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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두근두근 인터뷰] ‘이태원 살인사건’ 김지은 PD “범인 처벌까지 20년…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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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대법원이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 패터슨에 대해 징역 20년의 확정 판결을 내렸다. 1997년 이태원의 어느 화장실에서 20대 남성이 누군가의 칼에 무참하게 찔려 숨졌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건 에드워드와 패터슨 두 명. 둘은 서로를 범인이라고 지목했다. 검찰은 상대적으로 덩치가 컸던 에드워드만을 단독 기소했으나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로 풀려났고, 미국 시민권자인 패터슨은 1999년 출국 금지가 잠시 풀린 틈을 타 미국으로 가버렸다. 둘 중 한명이 범인인 건 확실하다고 둘이 증언한 상황. 그러나 하나가 무죄라면 나머지 한 명이 유죄라는 뜻이다. 하지만 패터슨에 대한 추가 기소나 국내 송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12년. 이 사건은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재조명받았다. 하지만 패터슨을 국내에 송환할 수 있었던 것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로 표기)의 보도가 결정적이었다. 검찰은 미국으로 떠난 패터슨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범죄인 소환 요청을 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팀은 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패터슨을 찾는 데 성공했다.

2009년 12월 19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이태원 살인사건 12년의 추적’편. [사진=’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SBS]

2009년 12월 19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 이태원 살인사건 12년의 추적’편. [사진=’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SBS]

행적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패터슨과 직접 만나 인터뷰까지 해낸 '그알'의 보도는 그를 국내에 송환해야 한다는 여론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검찰은 재수사를 시작해 2011년 패터슨을 살인혐의로 기소했고, 사건이 일어난지 20년만에 진범은 처벌을 받게 됐다.

TONG 청소년 기자들이 ‘그것이 알고 싶다 - 이태원 살인사건, 12년의 추적’을 연출한 김지은 PD를 만나 당시의 취재 뒷이야기를 들었다. 김 PD는 '그알'의 연출에 이어 '짝' 등의 프로그램을 맡았고, 지금은 제작 일선에서는 잠시 떠나 편성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 2009년 당시 사건 발생 12년 만에 ‘이태원 살인사건’을 다뤘는데요. 계기가 있었나요.
"영화와 국정감사 등 여러 곳에서 이슈가 되긴 했죠. 사실 영화는 검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시각이라 한계가 있었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1998년과 1999년에 먼저 다뤘던 사건이기 때문에 제대로 해결될 때까지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한국 검사나 법무부는 범죄자 송환 요청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보이는 반면, 미국에서 한국에게 범죄자 송환을 요청하자 TF까지 꾸려서 잡아 보낼 정도로 협조적이더라고요. 대체 이 부조리는 뭘까, 문제의식을 느꼈죠.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 조중필씨 어머니의 의지였어요."

-어머니의 의지요?
"PD로서는 새로운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면 방송을 하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거든요. 하지만 피해자 어머니를 만나보곤 결심을 했죠. 진범을 잡지 못하면 눈을 못 감겠다고 할 정도로 의지가 강하셨어요. 직접 미국의 사립탐정까지 고용해 자료를 확보하셨더라고요. 그런 억울한 부모님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물론 다시 다룬다고 진범을 잡을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죠. 하지만 검찰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사법공조 제도가 있다 해도 현지 경찰이 체포하려면 미국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미국을 다 뒤져서 찾아야 하느냐'는 식으로 나오니 오기가 생기더군요. '못 찾는다고? 그래? 그럼 우리가 찾아볼까?' 하고요."

지난 1월 25일,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 아서 존 패터슨에게 징역 20년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선고됐다. [사진=중앙포토]

지난 1월 25일,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 아서 존 패터슨에게 징역 20년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선고됐다. [사진=중앙포토]

-어떻게 패터슨을 찾을 수 있었는지.
"운이 좋았어요. 미국에선 합법인 사설탐정을 고용했는데, 주거·범죄 기록 등 몇 가지 단서로 패터슨의 당시 주소지를 추적하는데에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더라고요. 다행히 방송이 나가기 하루 전에 패터슨과 그 어머니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 테이프를 손에 넣을 수 있었죠. 참고로 미국에 제가 직접 간 건 아니었어요. 현지 코디네이터를 활용했죠."

-패터슨을 찾아냈을 때의 느낌은요.
"여러모로 운이 좋았지만, 마음만 먹었다면 검찰도 10년 전에 충분히 찾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검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조중필씨 어머니를 만나주지 않았는데, 이후에 저희가 사설탐정에게 받은 자료 등을 보충해서 전해드리고 다시 민원실을 통해 사건을 접수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수 있었어요."

- 공권력이 해결해야할 일을 언론이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1998년과 99년에 선배들이 하셨고, 제가 2009년, 2015년 패터슨이 송환됐을 때 다른 피디가 다시 한 번 다뤘어요. 초창기에 선배들이 취재를 잘 해주셨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SBS 카메라 앞에서 용의자들이 살인사건 현장에서 재연을 했는데, 당시 그들의 진술이 경찰 조사 자료는 아니지만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발달한 과학 기술과 범죄 심리학자 등의 전문가 자문을 통해 얼마나 합리적으로 패터슨을 범인으로 의심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었죠. 방송이 할 수 있는 건 제대로 된 해결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와 그에 대한 시청자의 공감까지라고 생각해요. 이후의 법적 처리는 국가기관이 해줘야 하는 거고요. 다만, 방송 후에도 관심이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09년 방송에서 김상중씨의 마지막 멘트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였어요."

- 20년 만에 ‘이태원 살인사건’이 종결됐는데 소감은요.
"대법원이 징역 20년형 확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혼자 사무실에서 두 손 들고 환호했죠. 이걸로 끝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죠. ‘이태원 살인사건’은 어찌 보면 사법부가 특별하게 관심을 기울인 사례거든요. 피해자의 유족이 이렇게까지 힘을 쏟지 못하는 다른 사건들도 사법 절차에 따라 잘 해결되길 바라요."

-그런데 검찰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제가 취재할 당시 담당 검사가 '내가 맡은 사건이 이것 말고도 100가지다. 이 건은 제대로 처리해야 송환이 가능한데, 방송 때문에 급하게 하게 생겼다. 그러다 혹시 잘못 되면 책임질 거냐'고 압박하더라요. 방송 때문에 급하게 했을지는 몰라도 결국 검찰이 제대로 처리했으니 송환도 이뤄졌고, 대법원에서도 검찰의 기소 내용을 받아들인 거라고 생각해요."

- 아이템을 선별할 때 고민이 될 것 같은데.
"방송을 통해서라도 해결돼야 하는 문제이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 있어요. 선배들이 저한테 해줬던 조언은 '이 사건을 해결하거나 아이템을 다룸으로써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져야 할 만큼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였어요. 진공상태처럼 무결한 사건은 없으니까요.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는 희미하든 또렷하든 다른 누군가의 기억과 상처를 끄집어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점을 가장 많이 고민해요."

-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현재는 ‘그것이 알고 싶다’가 거의 유일한데요. 장수하는 비결은.
"제가 '그알'을 오래 한 것도 아니고 떠난지도 오래 돼 뭐라 말하긴 뭣하지만, '그알'의 큰 축은 '미스터리'였어요. 이야기의 완결성과 스토리텔링을 중시하죠. 살인·실종·미스터리 같은 사건을 많이 다루기도 하고,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노하우가 있어서 시청자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았던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김상중씨가 진행자 역할을 잘 해주신 것도 프로그램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PD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뭘까요.
"훌륭한 요리사가 되려면 무엇이 맛있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나만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맛있어하는 게 무엇인지, 그걸 왜 좋아하는지 알아야 하죠. 프로그램도 똑같아요. 대중이 무엇을 재밌게 보는지 자신이 스스로 체감해야 해요."

- 피디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왜 피디가 하고 싶은지 고민해 보세요. 피디는 아무래도 더 좋은 프로그램을 내놓고 싶은 장인정신 같은 게 있어서, 인원이 보충된다 하더라도 과로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걸 감안하더라도 해야겠다면 하는 거죠. 요즘엔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으려는 분위기가 있어서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요. 선배 입장에서 보기에 이제 막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거더라고요.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뭘 해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문수연·이도경·안혜란·정수진·장단비·김나영·정은서·황보가영·최다혜·이수연·김정민 TONG 청소년 기자
글=김재영 프리랜서 기자
도움=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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