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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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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달의 심사평

정유년 새해 첫 달, 새로운 각오와 열의로 가득 찬 응모작품들의 질감은 풍성했다. 그러나 과도한 힘이 들어가다 보니 자칫 관념에 빠질 위험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우려를 하면서 이달에는 살아 숨 쉬는 체험을 생생한 감각으로 녹여낸 작품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관점에서 ‘새벽 인력시장’이라는 힘겨운 삶의 현장을 ‘당첨’이라는 따뜻한 긍정의 힘으로 읽어낸 정민석의 ‘복권’이 장원에 오르는 데 손색이 없었다.

새벽 인력시장 고단한 삶
해학으로 밝게 그린 역작

‘한겨울’ ‘굳은살 박힌 손’ ‘텅 빈 속’ ‘막노동’의 냉혹한 생존경쟁의 현실을 ‘불꽃’ ‘데워질까’ ‘곁불’ ‘새 이웃들’의 인간애와 ‘당첨’ ‘행운’이란 건강한 해학으로 받아들이며 마침내 ‘오늘은 어디로 가서 못을 힘껏 두드리나’라고 의지에 찬 희망을 노래함으로써 ‘복권’이라는 표제 속에 함축된 생의 가치가 가슴 뭉클한 메시지를 전하는 역작이었다.

차상에 오른 이순화의 ‘목욕’ 역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공감의 진폭을 넓혀주었다. 화자가 어머니를 목욕시키면서 ‘한때는 단물 솟고 향내 나던’, 그러나 자식을 키운다고 ‘제 몸의 물기만으로 싹을 키운 감자’처럼 수척하게 늙어버린 어머니의 몸을 보며 느끼는 회한의 감정을 시적구도 속에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의식체험으로서의 목욕이라는 삶의 감각을 심미적으로 다스려내는 언어 부림이 특히 돋보였다.

차하에는 오서윤의 ‘며느리 야채 가게’를 선한다. 4수의 제법 긴 호흡으로 풀어낸 작품이지만 익살과 재미가 넉넉한 삶의 활기를 환기하는 탄탄한 역량를 엿보게 한다. ‘몸빼바지 며느리 싱싱해요 호객하고/ 떨이요! 고희 며느리 추임새 절창이다’.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바로 이 절창이 시절가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하게 하였다. 계속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박권숙·이종문(대표집필 박권숙)

초대시조

‘노래들’이 떠나간다. ‘부르고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노래들은 ‘손가락을 구부’린 시인의 비원을 모른다. 버릇처럼 혼자만의 손가락으로 안간힘을 쓰는 동안에도 날은 저물고 시절은 떠나간다. 골방의 미학, 가내수공업자인 시인의 의지는, 세상의 변방에 홀로 놓인 시 한 편 앞에서 쓸쓸해도 좋을 운명과 함께하기로 한다.

춥고 배고프지 않으면 시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시의 양식이다. 헐벗음과 외로움을 끼니로, 겨우 살고 쉬이 저무는 운명의 장르. 지난한 동지 무렵 어디쯤 이 시의 기운은 서려 있는 것일까. 동지 지나면 하루에 쌀 한 톨만큼씩 햇빛이 여물어간다고 한다. 쌀 한 톨의 몸 같은 시. 그 시어들을 영혼의 이랑에 파종하는 시인의 시간은 위태로워 보인다. 스스로 저물지 않으면 한 톨의 언어도 다신 얻을 수 없어, 세상의 시들은 어둠의 아궁이에 씨눈을 묻고 신새벽의 태동을 기다리는 건 아닐까.

‘한 줄 시’를 쓰는 시업이 아주 저물어버리면 그때는 세상도 아주 끝나버리려니, 근근이 연명하며 저물어가는 노래일망정 어찌 치명에 이를 것인가. 자본에 착취당하고 기계에 몰수당한 기록과 기억들이 여전히 태초의 시를 꿈꾸는 한, 시인은 열 ‘손가락을 구부’리며 뜨거운 원고지 앞으로, 당신만의 나라로 출근해도 좋으리라.

박명숙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전 응모자격을 줍니다.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또는 e메일(kim.soojoung@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e메일로 응모할 때도 이름·연락처를 밝혀야 합니다. 02-751-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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