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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표현의 자유’를 오해한 국회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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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논설위원

“개인적인 지적 능력은 높은 듯하지만 그가 있음으로써 주위에 웃음이 사라지고 의심의 눈초리가 번뜩이며… 그가 활발하게 자신의 지력(知力)을 발휘하는 탓에 그가 속한 집단 전체의 지적 능력이 내려갈 때, 나는 그런 사람을 반지성적이라 한다.”(우치다 다쓰루·『반지성주의를 말하다』·이마)

대통령 누드가 풍자라고 우긴 표창원
절제 없는 ‘표현의 자유’는 야만일 뿐

부지런한 외곬의 지적 정열로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고 수준을 떨어뜨리는 사회 지도층 인사는 의외로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외국인을 빼고라도 박근혜·김기춘·우병우부터 최근엔 표창원(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떠오르는 인물도 많다. 특히 표 의원은 설 연휴 동안 긴 생각할 거리를 던진 인물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영원히 고민이 끝날 것 같지 않은 주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 이야기는 표 의원 주관으로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 전시됐다 철거된 그림,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누드화 ‘더러운 잠’에서 시작된다. 이 그림은 곧바로 여성 혐오와 비하 논란으로 확대됐다. 표 의원은 ‘표현의 자유’라며 버티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여성들에게 사과했다. 그런 한편에선 미국에서도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도널드 트럼프 나체 조형물이 세워졌다며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나체 표현은 풍자일까. 물론 대통령 풍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한데 왜 나체인가. 문화계에서도 나체는 심심찮게 외설 논란을 일으킨다. 문명사회의 외설에 대한 거부감은 성적 욕망 같은 인간의 밑바닥 욕망을 부추기는 콘텐트가 예술이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권위의 탈을 쓸 때 야만과 무질서가 격화됐던 학습경험 때문일 거다.

그게 아니라도 우리는 모두 그냥 알고 있다. 특정인의 나체 풍자는 문화가 아니라 혐오와 조롱의 표현이라는 걸 말이다. 트럼프의 나체 조형물도 단순히 웃자고 나온 게 아니었다. 공개석상에서 여성·성소수자·이민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막말을 서슴지 않는 그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그런 대통령이 나온 미국은 지금 안녕한가.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정책이 아니더라도 세계 여성들은 그에 반대하는 행진을 시작했고, 캐나다에선 트럼프가 불을 지른 극우주의에 자극받은 명문대생이 인종주의적 테러를 저질렀다. 트럼프가 시작한 혐오의 표현은 분노의 확산으로 달리는 중이다.

‘표현의 자유’라면 나도 사생결단하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언로가 막힌 일방적 사회의 야만성이 두려워서다. 하나 표현의 자유도 ‘자유’다. 자유는 늘 이중성을 갖는다. 절제하지 않으면, 지적 성찰이 없으면, 방임으로 흐르면 그 자체로 폭력과 야만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려는 자들은 언제나 이를 빙자한 욕설과 폭력, 편견과 혐오를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할 의무가 있다.

세계 자유 진영 국가들 중 종교 및 인종 문제로 인한 혐오 발언이 기승을 부리고 폭력으로도 치닫는 미국과 일본, 유럽 여러 국가들이 ‘헤이트 스피치’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을 시행하는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다. 폭력과 야만을 억누르기 위해 표현의 자유 일부를 통제하는 것. 문명을 지키려면 ‘더러운 욕망’을 배설하는 언어와 행위까지 수호해야 할 표현이라고 우겨선 안 된다는 말이다. 표현의 자유는 저급한 욕망과 분열적 감성을 걸러내는 집단 지성 위에서 지켜진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 탄핵 사태를 법치에 따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대통령이 분열의 감성을 자극하며 편 가르기를 시도하는 와중에도 우리 국민들은 그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가. 이번 일은 단순히 재승박덕(才勝薄德)한 국회의원의 실수라고만 하기엔 그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무성찰이 가져온 분탕질의 해악이 컸다. 사회의 담론 수준까지 떨어뜨렸으니. 하나 그를 국회의원에 뽑아 활개치게 한 것도 국민들이다. 그래서 부끄러움은 늘 우리 몫인가 보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