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에 맞아 죽은 20살 아들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쓰러졌습니다. 3개월 넘게 제 남편이 뇌졸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 당신들의 제품을 보게 됐어요. 남편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중순 미국 CNN은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7의 가장 멋진 제품 14개’를 선정·발표했다. LG·도요타·소니·레고 같은 글로벌 대기업의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이 리스트에 한국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네오펙트(NEOFECT)가 선보인 뇌졸중 재활 제품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가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됐다.
CNN의 뉴스가 나온 후 네오펙트의 공식 사이트와 페이스북은 ‘당신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영어 글이 계속 올라왔다. 1월 말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네오펙트 사무실에서 만난 반호영(41) 네오펙트 대표는 “CNN 방송이 나온 후 뇌졸중으로 고생하는 남편이나 아내를 둔 배우자들이 ‘삶의 희망을 얻었다’ ‘하늘이 내게 보낸 천사 같다’ 등의 글을 보내고 있다”면서 “이런 글들을 보면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CNN의 극찬을 받은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는 뇌졸중 등 중추신경계질환 환자들이 게임을 통해 재활 훈련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의료기기다. 뇌졸중을 겪는 환자 중 많은 이들이 몸의 한쪽을 잘 사용하지 못한다. 재활 훈련을 통해 마비된 몸의 기능을 살려야만 일상 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 재활 훈련의 문제점은 돈이 많이 들고 지루하다는 것. 반 대표도 젊은 시절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고생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그는 “두 분 모두 뇌졸중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는데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으려면 1년에 수천만원이 들 정도로 일반 가정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는 재활 훈련의 어려움으로 꼽히는 ‘지루함’과 ‘비용 부담’을 해결했다. 반 대표는 해결책으로 ‘게임’을 내세웠다. 네오펙트는 40여 가지의 재활 게임을 개발했다. 탁구·야구 같은 간단한 스포츠 게임부터 다트 던지기, 과일 고르기 같은 캐주얼 게임 등을 마련했다. 게임을 하는 것이 재활 훈련인 셈이다.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에는 관성측정장치 센서 및 벤딩 센서가 설치돼 있다. 이를 통해 환자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다. 환자들의 데이터는 네오펙트의 인공지능이 분석하고, 각 환자에게 적합한 훈련 게임을 제안하게 된다. 반 대표가 “네오펙트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아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을 통해 재활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132g의 가벼운 무게로 언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제품의 효용성을 높여준다. 그는 “병원이나 집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재활 훈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는 여타 재활 훈련 기기보다 저렴하다. 네오펙트는 재활 훈련을 제공하는 병원을 대상으로 1만5000 달러(약 1700만원)에 팔고 있다. 1월 현재 전 세계에 200여 대를 납품했다. 한국에서는 국립재활원·서울대병원·단국대병원·분당재생병원·부산파크사이드병원 같은 곳이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사용하고 있다. 반 대표는 “한국의 재활병원은 1000개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재활 시장 규모는 1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의 경우 시카고에 있는 세계적인 재활병원 RIC, 위스콘신 주립대 병원, 애리조나주의 배너 헬스 병원 등이 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반 대표는 “우리 제품을 납품한 미국 병원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재활병원으로 꼽힌다”면서 “1년 동안 네오펙트의 레퍼런스를 훌륭하게 만들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네오펙트는 이를 통해 지난해 2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네오펙트는 올해 B2C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CNN 방송 이후 전 세계에서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찾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B2C 사업 모델은 렌털 시스템을 이용할 계획이다. 사용한 만큼만 돈을 내는 것이 환자 입장에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매월 100(약 11만4000원)~200달러(약 22만9000원) 정도의 비용을 책정할 예정이다. 그는 “우선 미국 시장에서 B2C 비즈니스를 집중할 계획인데, 올해 1000명 정도의 사용자를 모으는 게 목표다. 이렇게 되면 네오펙트의 올해 매출은 100억원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6월 네오펙트 창업 후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4년이 걸렸다. 관련 특허만 30여 개가 넘는다.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가 세상에 나오자 많은 이들이 네오펙트를 주목했다. 포스코 벤처파트너스, DSC 인베스트먼트 등 여러 벤처캐피털(VC)들이 지금까지 118억원을 네오펙트에 투자했다. 의료기관들도 네오펙트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삼성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등이 네오펙트와 손을 잡았다. 반 대표는 “미국의 스탠퍼드대는 우리와 함께 홈 케어 제품에 대한 임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2월에는 국립재활원 재활의학과 신준호 박사팀이 가상현실 기반의 재활치료의 효용성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의 효용성을 인정한 것이다.
반대표는 재활 관련 제품들을 속속 내놓으면서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4~13세 발달 장애 아이들의 재활 훈련을 돕는 ‘라파엘 스마트 키즈’를 선보였다. 지난 1월 CES 2017에서는 ‘라파엘 스마트 보드’도 선보였다. 반 대표는 “스마트 보드는 한쪽 팔 전체의 재활 훈련을 돕는 의료기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마트 글러브를 흉내 낸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계속 성장하려면 끊임없이 제품을 고도화해야만 하고, 혁신을 이어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15년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법인을 설립했고, 지난해 10월에는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독일 뮌헨에도 법인을 세웠다. 반 대표는 “올해 목표는 미국의 홈 재활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네오펙트는 두 번째 창업이다. 카이스트(항공우주공학과) 졸업 후 삼성전자 TV사업부 기술전략기획 파트에서 경험을 쌓은 후 미국 LA에서 IPTV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했지만 2년 만에 손을 털어야 했다. 그는 “모든 것이 부족했던 때였다”고 회고했다. 그때의 실패를 발판으로 카이스트 선배인 최용근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손을 잡고 창업한 것이 네오펙트다. 반 대표는 “최 선배에게 이 사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공동창업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명으로 시작했던 네오펙트는 현재 60여 명의 임직원이 일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