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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42·마지막회)-예수는 어떻게 부활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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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교회 안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 있고, 십자가에 매달린 곳이 있고, 십자가에서 내린 주검을 누인 곳도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예수가 묻혔다는 골고다의 동굴무덤도 그곳에 있었다.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무덤 말이다. 그 앞에 기다란 줄이 있었다. 순례객들은 줄지어 서서 예수의 부활, 그 초월적 신비의 공간을 목격하고자 했다. 나도 그 줄에 섰다.

예수의 무덤동굴 앞에는 순례객들의 기다란 줄이 있었다. 다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예수의 무덤동굴 앞에는 순례객들의 기다란 줄이 있었다. 다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밖에서는 동굴이 보이지 않았다. 성지 중의 성지. 동굴을 안고 조그만 경당 같은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 안에 동굴무덤이 있었다.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와야 그 다음 사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건축물 안으로 들어서니 캄캄했다. 어둠 속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었다.

무덤동굴을 품고서 작은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입구 위에는 부활한 예수의 성화가 걸려 있다.

무덤동굴을 품고서 작은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입구 위에는 부활한 예수의 성화가 걸려 있다.

공간은 무척 좁았다. 입구는 작고 낮았다. 그랬다. 2000년 전, 이곳에 예수의 주검이 있었다고 한다.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채 피를 흘렸을 예수의 시신이 싸늘히 식은 채 여기에 눕혀져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예수의 동굴무덤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입구는 낮고 좁았다. 머리를 한껏 숙여야만 들어갈 수가 있었다.

예수의 동굴무덤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입구는 낮고 좁았다. 머리를 한껏 숙여야만 들어갈 수가 있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토요일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질 무렵까지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금요일 오후 3시가 지나서 숨을 거두었다. 그렇다고 예수의 시신을 곧장 무덤으로 옮긴 건 아니었다. 사형수의 시신은 아무나 거둘 수가 없었다. 설령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제자들은 예수의 시신을 수습하고자 애를 썼다. 잠시 후 해가 질 무렵이면 안식일이 시작될 참이었다. 상황은 다급했다. 안식일이 시작되면 시신을 들고 이리저리 다닐 수도 없었다.

루벤스 작 ‘무덤에 묻히는 예수’.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루벤스 작 ‘무덤에 묻히는 예수’.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당시 예수의 제자 중에 아리마태아 출신인 요셉이 있었다. 그는 유대 의회의 의원이었다. 꽤 힘을 쓰는 인물이었다. 요셉은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 예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요청했다.(마가복음 15장42절) 빌라도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죽은 줄도 모르고 있었다. 십자가에 못박혀도 어떤 사형수는 고통 속에 1주일씩 버티기도 한다. 부하를 불러 예수의 죽음을 직접 확인한 빌라도는 시신을 내어주라고 명령했다. 요셉은 예수의 시신을 아마포로 감쌌다. 아마포(亞麻布)는 바람이 잘 통하는 여름용 직물이다. 리넨(Linen)으로도 부르는 ‘마’라고 보면 된다.

엘 그레코 작 ‘무덤에 묻히는 예수’.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안고 있고, 바닥에는 가시 면류관이 떨어져 있다.

엘 그레코 작 ‘무덤에 묻히는 예수’.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안고 있고, 바닥에는 가시 면류관이 떨어져 있다.

요셉은 예수의 시신을 동굴무덤으로 옮겼다. 아마도 자신과 부인을 위해 미리 마련해 둔 무덤이었지 싶다. 예수의 시신을 옮길 당시 그곳은 ‘비어 있는 무덤’이었다. 성경에는 ‘요셉의 새 무덤’이라고 기록돼 있다. 요셉은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 넣고서 큰 돌로 입구를 막았다. 그때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그러니 예수의 제자들 중에 무덤의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었다.

엘 그레코가 그린 또다른 작품 ‘무덤에 묻히는 예수’.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돌로 된 석관이 보인다.

엘 그레코가 그린 또다른 작품 ‘무덤에 묻히는 예수’.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돌로 된 석관이 보인다.

사실 ‘예수의 무덤이 진짜인가’는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성묘교회 안에 있는 동굴무덤이 예수의 무덤이라는 과학적·역사적 근거는 약하다.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채택한 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 황제의 어머니 헬레라는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 그녀는 그리스도교인이 된 뒤 유대 지역의 여러 성지를 순례했다. 그러다 지금의 성묘교회가 있는 자리를 둘러보다가 예수가 죽고 묻힌 곳이라 단정했다. 헬레나는 황제에게 청해 그곳에 교회를 세웠다. 그것이 성묘교회다. 2세기에는 그 자리에 그리스신 아프로디테를 모시는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성묘교회의 천장에 있는 돔을 내부에서 올려다 봤다. 이곳을 탈환하고자 유럽의 십자군과 이슬람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성묘교회의 천장에 있는 돔을 내부에서 올려다 봤다. 이곳을 탈환하고자 유럽의 십자군과 이슬람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대인 가이드는 “300년경에 이 일대에서 십자가 세 개가 발견됐다. 그 십자가들을 불치병에 걸린 여인에게 가져갔는데, 그 중 하나에 손을 대자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래서 헬레나는 그 십자가를 예수의 십자가라고 봤다”고 말했다. 이 주위를 골고다 언덕이라고 판단한 것도 이런 식이었다. 그게 예수 사후 300년쯤의 일이다. 그러니 역사적ㆍ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지금의 성묘교회를 ‘예수의 무덤’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 밖에도 영국인 고든 장군이 발굴한 ‘동산 무덤(Garden Tomb)’이라는 곳이 예수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동산 무덤’에도 예수의 시신을 안치했다는 공간이 있다. 예수가 묻힌 곳은 정말 어디일까.

예수의 시신을 염했다고 전해지는 돌판. 순례객들은 그 앞에 엎드려 기도를 했다.

예수의 시신을 염했다고 전해지는 돌판. 순례객들은 그 앞에 엎드려 기도를 했다.

성묘교회 안에 있는 동굴무덤을 나왔다. 아르메니안 교회의 성직자들이 성가를 부르며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시신을 눕혔다는 돌 위에는 순례객들이 손을 얹거나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다. 과연 어디일까. 예수가 못 박힌 곳,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곳.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한 초월적 역사의 공간 말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물음이 올라왔다. ‘예수의 죽음은 무엇을 뜻하나. 예수의 부활은 또 무엇을 의미하나.’ 그 물음이 우리를 겨누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다. 거기에 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가 여기에 묻히든, 저기에 묻히든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진정 어디일까.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예수가 묻힌 곳 말이다. 나는 그게 골고다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가 묻힌 곳, 그리고 되살아나는 곳. 그건 바로 ‘내 안’이다. 나의 가슴이다. 거기야말로 진정한 부활의 공간이다.

구스타브 도레 작 ‘무덤에 묻히는 예수’. 곁에서 여인들의 모습에서 슬픔이 묻어난다.

구스타브 도레 작 ‘무덤에 묻히는 예수’. 곁에서 여인들의 모습에서 슬픔이 묻어난다.

예수는 금요일 오후에 죽었다. 토요일은 안식일이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얼마나 초조했을까.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예수의 주검이 놓인 무덤을 얼마나 찾아가고 싶었을까.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안식일 계명을 지켰다. 토요일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았다. 요즘으로 따지면 일요일 아침이었다. 예수가 묻힌 위치를 아는 이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등이었다. 그들은 날이 밝자마자 향료를 가지고 예수의 무덤으로 달려갔다. 궁금했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섰을 때 무엇을 보았을까.

에두아르 마네 작 ‘죽은 예수님을 부축하는 두 천사’. 두 손과 두 발, 옆구리에 난 상처가 선명하다. 바닥의 바윗돌 밑으로 뱀이 기어간다.

에두아르 마네 작 ‘죽은 예수님을 부축하는 두 천사’. 두 손과 두 발, 옆구리에 난 상처가 선명하다. 바닥의 바윗돌 밑으로 뱀이 기어간다.

4복음서에는 그들이 목격한 무덤 속 광경이 기록돼 있다. 『마가복음』에는 무덤 속에 예수의 시신은 없고, 하얗고 긴 겉옷을 입은 한 젊은이가 앉아 있다고 적혀 있다. 그 젊은이는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고 말했다. 『마태복음』에는 무덤에 천사가 나타나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고 말했다. 『누가복음』에는 ‘눈 부시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 나타나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위의 세 복음서에는 마리아가 무덤에 도착하자마자 천사 혹은 천사로 보이는 ‘웬 젊은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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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뷔르낭(1850~1921) 작 ‘부활의 새벽에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성 요한’. 베드로의 시선의 사각의 그림 밖을 쳐다보고 있다. 작품 속에 예수의 모습을 담지 않고서도, 화가는 베드로의 시선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부활한 예수’를 그림 밖에 그려 놓았다. 오르세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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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가운데 가장 후대에 기록된 『요한복음』은 조금 다르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간 첫날 아침 어둑어둑할 때 무덤을 찾아갔다. 입구를 막은 돌은 이미 치워져 있었다. 텅 빈 무덤을 본 마리아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요한복음 20장2절)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달려갔다.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는 놓여 있었고, 예수의 얼굴을 덮었던 수건은 한쪽에 개어져 있었다. 제자들은 그걸 본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렘브란트 작 ‘부활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무덤에는 두 천사도 보인다.

렘브란트 작 ‘부활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무덤에는 두 천사도 보인다.

『요한복음』의 서술은 담담하다. 거기에는 ‘텅 빈 무덤’만 기록돼 있다.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이 무덤을 찾아갔을 때 천사를 만났다는 내용은 없다. 그들이 무덤에 갔을 때 그곳은 이미 텅 빈 상태였다고만 적혀 있다. 비어있는 무덤을 확인하고 제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막달라 마리아만 그곳에 남았다. 그녀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안을 봤더니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고 한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과 좀 다르다. 천사의 등장에 약간의 시차가 있다.

이탈리아의 빼어난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1488~1576) 작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부활한 그리스도’.

이탈리아의 빼어난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1488~1576) 작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부활한 그리스도’.

나는 궁금했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부활’을 어떻게 봤을까.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남긴 역사서에는 그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죽음 후 부활을 이미 믿고 있었다. 예수의 죽음과 상관없이 말이다. 예수가 죽기도 전에 말이다. 반면 유대 성전의 사제들인 사두개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현세적이었고, 사후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죽은 뒤에 육신이 땅에 묻히고, 원죄로 인해 일정한 기간 썩다가, 죽기 전의 몸과 동일한 원소로 이루어진 몸에 하느님이 생명을 불어넣는다’(요세푸스의 『음부론』)고 믿었다. 그게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의 상식적 사후관(死後觀)이었다.

성묘교회의 예수 무덤에 그려져 있는 ‘부활한 예수’의 그림.

성묘교회의 예수 무덤에 그려져 있는 ‘부활한 예수’의 그림.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몸이 일종의 종자(씨앗)라고 여겼다. 몸이 썩어서 흙과 섞인 뒤에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음성으로 인해 싹이 트면 다시 일어나 불멸의 존재가 된다고 생각했다. 마치 녹았다가 ‘재형성되기 위해 도공의 화로에 던져진 것처럼’ ’(요세푸스의 『음부론』)말이다. 그게 당시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는 유대인들의 시선이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은 그들에게 ‘예정된 일’이었을까. 더구나 예수는 생전에 스스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러니 예수는 신의 아들이다. 하늘나라 사람이다.

놀랍게도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천국은 이러이러하고, 천국 사람은 저러저러하다’는 나름의 그림과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천국은 잠도 없고, 슬픔도 없고, 타락도 없고, 걱정도 없는 곳이다. 시간으로 재는 낮과 밤도 없다. 해도 없고 달도 없다. (북극지방을) 회전하는 곰자리 별도 없고, 오리온자리 별도 없다. 또 천국 사람들은 바다 위를 쉽게 걸어다닌다.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죽을 일도 없다. 하늘에는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고,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찾기도 불가능하지 않게 된다. 땅은 어디나 경작이 가능하고, 수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는다. 동물도 새끼를 낳지 않고, 사람도 출생을 하지 않는다. 의인의 수는 항상 고정적이며,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 이게 예수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천국이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천국 사람들은 바다 위를 걸어다닌다고 믿었다. 그림은 물 위를 걷는 예수와 물에 빠진 베드로.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천국 사람들은 바다 위를 걸어다닌다고 믿었다. 그림은 물 위를 걷는 예수와 물에 빠진 베드로.

천국의 사람은 바다 위를 걷고, 천국의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믿었다. 갈릴리 호수 위를 걸었던 예수처럼 말이다.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예수의 부활은 논쟁거리다. 특히 예수의 부활이 ‘육신의 부활’인가, 아니면 ‘영혼의 부활’인가를 따질 때는 더욱 그렇다. 육신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나중에 천국에서 우리의 육신도 그렇게 부활할 것이라 믿는다.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그렇게 ‘육신의 부활’을 믿었다. 반면 예수의 부활이 ‘영혼의 부활’이라고 믿는 이들은 물음을 제기한다. “예수의 육신이 천 번, 만 번 되살아났다고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그건 예수의 부활일 뿐이지, 나의 부활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예수의 부활이 육신이 아닌 영혼의 부활이라면 어찌 될까. 모든 게 달라진다. 예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매순간 ‘부활의 가능성’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윌리엄 아돌프부게로 작 ‘무덤을 찾은 여인들’.

윌리엄 아돌프부게로 작 ‘무덤을 찾은 여인들’.

2000년 전의 예수, 지금의 예수, 2000년 후의 예수. 이 셋을 나는 달리 보지 않는다. 그들 예수는 모두 하나의 예수다. 왜 그럴까. 예수의 정체성은 육신이 아니라 속성에 있기 때문이다. 설령 골고다 언덕의 무덤 속에서 예수의 육신이 모조리 썩어버렸다고 하면 어떨까. 그럼 예수는 없어지는 걸까. 예수의 정체성도 덩달아 썩어버리는 걸까. 아니다. 예수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했다. 예수의 본질은 ‘신의 속성’이다. ‘신의 속성’은 소멸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더 정확하게 말한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복음 1장4~5절) 그렇다. 예수 안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이 바로 ‘신의 속성’이다. 그게 예수 안에 흐르는 생명이다. 그건 무너질 수가 없다. 소멸할 수도 없다. 그런 속성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우리들의 가슴, 그 아득한 내면에서 빛난다.

렘브란트 작 ‘엠마오의 저녁식사’.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탁에 앉아 있다. 제자들은 처음에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렘브란트 작 ‘엠마오의 저녁식사’.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탁에 앉아 있다. 제자들은 처음에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안타까운 건 우리가 품은 어둠이다. 그로 인해 빛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도 빛은 꺼진 적이 없다. 단 한 순간도 말이다. 다만 우리 안의 어둠이 빛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그렇게 빛을 모르는 어둠이 따진다. “예수의 부활은 육신의 부활인가, 아니면 영혼의 부활인가.” 빛은 꺼진 적이 없는데도 우리만 그렇게 따진다. 어둠만 그렇게 따진다.

예수가 죽은 뒤에 제자들을 이 동굴에 모여 있었다. 문을 잠갔는데도 그들 앞에 부활한 예수가 나타났다. 지금은 이곳에 작은 교회가 세워져 있다.

예수가 죽은 뒤에 제자들을 이 동굴에 모여 있었다. 문을 잠갔는데도 그들 앞에 부활한 예수가 나타났다. 지금은 이곳에 작은 교회가 세워져 있다.

예루살렘 성과 올리브 산의 중간쯤에 조그만 동굴이 하나 있었다. 들어가 보니 작은 경당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진 후에 제자들이 이 동굴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여기에 모여서 혹시 자신들을 잡으러 올지도 모르는 로마의 군인들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을까. 또한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숨진 자신들의 스승 예수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으로 괴로워하고 있지 않았을까. 제자들은 문을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방에 예수가 들어왔다.(요한복음 20장19절) 예수의 첫 마디는 이랬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Peace to you!)”.

로버트 쥔트의 1877년 작 ‘엠마오 길을 걸으시다’.

로버트 쥔트의 1877년 작 ‘엠마오 길을 걸으시다’.

부활하기 전에도, 부활한 뒤에도 예수는 변함이 없다. 똑같은 것을 제자들에게 건넸다. 다름 아닌 ‘평화’다. 두려움과 불안과 죄책감으로 파도치고 요동치는 제자들의 마음을 촤악 가라앉히는 한 마디. 그건 바로 ‘평화’다. 하느님 나라의 속성이다. 부활한 예수는 그 평화를 이루는 방법도 일러주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복음 20장23절)

그 자리에 예수의 제자 도마(토마스)는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말해도 그는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카라바지오 작 ‘도마의 불신’.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도마가 직접 상처를 만져보고 있다.

카라바지오 작 ‘도마의 불신’.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도마가 직접 상처를 만져보고 있다.

여드레가 지났다. 제자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는데 예수가 들어왔다. 첫 마디는 똑같았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한 예수는 도마에게 말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이 말을 들은 도마가 말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가 도마에게 말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헨드릭 테르브루그헨 작 ‘의심하는 도마’.

헨드릭 테르브루그헨 작 ‘의심하는 도마’.

비단 도마만 그럴까. 예수의 손에 뚫린 못 자국을 앞뒤로 살펴보고, 창에 찔렸던 옆구리에 깊숙이 손을 넣어보고 싶은 마음. 그게 비단 도마의 마음일까.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의 마음이다. 우리 안에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의심이다. ‘예수는 정말 부활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도마에게 예수는 말했다.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렇게 손을 넣고 나서야, 예수의 상처를 직접 만지고 나서야 도마는 의심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자신을 무너뜨렸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났던 동굴 옆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 그곳에도 교회가 세워져 있다. 마리아가 묻혔던 석관이다. 관 위에 세워진 그림에는 죽은 마리아 주위에 서 있는 사도들의 모습이 보인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났던 동굴 옆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 그곳에도 교회가 세워져 있다. 마리아가 묻혔던 석관이다. 관 위에 세워진 그림에는 죽은 마리아 주위에 서 있는 사도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늘 잡고 싶어한다. 붙들고 싶어한다. 거머쥐고 싶어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게 필요하다. 손에 잡히는 게 필요하다. 그렇게 꽉 거머쥘 때 우리는 비로소 “있다!”라고 말한다. “가졌다!”라고 말한다.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예수는 다르다. 그리스도는 다르다. 거머쥐면 거머쥘수록 멀어진다. 사라진다. 왜 그럴까. 거머쥐고자 하는 자체가 나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의심하고자 하는 자체가 나의 욕망인 까닭이다. 그런 욕망을 통해 예수를 만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예수는 말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보지 않게 된다.

부활한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에서 숯불을 피워놓고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임스 티소 작.

부활한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에서 숯불을 피워놓고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임스 티소 작.

부활한 예수는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갔다. 호숫가에 숯불을 피우고 배에서 내리는 제자들을 위해 물고기를 구웠다. 나는 거기서 ‘기다리는 예수’를 본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일상 속에서 모락모락 숯불을 피우며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 예수다. 그건 우리 안의 어둠, 그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신의 속성’이다.

올리브 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며 파노라마 사진을 찍었다. 거기에는 역사 속의 예수, 성경 속의 예수가 있었다.

올리브 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며 파노라마 사진을 찍었다. 거기에는 역사 속의 예수, 성경 속의 예수가 있었다.

<끝>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여러분의 성원이 큰 힘이 됐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초까지 연재한 ‘백성호의 현문우답/예수를 만나다’ 시리즈는 42회로 막을 내립니다.

3월부터는 ‘예수를 만나다’ 시리즈의 후속작으로 ‘붓다를 만나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예수에 이어 ‘붓다를 만나다’를 읽고 싶다”는 독자분들의 요청이 많았습니다.

인도를 배경으로 붓다의 생애가 펼쳐집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페이스북 주소 : www.facebook.com/baiks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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