서라도 2월 말에는 탄핵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쪽 서울광장 태극기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집회 사회자 지시에 맞춰 ‘탄핵기각’ ‘탄핵무효’ ‘국회해산’ ‘특검해체’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는 국회의원들도 참가했다. 촛불집회에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참석했다. 역시 민주당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는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서 촛불을 들었다. 태극기집회에는 새누리당 김진태·윤상현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인제 전 최고위원 등이 참가했다.

 헌재의 탄핵 결정이 다가오면서 촛불과 태극기집회로 갈라진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SUNDAY는 이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박태균(51)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조동근(64)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시민들이 두 개의 광장에 나온 까닭을 들어봤다.

왜 집회에 나왔나.
▶조동근“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와 좌절 그리고 탄핵을 막는 데 일조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탄핵 의결부터 시켜놓고 사후에 특검 수사를 통해 탄핵을 정당화시키면 된다’는 국회의 오만에 분노했다. 국회의 탄핵 사유는 불충분(루머와 일방적 기사 및 여론에 근거해 탄핵사유서 제출)하다. 최순실 비리와 박 대통령 국정수행을 구분하지 않고 악의적으로 매도해 분개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동급 공동정부, 경제공동체 운운’은 국격을 허무는 행위다.”
▶박태균“촛불집회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요구를 담고 있다. 그래서 중·고등학생들의 시위 참여가 많았다. 주변에 물어보면 아이들이 집회에 가자고 해서 부모와 함께 온 사례가 많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요구는 청소년이나 기성세대나 동일하게 느끼는 공통점이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기성세대가 걱정한 건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미래 세대였다. 기성 세대들이 미래 세대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참가한 집회의 본질은 뭐라고 보나.
▶조“태극기집회는 법치주의에 기초하지 않은 정치탄핵에 국민이 분노한 것이다. 태블릿PC 조작에서 비롯된 최순실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는 특검과 언론에 대한 분노다. 또한 야당 대선후보들의 사드 반대에 대한 우려, 한·미 동맹 와해를 우려한 것이다. 반정부·반국가 용공 세력의 헌정 파괴를 불용하고 통진당 이석기, 민주노총 한상균 석방 등을 주장하는 세력에 대한 반대다.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싸잡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문서가 노출되어 어떤 국가적 손실이 초래됐는지를 밝혀야 한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태블릿PC에 대한 ‘엄격한 그리고 신뢰할 만한 초동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것도 많을 사람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박“촛불집회는 시민들의 자신감 표출이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패배주의와 회의주의에 젖어 있었다. 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 만연돼 있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 청산될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강력하게 남아 있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은 민주화를 주도한 시민들에게 패배감을 주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16년 촛불 시위를 통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정치적 평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성급한 비판보다는 이에 대한 객관적·실증적 연구를 통해 그 정치적 유산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시민사회는 더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광장에 얼룩말 연구회 등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깃발들이 등장한 건 다원화된 한국 사회를 반영한다.”

정치인들이 광장에 나와 목소리 내는 걸 어떻게 보나.
▶조“시민들은 광장에 나올 수 있지만 의원들은 국회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혹 일부 의원이 나오더라도 당 대표나 당직자들은 나와서는 안 된다. 광장에서 얘기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선동이 된다.”

▶박“정치인도 광장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국회의원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광장을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성호준·강기헌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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