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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촛불집회, 불평등에 대한 분노…정치 아닌 경제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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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두 달 만에 평범한 시민 1000만 명이 운집한 한국의 ‘촛불집회’를 세계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부분의 외신들은 이번 사태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연루된 정치 뉴스로 다루고 있지만 위니 비아니마(58·사진) 옥스팜 인터내셔널 총재는 “한국의 촛불시위는 ‘불평등(inequality)’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표출된 경제사건”이라고 말했다.

비아니마 ‘옥스팜’ 총재의 진단
최상위 소수 아닌 다수를 위한
인간 중심 경제로 균형 찾아야
대기업·부자 정당한 세금 내고
직원 임금 올려주면 불평등 해소

세계적인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옥스팜은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세계 소득 불평등 실태를 고발한 ‘99%를 위한 경제(An economy for the 99%)’ 보고서를 발표해 주목 받았다.

비아니마 총재는 3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다보스포럼은 그 어느 때보다 글로벌 리더들간에 기존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유지할 수 없고, 단순한 경제 성장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건강한 시장경제가 빈곤 해결 열쇠

올해 다보스포럼은 앞으로 10년간 세계를 위협할 3대 리스크로 소득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환경 악화를 꼽았다. 옥스팜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8명의 갑부가 가진 재산(금융자산 기준 약 4260억 달러)이 전세계 소득 하위 36억 명과 맞먹는다. 36억 명은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 한국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약 96억 달러),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약 77억 달러) 등 16명의 부자가 가진 재산이 소득 하위 30% 인구와 비슷하다.

불평등과 이로 인한 양극화는 경제를 넘어 정치·사회체제를 위협하는 뇌관이 됐다. 비아니마 총재는 “건강한 시장 경제는 빈곤과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건강한 체제 속에 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비아니마 총재는 특히 여성의 경제적 차별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베트남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이들이 하루 12시간씩 주6일 노동하며 버는 돈은 고작 시간당 1달러였죠.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그 패션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급여를 받는데 말이죠.”

비아니마 총재의 고향인 우간다를 비롯해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은 여성 근로자의 처지가 더욱 열악하다. 그는 “케냐에서 가사 도우미는 대부분 여성인데 최저임금이 공적 부문 종사자에게만 적용돼 다수가 최저 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경제적 기회와 보상을 받으려면 교육을 받을 권리와 양질의 육아 서비스 제공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비아니마 총재는 교육자였던 부모의 지지 아래 유학길에 올라 영국 맨체스터대학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했다. 남녀를 통틀어 항공공학을 전공한 최초의 우간다인이다. 항공공학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젊은 여성들이 택할 것 같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계화에 등 돌리기보다 개선해야

그는 경제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휴먼 이코노미(인간중심의 경제)’를 제안했다. 최상위에 있는 소수만이 아닌 다수를 위해 작동하는 균형잡힌 시장 경제체제를 뜻한다. 일례로 덴마크의 경우 소득세를 걷어 무상보건과 무상교육 등 사회복지 비용 전액을 충당한다. 그는 “대기업과 부자들이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고 직원 임금 수준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불평등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아니마 총재는 “지난 30년간의 세계화는 결과적으로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미국뿐 아니라 각국에서 자국 중심주의적이고 국수적인 행태가 당분간 지속되거나 심화돼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그는 “세계화에 등을 돌리기보다는 세계화로 뒤처졌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아니마 총재는 프랑스 주재 대사, 우간다 국회의원, 유엔개발계획정책부서 등을 거쳐 2013년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 총재에 취임했다. 다보스포럼이 공정하고 잘 사는 세상을 위한 경제의 장이 돼야한다며 불평등 문제를 주요 의제로 부상시켰다.

◆옥스팜

1942년 영국에서 시작된 국제구호개발기구로 인도주의적 구호와 공정무역·여성인권·환경보호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엔 세계로 확산되는 소득 불평등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개선책을 모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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