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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부처 협의는커녕 이견 노출 … 컨트롤타워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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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인호 차관보

이인호 차관보

“Winter is coming(겨울이 오고 있다).”

전문가들의 통상조직 제안
차관보급 조직, 협조 못 끌어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센 보호무역주의 강공에 대해 통상 전문가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보호무역 확대는 무역의존도가 큰 한국에 엄동설한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통상전쟁’을 앞두고 전열을 정비한 미국 등 무역 대국과 달리 상대적 약자인 한국은 전략 부재와 잡음만 노출하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근 “급변하는 국제통상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각 부처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이와 거리가 멀다. 대표적인 게 미국이 한국에 대해 불만을 가진 대(對)미 경상수지 흑자에 대한 대응 방법의 혼선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2017년 대외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됐던 ‘미국산 부품 수입 확대’ 내용이 당일 대외경제장관회의 직후 삭제됐다. 기재부는 대미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이기 위해 미국산 부품의 수입을 늘린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곧바로 “검토한 바 없고 향후 계획도 미정”이라는 보도 해명자료를 냈다.

기재부는 미국에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산업부는 “협상 전에는 패를 숨겨야 한다”는 견해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시각차가 외부에 노출됐다는 게 문제다. 기재부는 대외경제 정책을 총괄한다. 반면 산업부는 통상 정책을 맡고 있다. 산업부에서 통상 정책 실무는 1급인 이인호 차관보가 챙긴다. 컨트롤타워가 작동할 리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우선 쪼그라든 통상 조직의 확대 개편을 주장한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상 기능이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넘어가며 기존 장관급 조직이 차관보 소관 ‘실(室) 단위’로 축소됐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는 “산업부가 통상교섭과 대책까지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며 “산업부 장관이 통상을 챙기면 된다”고 설명했다.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FTA를 체결한 만큼 ‘사후 관리’만 하면 된다는 판단이었다.

"협상력 강한 통상전문가를 장관급으로”

이에 대해 급변하는 통상 흐름을 간과한 조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통상 기능을 어디에 두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통상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서 통상 조직은 장관급 이상으로 유지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통상이 산업부 내의 조직으로 축소되며 후 순위로 밀렸다”며 “관계부처 간 협의를 이끌어내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에는 차관보급 조직으론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며 정부 조직개편 논의가 시작된 가운데 향후 통상 조직은 더 큰 역할과 기능을 담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FTA 중심이던 과거와 달리 현재 통상 현안은 자국 우선주의와 맞물려 훨씬 복잡하다”면서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선 의견이 나뉜다. 성 교수는 “경제부처가 총괄하고 외교부가 협력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산업부 내 조직으로 남으면 앞으로도 통상이 산업육성, 에너지 등에 밀려 2차 업무가 될 것”이라며 “통상을 외교부로 이관해 장관급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 독립기구 설립 주장도 나온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독립기구를 만들고 강한 협상력을 가진 통상전문가를 수장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형태의 개편이든 물리적 통합에 그쳐 ‘한 지붕 두 가족’이 되는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이사장은 “통상교섭본부 시절에도 외교와 통상 라인 간 벽이 있었고 현재 산업부도 마찬가지”라며 “부처 내의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지 않으면 조직 개편은 소용없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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