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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숙청 광풍에 … 빨치산 아들 오금철, 이설주에게 뛰어가 경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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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뉴스분석
평양 권력지도가 바뀐다

지난해 12월 3일 강원도 원산의 갈마비행장에서 짙은 밤색 항공 점퍼 차림의 북한군 고위 장성이 사열대로 뛰어 올라가 김정은 노동위원장 부인 이설주에게 경례를 했다. 지난달 20일 북한이 공개한 기록영화(다큐멘터리)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인민군대사업을 현지에서 지도 주체105(2016).12’의 한 장면이었다. 행사는 한국 공군의 탑건 선발대회격인 ‘비행지휘 성원들의 전투비행술 경기대회’였다.

이, 군인에 경례받는 모습 첫 공개
김정은, 박성철 일가 등 잇따라 숙청
‘빨치산도 충성 안 하면 친다’ 본보기
최용해·김문경 등만 자리 지켜

이설주에게 경례한 주인공은 오금철 북한군 부총참모장이었다. 통일부 당국자는 5일 “이설주가 북한 군인에게 경례를 받는 모습이 공개된 건 처음”이라며 “이설주의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오금철은 김일성과 항일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 오백룡의 아들이다. ‘북한판 금수저’로 불리는 빨치산 가문의 북한군 고위 간부가 이설주에게 경례한 게 이례적이라는 뜻이었다.

오금철 북한군 부총참모장(공군 담당)이 지난해 12월 초 강원도 원산 비행장에서 열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 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 경기대회-2016’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앞줄 왼쪽)에게 경례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이 장면이 담긴 기록영화를 공개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오금철 북한군 부총참모장(공군 담당)이 지난해 12월 초 강원도 원산 비행장에서 열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 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 경기대회-2016’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앞줄 왼쪽)에게 경례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이 장면이 담긴 기록영화를 공개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사라진 빨치산의 후예들=기록영화 공개 나흘 뒤인 지난달 24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통일준비위원회 특강에서 “북한 엘리트층을 무서워하는 김정은이 빨치산 세력을 숙청 중”이라며 “(빨치산은) 권력투쟁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들어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숙청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본지 확인 결과 빨치산의 상징이었던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3형제(일훈, 일정, 일수)가 김정은 체제 출범 후 자리를 내놨다. <본지 1월 25일자 1면>

정보당국의 파악에 따르면 오진우 아들 3형제 외에도 빨치산 출신 전문섭 전 국가검열위원장의 사위로 김정일 시대에 승승장구하며 당 국제부장까지 맡았던 김영일이 현재 외무성 연구원으로 사실상 좌천당했다.

역시 빨치산인 정일룡 전 부수상의 사위로 노동당의 핵심 직책 중 하나인 총무 담당 비서를 역임한 태종수나 박성철 전 부주석의 사위인 문재철 대외문화연락위원장 대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정보당국은 오백룡의 아들이자 오금철의 동생인 오철산 해군사령부 정치위원의 행적도 관심 깊게 보고 있다.

두 형제 중 오금철은 군 핵심부까지 진출한 반면 오철산은 최근 사라진 정황이 포착돼서다.

현재 노동당 부부장과 내각 부상(차관) 이상의 권력 핵심인사 중 최용해 국무위 부위원장과 오금철 부총참모장, 김문경 당 국제부 부부장 정도를 제외하곤 상당수의 빨치산 후손들이 자리를 내놓거나 한직으로 물러난 상태다. 최용해와 김문경은 각각 김일성의 빨치산 시절 오른팔과 왼팔 역할을 했던 최현과 김책의 아들 및 손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빨치산을 체제의 근간이라고 주장해 온 만큼 최소한의 상징성만 남겨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목받는 이설주 권력=김정은의 빨치산 축출과 관련해선 자신의 콤플렉스와 경고성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사회에서는 빨치산이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데 김정은의 경우 재포(재일교포)의 아들이어서 콤플렉스도 있고, 잠재적으로 자신을 위협할 세력으로 보기 때문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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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김정은이 빨치산 고위 간부들이나 자신의 친인척도 본인에게 (충성)하지 않거나 과오를 범할 경우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본보기 정치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이렇다 보니 북한 고위 간부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설주에게까지 경례하고, 동영상을 편집하는 선전선동부도 이설주를 의식하고 편집·방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 교수는 “북한은 지도자의 얼굴 표정이나 악수하는 대상 등을 선정해 방송에 내보내는 선전의 나라”라며 “이설주가 경례받는 모습을 내보낸 건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과 이설주를 의식한 일종의 교과서를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7월 김정은의 부인으로 소개된 이설주는 그동안 65차례의 공개활동을 펼쳤다. 이 중 군 관련한 활동은 3차례였고, 모두 공군과 관련된 것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이설주의 아버지가 예비역 공군 장성으로 알고 있다”며 “그간 문화와 복지 관련한 활동을 주로 했지만 공군 행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정용수·전수진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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