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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붉가시나무 마음 찌르고, 별똥별은 쏟아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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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기 넘치는 ‘녹색 겨울’ 완도

푸르름을 찾아 남도로 갔다. 만물이 동장군 아래 바짝 엎드린 정월 초사흘(지난달 30일)에도 남도의 산하는 푸르렀다. 한겨울에도 성성한 해남의 월동배추가 푸르고, 완도대교 아래 시린 바다가 푸르렀다. 그중 으뜸은 완도수목원 난대림이다. 산 아래부터 꼭대기 상황봉(644m)까지 푸른 융단을 펼쳤다. 겨울이 무색할 지경이다. 차가운 공기 아래 녹색 풍경을 안은 완도에서 보낸 36시간을 소개한다.

수목원 붉가시나무 숲의 연인들.

수목원 붉가시나무 숲의 연인들.

남도 끝에 펼쳐진 푸른 겨울의 주인은 붉가시나무다. 쭉쭉 뻗은 근육질 둥치는 물론 도톰한 이파리마다 푸르름이 가득하다. 붉가시나무만 푸르다고 하면 구실잣밤나무·황칠나무·녹나무·후박나무·참식나무·생달나무·센달나무가 서럽다. 이런 활엽수림이 무려 2000만㎡에 달하니 섬 전체가 수목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이 힘을 못 쓸 법도 하다.

붉가시나무는 이 섬의 보물이다. 섬이 생긴 이래 구들장 데우는 땔감은 물론 집 짓고, 김 양식 할 때 긴요하게 쓰였다. 하늘로 쭉쭉 뻗는 데다 소나무보다 단단하고 바닷물에 담가도 썩지 않기 때문이다. 배고픈 시절에는 몰래 베어 장에 내다팔면 처자식을 건사할 수 있었다. 전남 함평이 북방한계선인 붉가시나무 군락지는 전국에서 완도 본섬과 보길도에만 있다. 그러고 보니 완도는 섬이면서 산이다. 섬의 60%는 산지이며, 그 중 3분의 2가 완도수목원에 속해 있다.

숲에 들면 푸르름은 가슴으로 파고든다. 붉가시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12개 수종 중에서 탄소 흡수율이 가장 높다. 일산화탄소·이산화탄소 등을 말끔히 없애주고 산소를 무장무장 공급한다. 녹나무는 또 어떤가. 잎을 따 손에 비비면 머리가 맑아진다. 장뇌목(樟腦木)이라 불리는데 향료·방충제·강심제의 원료다. 수목원에는 수백여 종의 야생동물도 산다. 동백나무 사이서 지저귀는 동박새의 울음소리가 정겹다.

해남에서 완도로 가는 다리.

해남에서 완도로 가는 다리.

Saturday  06:00 서울역

새벽 6시 이전 시간에는 서울서 목포로 가는 KTX가 두 편 있다. 꼭두새벽에 길을 나선 수고는 목포역에 도착해 북항이나 유달산 아래서 받는 느긋한 아침상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시원한 낙지연포탕이나 개미진 낙지비빔밥으로 토요일 아침을 맞는 호사를 또 어디서 누릴 수 있을까.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름답다. 이후에는 렌터카를 이용하면 편하다. 고속버스도 괜찮은 선택이다. ‘자가 운전을 피하라’는 이유는 완도까지 꼬박 6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차 안 막히고, 휴게소에서 딱 한 번 쉬었을 때 걸리는 시간이다. 때문에 자칫 여행이 시작부터 지루해질 수 있다. 또 왕복 고속도로 통행료만 해도 5만원에 육박한다. 목포역에서 빌릴 수 있는 렌터카는 36시간 기준 8만~12만원(소형차) 선이다. KTX도 오전 6시 이전 티켓은 25% 할인받을 수 있다. 잘 조합하면 오히려 경제적이다.

09:00 목포~해남 산이 806 지방도

겨울에도 푸른 해남의 배추밭.

겨울에도 푸른 해남의 배추밭.

‘T맵’을 켜고 완도수목원을 행선지로 정하면 2번·18번 국도로 안내한다. 시골에 와서 굳이 좌우가 꽉 막힌 4차선 도로를 달릴 필요가 없다. 목포에서 해남 산이반도를 관통하는 806 지방도는 겨울을 이기는 길이다. 색이 바래지 않은 월동배추가 겨우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배추를 내간 황토밭 풍경도 아름답다. 더러 트랙터가 새로 지나간 자리는 시뻘건 속살을 보인다. 이 겨울 이만큼 이색적인 풍경도 드물다. 한국관광공사가 늘 ‘2월에 가볼만한 여행지’로 이 곳을 추천하는 이유다.

10:00 해남 남창장·완도읍장

완도 중앙시장의 해산물들.

완도 중앙시장의 해산물들.

2·7일에 방문한다면 해남 남창장, 0·5일이라면 완도읍장에 들러볼만하다. 해남 남창은 대부분의 시골장이 소멸해가는 가운데, 근동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의 발길이 늘고 있는 곳이다. 완도와 마주보는 북평면에서 나는 갯것들이 많다. 겨울에는 자연산 석화를 비롯해 낙지·해조류가 많이 난다. 완도읍장도 못지않다. 이마저도 빗겨간다면 매일 열리는 완도 중앙시장도 있다. 요즘엔 감태와 매생이·톳이 한창이다. 갈색을 발하는 톳은 뜨거운 물에 살짝 담구면 금세 푸르게 변한다. 밥을 지을 때 한 움큼 넣으면 해조류 밥이 되고, 콩나물과 함께 넣으면 콩나물톳밥이 된다. 중앙시장서 매생이 한 덩이에 3000원, 톳 한 되는 5000원이다.

11:00 완도 수목원 5000보·1만보

숲에 안긴 수목원 산림박물관.

숲에 안긴 수목원 산림박물관.

수목원 임도만 50㎞에 달한다. 걸을만한 길이 최소 50㎞ 이상이라는 뜻이다. 대부분 완만한 산책 코스라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산림박물관 옆 뒤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잠시 짬을 내 걷기에 가장 좋다. 계곡 물소리와 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600m쯤 올라가면 미끈한 동백나무 군락 사이로 나무 데크 길이 공중에 나 있다. 안개 끼는 날이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데크가 끝나는 지점에 수간 벤치가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로맨틱하다. 벤치에 앉으면 동백나무·구실잣밤나무·붉가시나무 향이 폐부를 파고든다. 왕복하면 약 3㎞, 5000걸음이다. 1만보(6~7㎞) 이상 걷고 싶다면 아열대 온실에서 시작해 제1·2전망대까지 오른 뒤 돌아 나오면 된다. 임도지만 차가 다니지 않는데다 방문객이 적어 호젓하기 그지없다.

14:00 ‘바다를 담은 면’ 식당의 해조류 주먹밥

해조류 주먹밥

해조류 주먹밥

푸른 숲과 어울리는 해조류 국수 전문점이다. 삼림욕에서 막 바로 빠져 나온 여행객에게 맞춤이다. 마당이 훤히 보이는 통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좋다. 톳·다시마·미역을 재료로 만든 국수를 직접 뽑는다. 음식 이름도 재미있다. 전복을 담은 크림 파스타, 전복을 올린 물회, 바다를 담은 장터국수, 후리가케와 비슷한 ‘뿌리랑께’ 주먹밥 등이다. 뿌리랑께는 참기름을 살짝 두른 밥에 김·다시마·잔멸치·참깨를 얹었다. 향긋한 바다 향과 고소한 내가 코끝을 찌른다. 가격도 한 덩이에 불과 1000원이다. 나머지 파스타·국수류는 별미로 먹을 만하다. 해조류 국수 공장에서 직영하는 곳으로 마른 미역과 다시마 등 완도산 갯것을 적당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18:00 완도해수탕

해수탕이 몸에 좋다는 말은 더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이색 볼거리를 더했다. 해수탕이 있는 지하 1층의 4분의3 정도가 바닷물에 잠겨 있다. 탕에 몸을 누이고 유리창을 바라보면 파도가 넘실거린다. 해수탕에 몸 담그러 왔다 ‘잠수함 투어’를 하는 격이다. 아쉽게도 이런 호사는 남탕에 한해서다. 지상 1층에 있는 여탕은 발아래가 바다다. 완도관광호텔 내에 있다.

22:00 수목원에서 별 바라보기

“여긴 별이 무진장 많아요. 별똥별도 여기 오면 흔합니다.” 오득실(48) 완도수목원장의 말이다. 상황봉 산자락이 병풍을 치듯 수목원을 감싸고 있어 아늑한데다 불빛이 들어올 틈이 거의 없다. 별 바라보기에 딱 좋은 장소다. 해가 지고난 후 숲은 짐승 발자국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하다. 일몰 후 별 감상은 수목원 입구 호수 산책로가 좋다.

Sunday  07:00 숲속 산책

동서로 골짜기와 호수가 있어 사철 산안개가 낀다. 상황봉과 백운봉(600m) 능선 사이로 늘 구름이 넘실거린다. 이른 아침 수목원 숲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숲을 서성대기만 해도 좋다. 이른 오전 2전망대까지 오르면 동쪽 고금도 너머로 떠오르는 해돋이를 볼 수 있다.

10:00 대야리 붉가시나무 숯가마

숯 가마터

대야리에는 소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숯 굽는 장인(匠人)이 산다. ‘숯 명인(대한명인 06-50호)’ 정무삼(74)씨는 부친에게 배운 기술을 이어받아 십 수 년 전부터 숯 가마터를 재연하고 있다. 붉가시나무로 만든 숯은 조선 후기 전라우수영에 군납한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오래 됐다. 정씨는 “참나무숯이 2시간 가면 붉가시나무 숯은 세 배 더 오래 탄다”고 말했다. 조릿대밭에 봉분만한 가마터가 있고, 한두 달에 한 번씩 가마를 지핀다. 나무를 채워 불을 놓고 구멍을 닫아놓는데 숯이 되려면 보름 이상 걸린다. 한 달에 반 정도는 숯가마가 가동되는 셈이니 행여 헛걸음을 하더라도 한 번 들러볼만 하다. 대야리에서 30분 정도 오르면 하늘을 찌를 듯한 붉가시나무 숲이다.

13:00 현지인도 먹기 힘든 완도 갯국

완도 갯국

완도 갯국

갯바위에서 자생하는 너벌추로 끊인 된장국은 완도에도 오랜 전통을 가진 음식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해조류는 파래와 가시리가 함께 뒤엉킨 것으로 배고픈 시절에나 먹던 ‘바다풀’이다. 하지만 이제는 현지 사람도 맛보기 힘들다. 갯바위에서 너벌추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날이 따뜻한 올 겨울엔 유난히 구하기 힘들단다. 완도 노화섬이 시댁인 빙그레 식당의 김숙희(57)씨는 “사라지기 직전의 음식”이라고 했다. 재료비가 덜 드는 미역국으로 대신하고 싶지만, 식당을 찾는 완도 사람들이 “너벌추 갯국 어디갔냐”고 채근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멸치·다시마·민꽃게 다리를 넣고 끊인 육수에 너벌추와 파래·미역·가시리를 넣고 푹 끊이면 시원한 국물이 우러난다. 아침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완도를 통틀어 음식으로 내놓는 곳이 단 2곳뿐이다. 빙그레식당은 시원한 너벌추국에 큼지막한 참돔·우럭·삼치를 구운 갯국생선구이 백반을 1인분 2만원에 낸다.

15:00 해남 미황사

완도수목원에서 바라보니 바다 건너 해남 쪽 산이 확연했다. 해남의 산하는 한반도의 산맥을 닮았다. 땅끝 해남의 사자봉(162m) 전망대를 시작으로 달마산 마봉(390m) 송신탑, 달마산 정상(489m) 암봉, 두륜산 케이블카 타워가 있는 고계봉(638m)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봉수대를 재연해놓은 것 같다. 미황사는 템플스테이로 첫 손에 꼽히는 절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하룻밤 더 묵어가도 좋다.

어디서 묵을까

수목원 앞으로 ‘수목원 펜션’이 있다. 밤에 별 보고, 오전에 숲속 산책하려면 이 곳이 맞춤이다. 수목원 북동쪽 능선으로 전남청소년수련원이 있는데, 이 곳에도 외떨어진 민박집이 있다. 이 밖에도 한옥민박을 비롯해 쉐이리펜션·솔비치펜션·하늘정원펜션·원네스리조트 등이 깔끔하다.

글=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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