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득 제자리인데, 1월 물가 2% 뛰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4년3개월만에 2%대 상승 기록
유류·농수산물값 상승이 원인
정부선 ‘일시적 상승’ 진단하지만
냉각된 소비 더 얼어붙을까 걱정

4년3개월 만의 첫 2%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기록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012년 10월 2.1%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줄곧 0~1%대를 오르내렸다. 꾸준한 저물가 국면이었다.

2.0%에 이르는 1월 상승률은 오랜만에 찾아온 ‘진객’이다. ‘장바구니 물가’로 지칭되는 생활물가지수 상승률도 2.4%로, 2012년 2월의 2.5% 이후 4년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침체 국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고물가다. 원래 물가 상승은 경제 성장과 동행한다. 경제 성장으로 가계와 기업의 소득이 늘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자연스럽게 물가가 상승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는 5분기 연속 0%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침체기에 빠져있다. 가구당 소득증가율 역시 2015년 3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5분기 연속 0%대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소득은 같은 기간 중 3개 분기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면 경기침체 국면에서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국면이다.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1월의 고물가 현상이 지속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기획재정부는 ‘기름값 기저효과’ 등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1월 석유류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나 상승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절대 가격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지난해 1월 석유류 가격이 -3.4% 하락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높아진 측면이 있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골이 깊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봉우리가 더 높아 보였다는 얘기다.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유가와 함께 1월 물가 상승을 견인한 농축수산물의 가격 강세 현상도 오래 가진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 예측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의한 산란계 살처분의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1월 계란 가격은 61.9%나 올랐고, 당근(125.3%)·무(113.0%)·배추(78.8%) 등 채소류 가격 폭등 현상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채소류 재배면적 증가, 계란 수입물량 확대 등에 따라 점차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품목은 소비자물가지수 산정시 반영되는 가중치가 높지 않아 전체적인 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은 편이다.

실제 이런 일시적 요인들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큰 변화가 없다. 1월 농산물·석유류 제외 물가지수가 1.5%, 식료품에너지 제외 물가지수가 1.7% 상승했는데 이는 지난해 평균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유수영 기재부 물가정책과장은 “향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대 후반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그렇다고 일부 품목의 물가 급등에 대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서민 생계와 직결되는 식료품과 공공요금의 가격이 오르면 가계소비가 더 얼어붙을 수 있다”며 “정부가 관리 가능한 공공요금에 대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인상 억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들어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요금을 올리면서 1월에 하수도료(11.8%), 교통비(3.8%) 등의 물가가 상당폭 올랐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장바구니 물가 급등은 생활비 증가→임금인상 요구 증가→투자 위축→고용 악화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며 “농축수산품 수입자유화 폭을 확대하거나 유통 현대화를 추진하는 등 장바구니 물가 급등에 대한 특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생활물가 상승의 심각성은 인식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가진 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지난달 발표한 물가안정대책 추진상황을 물가관계 차관회의를 통해 매주 점검하고, 강세를 보이는 농축산물 등의 설 이후 수급불안이 확대되지 않도록 집중 관리하겠다”라고 말했다.

세종=박진석·이승호 기자 kaila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