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기스플랜'
제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매기스 플랜’, 즉 매기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인생에서 세웠던 많은 계획이 그렇듯, 매기의 플랜도 의도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싱글맘이 되려던 계획은 뜻하지 않았던 만남으로 무산됐고, 아이에다 남편까지 생겼으니 더 좋은 것 아니냐 싶지만 그렇지가 않다. 존은 매기와 결혼하자마자 인류학 연구를 그만두고 소설에 전념하겠다며 틀어박힌다. 매기는 생계를 떠맡은 데다 ‘독박 가사’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상황에 처한다. “무서운 속도로 사랑이 식고 있어”라고 한탄하던 매기는 여전히 존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듯한 전처 조젯에게 존을 돌려보내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남편 반납 계획’ 역시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진행돼 간다.
결혼과 불륜에 이혼과 재결합, 막장 드라마 소재같은 내용이 이어지지만 영화는 신기할 정도로 밝고 사랑스럽다. 전작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에서 ‘여자 우디 앨런’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탁월한 유머감각을 발휘했던 레베카 밀러 감독은 이번 이야기 역시 엉뚱한 캐릭터와 재치 넘치는 대사로 한 편의 귀여운 소동극처럼 만들어냈다. 눈 내리는 맨해튼의 유니온 스퀘어와 그리니치 빌리지 등 뉴욕의 감성적인 겨울풍경이 멋진 배경이 되어준다. 거기에 수학 천재였다가 이제는 피클을 만드는 ‘정자 제공 약속남’ 가이, 매기에게 애정어린 독설을 쏟아내는 친구 토니와 펠리시아 부부 등 개성있는 등장인물을 넣어 웃음을 끌어낸다.
‘프랜시스 하’에서 낙천적이고 엉뚱한 청춘의 모습을 보여줬던 그레타 거윅의 연기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끌어간다. 둔한 듯, 맹한 듯,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매기 역할을 멋지게 소화했다. 전처와 매기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책임감 없고 징징대는 낭만주의자 존 역할은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로 첫사랑의 이미지를 아로새긴 에단 호크가 맡았다. 그래선지 전형적인 밉상 캐릭터지만 진심으로 미워 보이지는 않는다. 전처 조젯 역할의 줄리안 무어도 무섭지만 매력적인 센 언니 캐릭터를 잘 그려냈다.
밀러 감독은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세계적 극작가 아서 밀러의 딸이자 연기파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아내이기도 하다. 아티스트의 딸이자 아내로 살아온 경험이 이야기 곳곳에 녹아있는 듯 하다. 유능한 아내의 뒤치닥거리에 지친 존은 “모든 관계에는 장미와 정원사가 있다. 내가 정원사고 조젯이 장미”라고 푸념하지만, 매기와 결혼하니 즉각 상대방의 자상함에 기대 자신도 장미가 되버린다. 결국 한 쪽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결혼이라는 제도, 이혼 후에도 친구처럼 지내는 인연, 비혼 부모 등 변화하는 이 시대 가족의 풍경을 폭넓게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모두 쿨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며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결말은 다소 억지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다양한 선택을 인정하고, 폭넓게 연대하며 꾸려가는 삶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느껴져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인생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지만, 그렇기에 예상치 못했던 해피엔딩과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다정한 메시지. 무엇보다 누구한 한번쯤 상상해봤으나 감히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발칙한 플랜을 쑥쑥 밀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재미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