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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에 천연 부동액 ‘빙하 곤충’ 국내 첫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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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겨울철에도 동면(冬眠)하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빙하 곤충’이 국내에서도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변온동물인 곤충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생육 활동이 정지되거나 죽는다.

덕유산 ‘눈밑들이’ 혹한에 더 왕성
날 풀리면 사라지는 미세조류 등
겨울철 희귀 생물 26종 새로 확인
“바이오산업 신소재로 활용 가능성”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제주대·경북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3년 전부터 매년 겨울철 자생생물 조사·발굴 사업을 실시해 겨울철에 활동하는 곤충과 해조류·미세조류 등 생물종 26종을 새로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국내에서 첫 발견된 빙하곤충과 미세조류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빙하곤충 키오네아 미라빌리스, 눈밑들이, 키오네아 카네노이, 미세조류 사이클로넥시스 에리누스. [사진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국내에서 첫 발견된 빙하곤충과 미세조류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빙하곤충 키오네아 미라빌리스, 눈밑들이, 키오네아 카네노이, 미세조류 사이클로넥시스 에리누스. [사진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은 특히 지난해 1월 전북 무주 덕유산의 눈 쌓인 곳에서 빙하 곤충인 ‘눈밑들이(Boreus sp.)’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찾아냈다. 곤충 분류체계에서 눈밑들이과(科)의 눈밑들이속(屬)으로 분류되는 이 ‘눈밑들이’는 생체 부동액으로 이뤄진 체액 덕분에 겨울철에도 동면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체 부동액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더라도 몸을 구성하는 물이 얼지 않도록 해주는 물질이 체액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곤충의 경우 체액 속의 포도당·글리세롤·시트르산·알라닌 등의 농도를 높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어는 것을 방지한다. 대개 변온동물인 곤충은 겨울이면 활동이 정지되거나 죽지만 이들 눈밑들이는 이 같은 생체부동액 덕에 영하의 날씨에도 교미 같은 생육활동을 할 수 있다. 또 이들 곤충은 과거 빙하기 때부터 낮은 온도에서도 적응해 살아남았기 때문에 ‘빙하 곤충’이라고도 불린다.

연구진은 또 눈각다귀과(科)의 ‘키오네아 카네노이(Chionea kanenoi)’와 ‘키오네아 미라빌리스(Chionea mirabilis)’ 등 빙하곤충 2종의 표본도 덕유산 향적봉에서 확보했다. ‘키오네아 미라빌리스’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종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종이다.

지난해 2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천연림 동백동산에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이클로넥시스 에리누스(Cyclonexis erinus)’가 발견됐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플랑크톤인 이 종은 미세조류, 즉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조류로 낮은 온도와 부족한 태양광 조건에 적응해 겨울철부터 초봄까지 매우 짧은 기간에만 나타난다.

이 종의 세포는 크기가 8~12㎛(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로 여러 개의 세포가 조밀하게 서로 붙어서 군체(群體·세포 덩어리)를 이룬다. 군체 속에서 세포는 다소 느슨하게 붙어 있으며 군체가 쉽게 부서지는 성질이 있다. 기온이 올라가는 초봄 이후에는 군체가 각각의 세포로 흩어지기 때문에 그동안 확인이 쉽지 않았다.

국립생물자원관의 구연봉 미생물자원과장은 “겨울철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생물종은 그 같은 환경에 적응하는 특별한 메커니즘 혹은 생체물질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러한 종은 낮은 온도에서 생명유지가 필요한 바이오산업 분야 등에서 새로운 산업소재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생체 부동액을 만드는 메커니즘과 유전자를 파악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유전자 재조합 등을 통해 저온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는 다양한 동식물 품종을 개발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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