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볼수록 치명적인… '공조' 유해진

중앙일보

입력 2017.02.01 10:23

업데이트 2017.02.01 17:33

‘공조’의 강진태는 범인을 쫓다가도 딸(박민하)에게서 전화가 오면 사족을 못 쓰는 ‘딸바보’다. 남북 공조 수사 협조라는 중대 임무를 제안받을 때도 그는 잠옷 바람으로 분리수거하고 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생활 연기로 배꼽 잡게 하는 건 유해진(47)의 장기 아니던가.

커피를 권하자 “막걸리가 좋다”고 능청스레 농을 치는 이 남자. 그런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색다른 면모를 발산한다. “에곤 쉴레(1890~1918) 그림의 본능적이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좋아해요. 예전에는 추상화도 종종 그렸는데….” 알수록 매력적인 배우, 유해진이다.

사진=전소윤(STUDIO 706)

사진=전소윤(STUDIO 706)

-화보 촬영할 때 보니, 의상 취향이 확고하더라.
 “말로 딱 설명하긴 힘든데, 선호하는 스타일은 있다. 이를테면 재킷은 짧은 게 좋다. 긴 코트를 입으면 왠지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뭔가에 갇힌 듯한 느낌이 싫어서 웬만하면 넥타이는 안 맨다.”
-‘공조’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진태는 어떤 옷이 어울리는 사람 같던가.
“처음엔 진태라기보다 ‘형사’란 직업에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막연히 고민했다. 그런데 촬영이 시작되기 전 카센터에 갔다가 우연히 형사 한 분을 만났다. 수사를 위해 CCTV를 확인하러 오셨는데, 흔히 입는 편한 점퍼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와, 유해진씨!’ 하면서 소탈하게 인사하던 그 모습을, 진태를 연기하는 내내 자주 떠올렸다.”
-진태가 옆집 아저씨처럼 넉살 좋고 느긋한 형사라면, 북한 형사 림철령은 살벌할 만큼 진지하게 수사에 목숨 건다.
 “‘공조’에 흥미를 느낀 이유다. 남북 형사가 (서로 의심하느라) 공조 아닌 공조를 하다 진정한 공조 수사에 이르는 흐름이 신선했다. 어찌 됐건 한 핏줄이잖나. 이념을 넘어 사람 대 사람의 휴먼 드라마를 그린 점이 좋았다.”
-현빈과는 이 영화로 처음 함께했다. 극 중 철령 못지않게 과묵한 배우라, 가까워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진 않았나.
 “촬영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술자리가 있었다. 진하게 마셨는데, 빈이가 우리 집에서 한잔 더하자고 했다. 아직 서로 어색할 때였거든. (현빈) 매니저도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며 놀라더라. 그날 둘이 술을 무진장 먹었다. 이튿날 근처 식당에서 찌개로 해장하는데, 밥을 되게 잘 먹더라(웃음). 내게 먼저 다가와 줘서, 촬영 초반부터 수월하게 호흡을 맞췄다. 가끔 우스갯소리도 하는데, 나만큼 썰렁하다. 껄껄껄.”
사진=전소윤(STUDIO 706)

사진=전소윤(STUDIO 706)

현빈은 욕심부릴 줄 아는 배우다. ‘공조’에 대규모
액션신이 많잖나. 액션 연기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웬만한 촬영은 직접 해내려고 하더라.
너무 위험한 장면들은 내가 말렸을 정도다.
육체에 피로도가 쌓이면 나이 들어서 힘드니까.
적게 탈 나고, 오래 연기하자고 말이다.
-유해진-

-진태는 형사로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조차 아내(장영남)와 딸, 처제(임윤아)에게 둘러싸여 있다. 철령이 그의 집에 묵으면서, 진태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남북한 형사의 심각한 공조 수사가 맞물리는 상황들이 재미있더라.
 “진태처럼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살았으면 내 생활이었을 모습이다. 전작 ‘극비수사’(2015, 곽경택 감독)도 그렇고, 아빠 역이 슬슬 들어온다. 작품마다 극 중 내 아이가 한두 살씩 자라는 게 느껴진다. 나이가 드니까 나 역시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약간 더 깊어지더라.”
-‘공조’는 가족 캐스팅부터 각별했다고.
 “딸내미로 나온 (박)민하는 ‘감기’(2013, 김성수 감독)도 같이했던 아역 배우다. 아내 역의 장영남은 극단 목화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다. 알고 지낸 지 20년도 넘었나. 워낙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고 잘한다. 몇 년 전 그 친구가 출연한 극단 골목길의 연극을 보러 갔는데, 와, 진짜 (배우로서 부러워) 죽는 줄 알았다. 어떻게 저런 감정들을 잡아내는지. 그런데도 자신의 연기를 의심하기에 나중에는 싹 성질이 나서 ‘본인이 잘하는 걸 알면서, 그만 좀 하라’고 핀잔줬다. 껄껄. ‘극비수사’에도 같이 출연했잖나. 함께 연기하면서 진짜 집사람처럼 편했다.”
-극 중 “(진태의 매력이) 치명적”이라는 아내의 대사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졌다.

“아이고, 웃자고 넣은 대사지(웃음). 생활 속 디테일한 애드리브도 다양하게 짰다. 다 같이 정말 재밌게 찍어서, 극 중에서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올라왔다.”
-‘공조’ 촬영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울산대교에서 찍은 클라이맥스 액션신. 감정적으로나 볼거리나, 이 영화가 가진 많은 부분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철령과 진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도 그렇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뻐근함’이라 해야 할까. 남북한이 처한 어쩔 수 없는 현실과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정이 맞물린 그 이상한 감정들….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다.”
스크린에 데뷔한 지 올해로 20주년이다. ‘뻐근함’을 느끼게 해 준 좋은 인연이 많았나.
 “그런 것들을 고민하게 되는 나이인 것 같다. 누가 내 곁에 있어 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를 요즘도 만나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살아가는 게 참 쉽지 않음을 매번 느낀다. 이제 다들 퇴직에 대해서도 생각할 나이고.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다. 오래가는 배우들은 한정돼 있잖나. 창피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 연기하고 싶다. 그게 내 희망이다. 자기 자리에서 내 몫을 다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지금 대한민국의 시국도 그러지 못해서 생긴 문제니까.”
-매년 다작을 하다가, 지난해에는 주연작 ‘럭키’(이계벽 감독) 한 편으로 진짜 ‘럭키한’ 흥행(관객 697만 명 돌파)을 거뒀다. 올해는 ‘공조’에 이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택시운전사 역으로 출연한 ‘택시운전사’(장훈 감독)가 개봉할 예정인데.
“지난해에는 연초에 좋은 꿈을 꿨다. 그 덕분인지, 기대하지 못한 고마운 일들이 있었다. 올해도 그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신나게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요즘은 가공식품 같은 영화가 많다. 샐러드처럼 아삭아삭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느끼하지 않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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