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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근원적 그리움 촉촉하게 노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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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20일 이근배(77)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어마짜한 시단의 거목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오세영(75)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 문효치(74)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저항시 ‘겨울공화국’으로 유명한 양성우(74) 시인, 박건한(75) 활판공방 대표,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인 이상문(70) 소설가, 서정춘(76)·노향림(75)·강인한(73)·김형영(72) 시인, 김영재(69) 시조시인 등이다. ‘소장파’인 홍성란 시조시인, 정철훈·오봉옥·박형준 시인, 김종광 소설가, 한국의사시인회 김세영 고문, 임우기 문학평론가의 얼굴도 보였다.

이경철

이경철

서울 신사동의 시조교육기관인 유심아카데미 사무실, 이경철(62) 시인의 첫 시집 『그리움 베리에이션』(활판공방·사진)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중앙일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다 랜덤하우스·솔출판사 주간 등을 지냈다. 2010년 김남조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했고, 『천상병 박용래 시 연구』 『미당 서정주 평전』 등을 썼다. 과거 취재원으로 이씨를 만나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던 이들이 문단 후배로 이씨를 받아들이는 자리였다.

첫 시집 『그리움…』펴낸 이경철
“내 시가 어떻게 보일지 두려워
큰 죄 지은 듯 보름간 밥도 못 먹어”

“이경철 시인의 시를 보며 뒤늦게 시에 눈 떴다”(이근배), “문학사에 빛나는 위대한 시 한 편을 쓰리라 믿는다”(오세영). 대부분의 덕담은 맥주거품처럼 풍성했다. 하지만 뾰족한 발언도 없지 않았다. 서정춘 시인은 ‘이경철 시인!’ 하고 자신이 선창하면 각자의 판단에 따라 ‘통과!’ ‘퇴출!’을 각각 외치자는 건배사 제안을 했다. 이씨의 시집이 썩 마뜩치 않다는 뼈있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18번인 ‘부용산’을 불러 자리의 흥을 돋웠다.

시집에는 모두 49편의 시가 실려 있다. 표제작 ‘그리움 베리에이션’은 해 뜨고 꽃 지고 바람 불고 구름 흐르는 대자연의 운행에 기대 인생의 근원적인 그리움을 촉촉하게 노래한 시다. 이씨는 “내 시가 선생님들께 어떻게 보일지, 무섭고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두려워 보름 동안 밥도 못 먹을 정도였다”며 “앞으로 여러 선배님들 지도편달을 따라 잘 쓸 테니 지켜봐달라”고 했다.

시는, 적어도 문학의 정신은, 글쓰는 책상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현장에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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