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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외교관 반기문, 정치인 반기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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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 훈 논설실장

최 훈
논설실장

유엔 사무총장을 마친 뒤 ‘오스트리아의 영웅’으로 금의환향했던 쿠르트 발트하임은 1986년 대선에 도전하며 곤욕을 치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육군장교로 복무하며 유대인 학살에 개입했다는 ‘전력’ 의혹이 화근이었다. 발트하임은 당시 “민간인 처형 사실은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그의 장교 사무실이 유대인 처형장 바로 옆이며, 처형장 쪽으로 창문이 나 있었다는 사실까지 언론이 폭로했다. 국수주의적이던 국내 분위기에 업혀 당선됐지만 존재감 없는 ‘왕따 대통령’으로 임기 6년을 마쳐야 했다. 91년 걸프전 직전 바그다드에 고립된 오스트리아 인질 92명을 구해 와 외교관의 교섭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정치인으로의 재선은 언감생심이었다.

구설과 어설픈 실수 연이은
47년 외교관의 대변신 시도
기존 정치인 모방하는 대신
자기 강점, 스타일로 맞서야

환국 20일째인 반 전 총장의 대선 역시 구설에 휩싸이며 험로(險路)를 맞고 있다. 지지율도 1위 문재인의 절반인 답보 상태다. 47년여의 외교관 생활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기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영국의 외교관 헨리 워튼은 “조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도록 외국에 파견되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외교관을 정의했다. 고전인 『외교론』의 저자 해럴드 니컬슨은 “군주와 정부에 충성해야 하는 외교관은 자기 의견을 포기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막스 베버 역시 “직업관료란 개인감정 없이 제한된 업무로 생계를 유지한다”며 “관료는 정치인의 본령인 투쟁을 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정치인으로선 부적절하다”고 구분했다. “노(No)”라고 말하지 않는 이중성에다 욕을 먹거나 판을 뒤흔드는 결단엔 취약한 게 외교관이다. 반 전 총장의 귀국 이후 몇 장면은 이런 측면에선 큰 실수로 보인다.

“당이 없어 돈 문제가 매우 힘들다”는 그의 토로가 첫 번째다. 사무실·자동차 비용, 측근 월급을 내게 된 처지는 대통령을 꿈꾸는 ‘큰바위 얼굴’이라면 할 얘기가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 당에 안 들어간 사람이 없다”는 푸념 역시 ‘(기존) 정치 개혁’을 외친 것과 맞지 않다. 돈부터 걱정스러운 ‘스몰 포테이토’로, 권력의지가 약한 존재로 자신을 쪼그라뜨린 게 아닌지. “난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발언 역시 콘텐트가 없어 이도저도 좋다는 외교관의 수사(修辭)쯤으로 치부됐다.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한 그의 긍정 평가를 추궁한 기자들을 “나쁜 놈들”이라고 한 발언도 사려 깊지 못했다. 제왕적 대통령의 불통, 오만에 지친 대중의 상흔을 건드리고 말았다. 발트하임 역시 대선 중 돌발 질문을 한 BBC 기자에게 이성을 잃고 주먹질하다 곁의 미국 카메라에 포착돼 혼쭐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포용, 인내심의 한계를 무심결에 들켜버린 것일까.

‘노무현 배신’ 논란도 정리해야 할 이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이 반기문 전 유엔총회 의장 비서실장과 마주앉았다. “다 훌륭하시다고들 하니 청와대 외교보좌관으로 좀 도와주시죠…. 그런데 반 대사님은 나 잘 모르시죠.” 유인태 당시 정무수석은 “반 전 총장이 은퇴 직전이었지만 미국·일본이 좋아한다고 해 노 당선인이 일단 옆에 놓고 지켜보자고 하더라”고 기억했다.

외교장관으로 영전한 그를 2005년 12월 말레이시아 순방 중인 노 대통령이 극찬하고 나섰다. “외교관들이 철밥통만 지키고 욕심만 많고 폐쇄적이라 눈 부릅뜨고 의심해 왔다. 그런데 (반 장관을 쳐다보며) 여기 계시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참 일을 많이 한다. 화투 칠 때 보면 주물럭거리며 시간 끄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외교부는 아주 속도가 빠르다.”

2006년 북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경질 위기에 몰린 반 장관에 대해 노 대통령은 “욕은 내가 먹는다. 여기서 그만두면 총장도 날아간다”고 엄호에 나섰다. 그해 부시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선 “내가 보장컨대 반 장관은 확실한 친미주의자”라고 했다. 전임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와 코피 아난 총장의 독자 행보에 데인 부시 대통령은 즉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자리로 불러 사실상 총장 인준을 끝내주었다.

물론 “반 전 총장이 친노 호랑이굴에서 살아남은 것” “반을 민 게 아니라 유엔 총장을 노 대통령이 치적으로 꼽은 때문”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사망 이후 2년 반 뒤의 ‘비공개 묘역 방문’ 논란은 반 전 총장으로선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이슈다. ‘인간적 정리(情理)’를 중하게 여기는 보수의 대표주자라면 말이다.

기로에 선 73세 반 전 총장의 길은 무리한 정치인 변신이 아니다. 역으로 기존 정치에 없었다는 게 그의 장점이다. 외교관 출신의 능력, 스타일로 승부하는 게 낫다. 시간도 없다. 자신의 천명대로 임기 단축의 ‘내려놓음’ 개헌을 포함해 자신은 외교안보를, 경제 등 내치는 책임총리에게 맡기는 큰 분권 카드도 유용할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과 중국의 격돌 속에 살아남아야 할 시대에 오히려 ‘기름장어(slippery eel)’의 효용 역시 나쁘진 않아 보인다. 다행히 반(潘)씨만 300만 명이라 친밀감을 보여왔다는 중국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니 말이다.

최훈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