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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뭐든 가능한 창업 놀이터 ‘규제프리 샌드박스’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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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일을 하고 싶다”는 청년들의 꿈과 희망에 부응하기 위한 실행과제로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는 모두 5개를 제시했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를 비롯한 경제분과 위원들은 “큰 틀에서 보면 경제는 일자리·양극화·성장이 모두 연결돼 있다”며 “청년 실업부터 풀어야 경제 회복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5개 실행과제가 체계적으로 실행되면 창업생태계를 강화하고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 청년이 가고 싶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리셋코리아 경제분과 대안은
정부 나서면 기업 종속, 성과 떨어져
연대보증도 폐지, 실패 용인 문화를

민간, 임금피크·점진적퇴직제 도입
근로시간 줄여 청년 일자리 창출을

실행과제1 “정부는 규제프리 샌드박스 제공”

이런 환경을 만들려면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강영재 코이스라시드파트너십(KSP) 공동대표는 “정부의 역할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스타트업 기업이 성장하도록 창업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것이고, 이 안에서 혁신과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수많은 진흥원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에 기업이 의존하고 종속되면서 성과가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진흥원 공화국’ ‘정부동물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강 대표는 “아이들 놀이터처럼 규제프리 샌드박스를 만들어 이 안에서는 마음껏 놀도록 하고 대표자 연대보증 같은 제도를 폐지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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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과제2 “창업 기업에 민간투자 확대”

경기 불황 속에 지난해 정부와 민간의 국내 벤처기업 투자는 2조1503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경기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도 양질의 스타트업 기업이 꾸준히 늘어난 결과다. 하지만 효율성은 떨어진다. 정부 주도로 벤처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모태펀드까지 조성돼 있지만 정부의 기술평가 능력이 떨어져 정부 지원 자금만 따내는 좀비벤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조성욱 서울대 교수는 “민간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비로소 창업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다”며 “혁신 창업 기업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시장에 공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행과제3 “신규 산업 진입 완전 자유화”

창업가의 시장 진입도 훨씬 자유로워져야 한다. 한국은 교육 수준이 높아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일자리를 만들 기회도 많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규제 공화국이다. 김윤이 뉴로어소시에이츠 대표는 “신성장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은데 규정에 없는 것을 하려면 공무원의 고민도 깊어진다”며 “혁신생태계를 도우려는 공무원 경력에도 도움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갈라파고스식 규제는 결국 4차 산업과 공유경제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만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박정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핀테크업체 ‘8%’가 대부업체로 등록하고 금융·산업 분리정책에 묶여 인터넷은행이 출범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 때문”이라며 “원칙적으로 규제를 하지 않는 네거티브 시스템이 확산돼야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실행과제4 “임금피크제와 점진적 퇴직제도”

이같이 창업생태계와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2%대 저성장 구조에서는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려면 취업 기회를 배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촉진하고 점진적 퇴직제도를 도입해 여기서 확보한 재원으로 청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점진적 퇴직제도는 임금피크에 도달한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25~75% 수준으로 줄여나가면서 임금을 줄이는 것으로, 여기서 확보된 재원으로 청년 고용을 확대할 수 있는 제도다. 독일·스웨덴·일본은 정년을 연장하면서 이 제도를 받아들여 장년의 노후 보장과 청년 일자리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하고 있다.

실행과제5 “정부가 임금 지원하는 일자리를”

극심한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파격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부가 선발해 임금과 연금을 지원해주고 혁신형 성장 기업에 근무하는 청년 일자리 5만 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당분간 일자리를 만들 곳은 고용의 88%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밖에 없으며, 이 중에서 혁신 성장 중소기업에 필요한 연구개발(R&D)과 글로벌 마케팅 수행 업무에 투입하자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기술을 개발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중소기업 자력으로 이 두 가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같은 실행과제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이다. 첨단화·기계화의 영향으로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제조업과 달리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 혁신형 기업과 서비스산업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수밖에 없어서다. 결국 고용절벽에서 탈출하려면 기업가 정신을 옭아매는 한국식 갈라파고스 규제를 해소하고, 실물경제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공공부문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의 일자리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다.

한편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는 이 같은 제안을 도출하기 위해 올 들어 세 차례 회의를 열었다. 위원은 대학교수, 벤처기업가, 연구기관 연구위원 등 9명으로 구성됐다. 토론에서 위원들은 가계부채·주택 문제와 같은 민생경제, 국가부채와 복지 비용 충당을 위해 손질이 필요한 재정과 세제 개혁, 계층 사다리 복구를 위한 양극화 해소 문제, 핀테크 발전에 따른 금융산업 선진화 등을 리셋 코리아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특별취재팀=김동호 논설위원, 김도년 기자, 이영민 인턴기자 d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