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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오늘 밤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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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영종
이영종 기자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통일문화연구소장

워싱턴DC에서 남서쪽으로 60㎞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콴티코(Quantico)는 미국 해병대의 요람이다. 버지니아주 프린스윌리엄 카운티에 자리 잡은 이곳에 20여만 명 병력을 지휘하는 해병사령부와 해병대학·훈련소 등이 집결해 있다. 콴티코를 지배하는 건 ‘늘 충성을 다한다(Always Faithful)’는 의미의 라틴어 ‘셈페르 피델리스(Semper Fidelis)’다. 올해로 창설 242주년을 맞는 미 해병대의 정신이 응축된 모토이기도 하다.

뼛속까지 해병인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미더운 리더십
국익에 목숨 건 소신파 진짜 군인 왜 우리에겐 없나

어제 서울에 온 미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를 키워낸 것도 콴티코다. 그는 자원 입대한 해병대에서 45년간 복무하고 2013년 퇴역한 예비역 대장이다. 매티스는 평소 입버릇처럼 “나는 해병대와 결혼했다”고 말한다. 실제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다. 84년 역사를 자랑하는 잡지 에스콰이어가 그를 표지모델로 내세우며 수도승처럼 생활하는 장군이란 뜻의 ‘General Monk’를 제목 삼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매티스와 친분이 있는 한 인사는 “그의 방에는 작은 침대와 성경 하나만 놓여 있어 4성 장군의 숙소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뼛속부터 해병인 매티스의 부하 사랑은 끔찍할 정도로 각별하다. 휴가를 얻으면 아프간 전쟁 등에서 전사한 해병 병사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 위로했다. 결손가정이나 히스패닉 등 소외계층 전사자의 가족에게 “당신 아들은 정말 훌륭한 군인이었다. 우리 해병은 그의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눈물짓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통의 리더십과 검박한 생활로 매티스는 해병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지휘관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런 평판은 미 의회가 ‘군인은 전역 7년이 지나야 국방장관이 될 수 있다’는 규정을 고집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제26대 국방장관 매티스의 인준에 반대표를 던진 건 상원의원 100명 중 단 한 명이었다.

이런 면모는 우리에게 낯설다. ‘미친개(Mad Dog)’란 그의 별명이 너무 강렬하게 뇌리를 선점한 때문이다. 일부 막말 논란이나 작전과정에서의 과격한 결정은 이런 이미지를 굳혀 버렸다. 하지만 이 별명을 얻은 건 2003년 이라크 격전지 팔루자에서 그의 해병 1사단이 과감한 작전으로 용맹을 떨치면서다. 미국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거나 미군 병사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미칠 줄 아는’ 지휘관이란 얘기다. 그야말로 ‘아메리카 퍼스트’다.

눈길을 서울로 돌려 우리 군을 바라보면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대한민국 군 수뇌부와 지휘관들도 이런 각오와 채비를 하고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다.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위협하며 “남조선 것들을 쓸어 버리겠다”고 난리법석을 떠는데도 우리 군의 대응은 물러터져 보인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논란이 나라를 뒤흔드는데도 군 핵심부의 목소리는 실종됐다. 7년 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로 젊은 병사들이 숨져 갔을 때도 그랬다. 오히려 ‘확전 우려’ 운운하며 머뭇거렸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수호해야 할 군은 남북 정상회담 테이블에 공동어로 문제가 오르자 ‘평화를 지킬 좋은 방안’이라며 비위를 맞췄다. ‘우리에겐 왜 소신 있는 장군이 없는가’라는 한탄에 군 관계자들은 “그런 사람들은 이미 진급 심사에서 다 탈락했다”고 답한다. 참 아픈 고백이다.

‘콴티코의 영웅’ 매티스 국방장관은 방한 첫 일정으로 용산 한미연합사로 달려가 장병들을 만났다. 주한미군은 오래전부터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을 전투구호로 삼았다. 오늘 밤에라도, 그리고 언제든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다. 군의 핵심가치인 ‘항재전장(恒在戰場·언제든 전쟁터에 있음)’의 미국판인 셈이다. 지구상 유일 분단국이자 정전(停戰) 상태인 대한민국 군이 가장 체질화해야 할 개념이기도 하다.

매티스 장관은 방한 때마다 인사동에서 한국 전통 목각인형을 샀다고 한다.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방문길엔 예전 같은 여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을 중심으로 대북 선제타격 불사론까지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달고 있는 별을 모두 합치면 600개가 넘는다는 우리 군 수뇌부의 생각이 문득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우리는 정말 오늘 밤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