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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반대에 '십자군'까지…NCCK "극우 목사·교인 자중"

중앙일보

입력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가 종교인들의 가세로 혼탁해지고 있다.

친박 연대체인 대통령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는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11차례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이 여는 집회에 일부 극우 성향의 개신교 성직자들과 교인들이 집단으로 가세하면서 '기도회'를 방불케 했다.

실제로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 '대각성 구국기도회'라는 이름으로 개신교인들의 종교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태극기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 기사의 방패를 본딴 피켓과 창, 투구를 쓴 십자군을 흉내낸 퍼포먼스를 벌이는 이도 있다. 대형 나무 십자가를 들고 행진을 벌이거나 성가대 복장을 하고 나와 탄핵에 찬성하는 이들을 '사탄의 무리'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심지어 왜 갖고 나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형 이스라엘 국기도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나타난 이스라엘 국기와 `십자군` 퍼포먼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일부 극우 개신교 성직자와 교인들에게 자중할 것을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나타난 이스라엘 국기와 `십자군` 퍼포먼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일부 극우 개신교 성직자와 교인들에게 자중할 것을 촉구했다.

일부 교회에선 목사가 설교를 이용해 탄핵 반대를 주장하며 태극기 집회에 나가도록 부추기는 사례도 있다. 서울에서 꽤 규모가 큰 교회에 다니는 A씨(38)는 "목사님이 예배 시간마다 탄핵이 잘못된 거라며 부추겨서 신앙에 대한 회의가 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일탈은 개신교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상황이 이렇자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교인들과 목사들의 자중을 촉구하고 나섰다.

NCCK는 7일 시국선언문을 통해 "관제 동원 시위에 극우적 행태를 보이는 일부 교인과 목사들이 앞장서서 부역하고 있는 것이 경악스럽다"며 "불의한 권력에 대한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망령되게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목사ㆍ성가대 가운 행렬과 탄핵반대 십자군 등이 집회에 등장해 권력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죽임을 선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NCCK는 "관제 태극기 시위에 등장하는 '계엄령 선포가 답이다', '군대여 일어나라', '촛불 반란군을 죽여라' 등의 구호는 우리 사회가 과연 자유민주주의 체제인지를 의심케 한다"며 "권력에 편승해 극우적 행태를 보이는 일부 교인과 목사들은 하나님과 민족 앞에 회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NCCK는 지난해 8월부터 7차례 시국선언을 통해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과 정부의 경제정책,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을 비판해왔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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