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로봇 월-E는 어떻게 따뜻한 마음 갖게 됐을까

일러스트=오지환
지난번에 이어 SF애니메이션 ‘월-E ’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월-E는 공해와 쓰레기로 더러워진 지구를 청소하기 위해 남겨진 청소 로봇이죠. 원래 여러 대가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고장 나거나 부서져 멈추어 버리고 이제는 단 한 대의 청소 로봇이 남아 매일매일 청소에 전념하고 있죠. 황폐한 지구는 모래 먼지와 오염 물질로 가득하기 때문에 로봇조차 고장 나기 쉬운 환경입니다. 그때마다 월-E는 멈추어 버린 동료 로봇의 부품으로 갈아 끼면서 계속 활동해 왔습니다.
월-E의 일상은 청소부의 생활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태양에너지로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도시로 향합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쓰레기를 몸에 집어넣고 압축기로 네모나게 만들어 모아두죠. 월-E가 활동하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우주로 떠난 우주선의 선장이 여러 번 바뀐 것을 보면 수백 년은 족히 지났겠죠), 모아둔 쓰레기가 여기저기 빌딩보다 높게 쌓여있는 것으로 세월을 짐작해 볼 순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월-E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뭔가 신기한 물건을 주워옵니다. 나름대로 정리하는 비결이 있는 건지 물건마다 제각기 다른 칸에 넣으면서 이따금 구경하기도 하죠.
월-E의 취미는 수집만이 아닙니다. 월-E는 ‘할(‘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란 영화 속 컴퓨터에서 따온 이름이랍니다)’이라는 이름의 바퀴벌레를 반려동물로 기르면서 하루하루를 보람 있게 지냅니다. 이런 그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친구가 없다는 거죠. 밤이면 영화를 보며 함께 춤출 사람이 있길 바라지만, 손을 맞잡을 상대가 없습니다. 동료들은 이미 오래전에 멈춰 버렸고 지구상에 오직 혼자뿐이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우주에서 한 대의 로봇이 내려옵니다. 이브라는 이름의 그 로봇은 공사장 인부처럼 거칠게 생긴 월-E와 달리 매끈한 달걀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매끈한 생김새와는 달리 월-E 정도는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지구 환경을 탐사하고 식물을 찾으러 온 로봇 이브는 월-E와 달리 한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식물을 찾아서 떠나야 하거든요. 하지만 처음 친구를 만난 월-E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죠. 월-E의 마음은 이브에게 통할 수 있을까요?
본래 로봇이 인간의 도구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월-E는 참 신기한 로봇입니다. 겉모습이야 어떻든 로봇은 TV나 냉장고, 밥솥 같은 가전제품과 별로 다를 게 없지요. 설사 인공지능을 도입했다고 해도 로봇은 원하는 목적을 위하여 활동하는 제품일 뿐입니다. 하지만 월-E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모으고 친구를 찾으며, 석양을 바라보며 기뻐하죠. 월-E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여유를 즐기며 친구와 우정을 나눕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월-E가 경험을 쌓고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내린 명령대로만 활동했습니다. ‘쓰레기를 치워’라는 명령에 따라 쓰레기를 발견하면 치우는 거죠. 하지만 그게 쓰레기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분명히 처음에는 쓰레기가 뭔지 일일이 입력해두고 그대로 작동하게 했겠죠. 하지만 세상에는 쓰레기도, 쓰레기가 아닌 물건도 엄청나게 많죠. 땅에 떨어졌다고 해서 모두 쓰레기는 아닙니다. 식탁 위에 있다 해도, 사실 쓰레기일지도 모르고요. 이렇듯 청소를 잘하려면 쓰레기가 뭔지를 구분하고 배우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정해진 쓰레기만 모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월-E는 쓰레기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쓰레기일 수 있고,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도 중요한 물건일 수 있다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겠죠. 무언가를 배우면 다시금 그 정보를 이용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법이죠. 마치 알파고처럼 말입니다. 바둑을 어떻게 두는지 배우고, 바둑을 두면서 점차 강해지는 겁니다. 월-E는 오랜 시간 동안 활동하면서 인간 세상의 여러 가지를 보고 배웠고, 이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뭔가를 배우게 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가령 너무 많은 것을 배운 나머지 인간에게 반항하고 배신하고 세상을 위협하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때때로 나쁜 사람에게 속듯이, 인간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는 로봇이 도리어 나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죠. 인간을 보호하려고 만든 인공지능 오토가 ‘지구로 돌아오지 마’라는 명령 때문에 사람들을 방해하고 위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면 스스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더 많은 것을 배울수록 진정으로 중요하고 좋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도 있겠죠. 월-E는 청소 로봇이지만, 바퀴벌레를 반려동물로 기릅니다. ‘바퀴벌레는 지저분한 벌레’라는 상식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죠. 오랜 기간 세상을 경험해온 월-E의 마음이 따뜻하고 열려 있기 때문에, 월-E는 인간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 관장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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