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향기

탄핵 또는 브람스

중앙일보

입력 2017.02.07 01:00

업데이트 2017.02.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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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감정표현에 관한 한 음악은 탁월하다. 아름다운 여신의 몸을 조각처럼 나타내지는 못한다. 강물에 일렁이는 아침 해의 인상을 회화처럼 표현할 수 없다. 사악함과 고결함이 뒤얽힌 삶의 파노라마를 소설처럼 묘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슬픔과 기쁨, 우울과 약동, 쾌활, 탄식, 놀라움을 그리는 데 있어서는 음악이 다른 예술에 앞선다.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이나 차이콥스키의 ‘비창교향곡’을 들어 보면 대번에 확인할 수 있다.

격렬한 감정과 엄격한 형식의 균형이 브람스의 매력
절제된 촛불마음과 냉정한 심판, 선거의 조화가 해법

그러나 감정을 그대로 토로하지 않는다. 음악에서 이따금 비명·통곡·웃음이 나오지만 잠깐이고 그나마 실제로 웃거나 울지 않는다. 성악가는 아무리 감정이 북받쳐도 무대 위에서 울지 않는다. 그러면 더 실감 나지 않겠나 싶지만 그런 표현은 오히려 객석을 어색하게 만든다. 음악은 형식을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형식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생일축하 노래는 작은 곡이지만 형식에 관련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형식들에 의해 이 노래가 존재한다. “이 곡은 ‘네 개의 단편’으로 돼 있다. 그 단편들은 ‘동기적으로 일관’되며 서로 ‘질문과 대답’의 ‘대구(對句)’를 이룬다. 네 개의 단편들은 각각 ‘기-승-전-결’의 역할을 한다.” 위에서 작은따옴표로 표시한 것들은 모두 음악형식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형식에 의해 존재하지만 거기에만 의존하면 음악이 건조해진다. 범작이 된다. 당연히 음악가들은 이런 따분함을 깨고 싶어 한다. 물론 아무렇게나 깰 수는 없다. 깨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때 시도하는 것이 감정의 분출이다. 이것이 적당하면 사람들은 더 감동을 느낀다. 격한 감정에 평정을 잃은 사람의 말이 때로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템포를 늘였다 당겼다 하고 강약을 과장해 표현하는 감정과다의 표현이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음악만큼이나 감정에 과도히 의존하는 음악은 별로다. 전자가 범작이라면 후자는 싸구려다. 그런 의미에서 수준 높은 감동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양 옆으로 낭떠러지가 있는 좁은 길을 걷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쪽으로 잘못 디디면 감정에 휩쓸리고 다른 쪽으로 너무 기울면 형식에 빠진다. 그 사이의 좁은 길을 가야만 싸구려도 아니고 건조하지도 않은 음악이 된다. 또 표현하려는 감정이 강력한 것일수록 그것을 다루는 형식도 엄밀해야 한다. 뒤집어서, 형식이 정교하고 완벽할수록 그 안에 더 깊고 격렬한 감정을 담아 표현할 수 있다.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면 나는 그런 좁은 길을 가는 아슬아슬함을 느낀다. 그의 음악은 매우 로맨틱하면서도 매우 엄격하다. 그 균형을 지키기 위해 브람스는 극도의 인내심을 가지고 감정을 다스리는데 그럴수록 감정은 더 농축되고 그 느낌은 더 진해진다. 안타까우면서도 황홀한 그의 음악의 비결이다.

분노를 따르자면, 쌓인 억울함을 갚자면 나라를 뒤집어엎고도 싶을 것이다. 오죽하면 “이게 나라냐”고 외칠까? 그러나 뒤집는다고 좋은 나라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잠시 속이 후련하겠지만 그 뒤에 감당하기 어려운 쓰라림을 맛봐야 할지 모른다. 이 감정을 함부로 터뜨려 소모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에너지로 삼기 위해서는 그 갈피를 낱낱이 헤쳐 정교하게 답을 찾아내는 형식적 실천이 필요하다. 처음 탄핵이라는 말이 충격이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국민의 분노를 담는 국가적 형식이었다.

지금까지 잘해 왔다고 생각한다. 쓰나미같이 성난 민심을 연약한 촛불로 표현하는 형식도, 그 에너지를 승화시킨 놀이문화도 좋았다. 아슬아슬하면서도 폭발하지 않고, 격을 갖추어 표현된 촛불마음은 오히려 더 많은 호소력을 가졌다. 또 특검·헌재·선거라는 더욱 엄격하고 더욱 냉정하고 더욱 강력한 형식이 국민의 열망을 담아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믿는다. 이 시대의 형식적 역량이 오늘의 분노와 열망을 담아낼 수 있으리라고. 대책 없는 감정의 발산이나 껍데기만의 형식이라는 양쪽 낭떠러지에 발을 헛디디지 않고 아슬아슬한 좁은 길을 잘 찾아가리라고. 그래서 우리의 자존심에 걸맞은 격이 있는 나라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희망하므로 믿는다. 브람스의 음악에서 힘을 얻으며.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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