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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생산 줄까봐 구제역 백신 안 놓았다” 축산농의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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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구제역 확산으로 전국의 모든 가축시장이 일시 폐쇄됐다. 10일 오후 충남 논산 가축시장에서 방역 담당자들이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논산=프리랜서 김성태]

구제역 확산으로 전국의 모든 가축시장이 일시 폐쇄됐다. 10일 오후 충남 논산 가축시장에서 방역 담당자들이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논산=프리랜서 김성태]

구제역이 연례행사처럼 반복해 발생하는 배경에는 정부와 축산 농가의 소통 부족과 불신이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축산 농가는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착유량(우유 생산량)이 줄어들거나 유산 등의 불이익을 우려해 접종을 기피하고 있다. 정부가 권장하는 백신의 효능에 대한 농가의 불신도 심하고 당국의 현장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예전 접종 뒤 일주일 생산 30% 감소”
접종 거부 뒤엔 백신효과 불신 한몫
항체 90%인 연천 농가서 구제역
정부 “병 걸린 뒤 항체 생겼을 수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16만2621마리(전국의 40%)의 젖소를 키우는 경기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경기도 연천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비상이 걸렸지만 경기도 남부의 젖소 농가에서는 구제역 백신 접종을 여전히 꺼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젖소 50여 마리를 키우는 A씨(47)는 기자에게 “지난해 7월 지자체로부터 구제역 백신을 지급받았지만 주사를 놓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전에 백신을 주사했더니 젖소가 스트레스로 잘 먹지 않아 착유량이 일주일간 20∼30%나 감소해 큰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농장주 “접종 전문가가 놓아달라”

농가들의 백신 접종 거부 배경에는 백신 효능에 대한 불신도 작용하고 있다. 올 들어 첫 구제역이 발생한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의 젖소 농가 주인 최모(65)씨는 “백신을 접종한 뒤 안심하고 있었는데 구제역 발생 이후 항체 형성률 검사 결과 19%가 나와 충격을 받았다”며 “까다로운 백신 접종을 농장주에게 맡기지 말고 전문가가 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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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바이러스 항체 형성 비율이 높아도 안심할 수 없다는 조사 결과가 10일 나오면서 축산 농가들의 백신 불신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경기도 AI·구제역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8일 A형 바이러스 구제역이 발생한 연천 젖소 사육 농가의 젖소 21마리의 백신 접종에 대한 항체 형성률 검사 결과 A형은 90%, O형은 52%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날 밝혔다. 항체 형성률이 낮았던 보은군 구제역 발생 농가(19%)나 전북 정읍 발생 농가(5%)와 달리 연천은 항체 형성률이 비교적 높은데도 구제역이 발병했다는 얘기다. 경기도 관계자는 “연천의 사례를 보면 백신 접종이 구제역을 100% 막는 수단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A형 항체 형성률이 90%인 연천 젖소 농가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한 데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측은 “바이러스 감염 후 보통 4~7일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항체가 형성된다. 연천 젖소 농가가 구제역이 발생하고 꽤 시간이 지난 후 신고를 하면서 항체 형성률이 높게 나왔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젖소 70여 마리를 키우는 연천군 낙농연구회 최철(51) 회장은 “그동안 6개월에 한 번씩 O형 구제역 백신을 집중 접종했는데 연천에서만 A형 구제역이 발생하는 바람에 오늘 다시 ‘A+O형’ 구제역 백신을 접종했다”며 허탈해했다. 그는 “백신을 접종하면 착유량이 감소하지만 정부의 보상은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정부 “매뉴얼대로 놓으면 항체 잘 형성”

정부는 구제역 백신의 효능은 검증이 됐다고 강조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백신은 냉장 보관을 하다 실온에서 녹여 접종하는 등 정확한 매뉴얼만 따르면 항체가 잘 형성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상시 300만 마리가 넘는 소 전체를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전수조사는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도수의사회 이성식 회장은 “개인 이익을 우선하는 일부 축산 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고 전염병 발생·확산에 책임이 있는 농가에는 보상금 지급에서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축산 선진국인 덴마크처럼 일정한 시설과 축산 지식을 갖추도록 제한하는 ‘가축 사육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농식품부는 네 번째 구제역 신고가 접수된 보은군 탄부면의 한 한우 농가에 대한 조사 결과 O형 구제역 바이러스로 확진됐다고 10일 밝혔다. 이 농장은 5일 구제역이 발생했던 보은군 마로면의 젖소 농가와 약 1.3㎞ 떨어져 있다. 이로 인해 두 농가 사이에 전염병이 옮겨 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천·보은·수원 =전익진·최종권·김민욱·이승호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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