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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특허분쟁, 골병드는 스타트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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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IT 스타트업 버즈빌을 운영하는 이관우(33) 대표가 지난해 가장 자주 만난 사람은 변호사와 변리사다. ‘공룡 벤처’로 불리는 옐로모바일과 특허 소송을 붙으면서다. 옐로모바일은 2012년 출범 이후 과감한 투자와 인수 합병으로 스타트업 80곳을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는 곳이다. 사연은 이렇다. 버즈빌은 2013년 스마트폰 잠금 화면에 광고를 넣는 플랫폼 ‘허니스크린’을 개발했다. 그런데 2015년 말 옐로모바일이 ‘쿠차 슬라이드’라는 이름으로 버즈빌과 비슷한 서비스를 시장에 내놨다.

이 대표는 “협업을 위해 옐로모바일 측과 여러차례 미팅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와 거의 똑같은 서비스를 내놓더라. 지난해 내내 나와 직원들은 소송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버즈빌이 지난해 옐로모바일을 상대로 한 특허 침해 관련 형사 소송에서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나 특허청 산하 특허심판원은 버즈빌의 손을 들어줬다. “쿠차의 쿠차슬라이드가 버즈빌 특허의 구성 요소와 실시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옐로모바일이 특허법원에 항소하면서 두 기업의 소송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이 대표는 “허니스크린의 해외 진출과 서비스 확대에 집중하려 했지만 길어지는 소송전 때문에 경영에는 거의 손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수천만원대 소송비, 시간 등 부담
대부분 소규모라 사업에 큰 지장
소송에서 이겨도 기회 놓치기 일쑤
분쟁조정절차 활성화가 우선 과제

이에 대해 옐로모바일 측은 “검찰이 이번 사건을 이미 불기소 처분으로 기각했다”며 “버즈빌의 승소 주장은 특허심판원의 행정 심판 결과를 일반 재판에서 승소한 것처럼 과장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스타트업들이 특허 등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분쟁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사업 규모와 직원 수가 적고 법적 분쟁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소송전을 치를 때마다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할애한다. 소송을 한 번 시작하면 들어가는 돈만 수천만원에 달하는데, 영세한 규모의 기업들이 이와 같은 비용을 감당하는 것부터가 무리다. 소송을 제기할 엄두를 내기 힘들뿐더러, 설사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길게는 몇 년씩 이어지는 소송전을 이어가는 것도 소규모 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사업을 시작한지 3~5년 안에 사업 아이템의 성패가 갈리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점을 악용해 은근슬쩍 스타트업의 기술을 무단 사용하고, 여기에 대항에 소송이 제기되고, 스타트업은 경영난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의 스타트업 업계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타트업 10곳 중 7곳이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분쟁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또 응답자의 79%가 “지적재산권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 UC 헤이스팅 법대의 조사에 따르면 특허 분쟁을 경험한 미국내 스타트업 중 57%는 “소송에 쓴 비용이 10만 달러(1억1600만원)를 넘는다”고 응답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특허 침해 논란과 관련한 당사자 기업들이 법적 소송으로 가기 전에 조정 과정으로 합의에 이르는 것이다. 현재 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쟁 조정 기구는 산업통상자원부·중소기업청·특허청 세 곳이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회·중소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산업재산권분쟁조정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각각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구를 통해서 조정에 성공할 확률은 평균 4건 중 1건에 불과하다. 특히 2015년 산업기술분쟁위원회에 접수된 전체 기술유출 관련 조정 3건 중 3건 모두가 조정이 성립되지 않았다.

특허 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김경환 변호사는 “스타트업이 많이 진출해있는 IT 분야는 서비스의 기술을 지능적으로 교묘하게 베껴 특허에 걸리지 않고, 소송으로 가더라도 뚜렷한 결론이 나지않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형사 소송을 담당하는 수사기관에서도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전문 인력이 없어 특허 침해와 관련한 판단을 소극적으로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분쟁조정절차를 활발히 하려면 피신청인도 의무로 참석하게 하거나, 피신청인이 불참하는 경우에도 조정은 계속 진행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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